짧은 제품 수명·대량 생산·대량 판매 틀 넘어서야…tjf계 단계부터 업사이클링 반영

[ESG리뷰] ESG 환경 강좌
지난 5월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추진현황 및 주요 환경 현안과 관련한 출입기자 간담회
지난 5월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추진현황 및 주요 환경 현안과 관련한 출입기자 간담회
최근 탄소 중립 실행 과제로 순환 경제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자원을 채취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이 배출되니 일단 경제 시스템으로 진입한 재화(제품·소재)는 최대한 그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순환해 쓰자는 논리다. 사실 순환 경제는 기후 변화에서 야기된 이슈가 아니라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사용하자는 데 의의가 있던 이슈였다. 이에 따라 재활용 제품이나 재사용 제품에 대한 환경성을 주장할 때 온실가스 감축량보다 자원 사용량 감축으로 환경 성과를 표현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유럽·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 탄소 중립을 선언했고 특히 유럽 그린 딜에서 순환 경제 신행동 계획(New Circular Economy Action Plan)을 2050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제시하면서(2020년 3월) 순환 경제가 기후 변화 프레임워크에서 역할을 하는 구조로 변화되고 있다. 유럽 순환 경제 신행동 계획에서 강조되는 전략 중 하나가 ‘수선권(Right to Repair)’이다. 이는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 유지·보수, 업그레이드, 더 나아가 새활용(업사이클링)을 고려하라는 의미다. 현재 한국에서 열리는 순환 경제 관련 각종 토론회나 정부 계획에서 과연 얼마나 제품의 설계 단계에 주목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유럽의 전략은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짧게 계획해 판매하는 방식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매하는 방식(product as a service)이 활성화돼야 하며 사용 후 단계에 대한 생산자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코 디자인, 한국에서 가능할까

2003년으로 기억한다. 환경부에서 에코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계에 보급하는 과제가 추진됐는데 필자도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에코 디자인은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 제품의 전 과정(제조·수송·사용·폐기)에서 야기되는 환경 부하를 저감하기 위해 친환경 소재, 분해 가능성, 재활용 용이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기법이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 전문가를 한국에 초청해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사례로 제시된 제품이 접히는 모니터, 공기로 충전한 가구, 수송을 용이하게 하는 포장 기법 등 그 당시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사례가 바로 에코 디자인이었다. 그 당시 느낀 것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에코 디자인은 앞선 사례에서와 같이 혁신적인 기술로 실현되고 한국 산업계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후자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한국은 제조 기반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많이 생산하고 많이 팔아야 성장하는 산업계가 제품의 사용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도 2020년 12월 ‘2050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했고 10대 추진 과제 내 순환 경제가 포함됐다. 제조 공정의 자원 순환성 강화, 수거·선별 등 재활용 시스템의 선진화 및 재제조 산업 활성화 등 과거 폐기 단계에 집중된 전략에서 매우 진일보한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품 설계 단계에 주목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 개발은 향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순환 경제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정부의 역할이 핵심이다. 필자는 P(정책), D(조달), Q(품질) 등 3가지 요소로 순환 경제 생태계를 설명한다. P(정책) 요소가 제일 중요하다. 구매자로 하여금 순환 자원을 구매하게 하는 등 동인이 있어야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가령 일정 비율 순환 자원의 의무 사용, 세제 혜택, 보조금 등이 그 예다. 의무 사용 규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D(조달) 요소가 뒤따라야 하는데, 즉 순환 자원의 안정적 공급에서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종종 많다. 공급량이 불안정하면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순환 자원의 가격 급등이기 때문이다. 순환 자원별로 수출입 통제, 공공 비축 등 정책 수단을 면밀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중요한 요소는 Q(품질) 요소다. 결국 순환 자원의 안정적인 품질(규격·안전·환경) 성능을 담보할 수 있어야 산업계에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순환 경제 전략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한다는 의미는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높은 석유 화학의 감축 잠재량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탄소 중립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환경부에서 ‘플라스틱 전 주기 발생 저감 및 재활용 대책 수립’을 발표했다. 수입 플라스틱을 국내산으로 대체하고 의류 등 고품질 재활용을 촉진한다는 핵심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재생 플라스틱 의무 사용 규제를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유사한 시기에 식품·의류 등 글로벌 기업이 자체적으로 재생 소재 사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섬유 업종과 플라스틱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에서 재생기술 개발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기 시작했다. 기술 개발과 함께 산업계에서는 양질의 재생 자원 수급을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취급한다.

한국의 순환 이용률 70.3%(2016년 기준), 플라스틱 재활용률 72%(2017년 기준) 등 자원 순환을 나타내는 통계를 볼 때 70%에 해당하는 재활용 소재는 어디에서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궁금한 지점이다. 이들 중 과연 몇 %가 식품 용기와 의류 등 고부가 가치 소재로 활용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투명 PET 분리 배출하는 정책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정책으로 보인다.

재생 자원 현황 통계 구축 필요

순환 경제는 폐자원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으로 완성될 수 있다. 폐자원의 공급 측면에서는 환경에 위해하지 않고 품질 좋은 폐자원을 시장에 공급하기 위한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폐자원을 사용하는 산업계에서 제품(또는 사업장)에 재생 자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제도화(의무화·인센티브)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의 자원 순환을 나타내는 지표는 산업계에 투입되는 순환 자원을 표현해 내지 못한다. 산업계에 투입되는 재생 자원 현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통계도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순환 경제 실행 과제를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환경성 평가다. 폐자원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높거나 환경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엄격하게 평가해 우선순위에서 배제해야 한다. 우리는 기후 변화에만 직면해 있지 않다. 유럽연합(EU)의 녹색 분류 체계에서도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에 기여하는 활동 외에 환경 오염, 자원 순환, 수생태계 보전 등 환경 영향을 동시에 고려하는 방법론을 우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순환 경제 활동을 온실가스 감축 성과로 표현하고 인정받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산업계는 사업장(gate to gate) 단위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을 기준으로 배출권 거래제 등 기후 변화 정책에 대응하고 있다. 만약 사업장 내에서 자원을 재생하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면 폐기물 배출량은 감소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하게 된다. 관리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설계하느냐에 따라 한쪽으로 편익이 쏠리는 현상을 면밀히 살펴봤으면 한다.

순환 경제는 어느 한 부처 중심으로 추진되는 영역이 아니다. 그간 각 부처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범부처 단위의 정책과 실행 과제를 마련해야 한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