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행 중심으로 해외 수익 17% 증가
하나금융투자 대표 맡은 이은형 부회장 역할 주목

하나은행(왼쪽)과 하나금융투자 전경./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각사
하나은행(왼쪽)과 하나금융투자 전경./사진=한국경제신문·연합뉴스·각사
“우리의 미래는 글로벌에서 찾아야 한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지금 한국 금융이 ‘변곡의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업권의 붕괴로 인한 다수의 경쟁자가 등장했고 국내 시장의 포화와 규제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해외 시장 개척을 주문했다.

실제 하나금융그룹은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도 2020년 글로벌 부문 그룹 순이익(전체의 20.4%)은 537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약 17% 증가한 것이다. 2019년 하나금융이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지분 인수로 일회성 이익(1657억원)이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이익 증가폭은 더 크다. 올해 1분기엔 1681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순이익의 3분의 1 정도를 달성했다.

다만 아직 비은행 부문 계열사들의 해외 사업은 걸음마 수준이다. 하나은행이 2020년 글로벌 부문(순이익 3752억원)에서 전년보다 500억원 가까이 순이익이 증가된 반면 비은행 계열사의 증가액(274억원)은 절반을 웃도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부터 해외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국제통’으로 분류되는 이은형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이어 올해도 글로벌 부문의 핸들을 잡는다. 여기에 비은행 계열의 실세인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를 겸임한다. 또 하나금융은 그룹 산하에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글로벌 본부와 사업 및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수립하는 전략팀을 신설하며 조직도 정비했다. 하나금융투자 역시 조직 개편을 통해 투자은행(IB) 부문을 강화하고 벤처 투자로 유망한 중국 선전(심천)으로 중국 사무소를 옮기며 반격의 채비를 마련했다.

2025년까지 그룹 총수익의 40%를 해외 수익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김정태 회장의 뚝심과 이은형 부회장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외환은행 통합 후 은행 해외 부문 잰걸음
하나금융은 4년 내 해외 수익 비율 40% 달성할 수 있을까
하나금융그룹은 2015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하면서 글로벌 사업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환은행이 보유한 무역 금융과 외환 업무 등 서비스가 추가되면서 수익 다변화가 가능해졌고 해외 점포망은 9개국에서 22개국으로 비약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하나금융의 해외 사업 네트워크는 24개국 213곳으로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진출했다.

하나은행은 한국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외환은행과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인도네시아 법인 ‘PT뱅크KEB하나’는 2016년 순이익이 전년 대비 58% 늘어난 571억원을 기록했고 2018년엔 현지 금융 전문지가 뽑은 최우수 은행 1위에 선정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현재 하나은행의 인도네시아법인은 라인과 손잡고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디지털 은행인 ‘라인 뱅크(Line Bank)’ 출범을 준비 중이다. 기존엔 기업 금융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면 이젠 개인 고객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라인 뱅크는 수신 업무를 시작으로 상반기 중 업무를 개시하고 연내에 비대면 개인 대출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는 중국과 베트남 시장에서 약진했다. 미·중 무역 분쟁 격화로 부진한 실적을 이어 오던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자산·부채 포트폴리오 변화로 순이익이 전년 대비 1000% 넘게 증가했다. 또 중국법인은 지난해 알리바바와 씨트립(C-Trip) 등 현지 전자 상거래 플랫폼 기업과의 비대면 개인 대출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과의 제휴로 약 6300억원(개인 대출)의 자산 증대를 달성했다”며 “올해도 제휴 플랫폼 기업을 더욱 확대해 디지털을 활용한 영업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선 BIDV 투자를 통한 지분법 평가 이익으로 재미를 봤다. 하나은행은 2019년 베트남 1위 상업은행 BIDV에 지분 15%를 투자했는데, 베트남 지역이 여타 국가 대비 코로나19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으면서 BIDV가 실적 선방에 성공했다. 지난해 지분법 이익만 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베트남에서 비대면 개인 대출을 시행하기 위한 준비를 개시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해외 법인 순이익이 전년 대비 107.4% 증가한 1437억을 기록, 우리은행을 제치고 2위로 뛰어올랐다. 1위인 신한은행(순이익 2340억원)과도 전년보다 차이를 대폭 좁혔다.
비은행은 걸음마 단계
하나금융은 4년 내 해외 수익 비율 40% 달성할 수 있을까
비은행 부문에선 하나금융투자·하나캐피탈·하나카드가 해외 사업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시아를 제외하곤 해외 법인과 지점을 설립하지 못했다. 특히 하나금투는 중국 베이징과 선전에 각각 현지 법인 1곳, 사무소 1곳을 뒀는데, 이는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삼성증권 등 이른바 ‘빅5 증권사’가 최대 13개의 현지 법인을 운영한다는 점과 비교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반격의 여지는 있다. 전문가들은 이은형 부회장이 이끄는 하나금투를 필두로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그룹 간 시너지 확대를 예견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법인 설립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미래에셋이나 한국투자는 자산 운용사가 커 그쪽과 연결해 국내 돈을 해외에 투자하면서 해외 수익을 올렸다. 하나금투는 자산운용 부문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한국 기업의 법인 영업을 많이했다는 점에서 그동안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나금투는 예전에도 중국 인프라에 투자하고 중국에 있는 회사를 한국에 가져와 상장시키는 등 사업을 했지만 글로벌통인 이은형 부회장의 색다른 중국 비즈니스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은행의 중국 법인과 카드·캐피털 등 비은행과 협조 모델을 만드는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하나금융은 하나은행의 24개국 126개의 해외 채널을 통해 비은행 관계사의 글로벌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금융투자업·소비자금융업 등 비은행 부문의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고 디지털과 연계 강화해 시장별 차별화를 꾀한다.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IB 금융과 유가증권 투자 확대, 대체 투자 자산 발굴 등으로 글로벌 우량 자산 투자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은형 부회장은 누구?
하나금융은 4년 내 해외 수익 비율 40% 달성할 수 있을까
이은형 부회장은 5개 국어에 능통한 글로벌 기업금융 전문가다. 하나금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해외 투자로 꼽히는 지린은행 투자 건을 주선했고 중국민성투자그룹이 미국 재보험사 시리우스를 인수하고 뉴욕 나스닥에 상장하기까지 과정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올해부터 하나금융투자 대표이사직까지 겸임하는데, 증권업계 최연소 최고경영자(CEO) 기록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태 회장이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영입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