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투기 등급에서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고수익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 개편

[마켓 인사이트]
‘신용도 흑역사’ 지우고 부활한 동국제강…투자 오판 족쇄도 풀까
67년 업력의 동국제강이 ‘관록의 힘’을 보여 주고 있다. 전방 산업 침체와 차입 부담 때문에 한때 투기 등급까지 내려앉은 동국제강은 최근 과감한 자산 매각과 공격적인 구조 조정으로 빠르게 재무 구조를 다잡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고수익 제품을 앞세워 오히려 영업 수익성을 끌어올리면서 신용 평가사로부터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굴곡진 신용사…이례적인 ‘라이징 스타’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5월 동국제강의 기업 신용 등급 전망을 종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올렸다. 현재 ‘BBB-’인 동국제강의 신용 등급이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통상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이 부여되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안에 신용 등급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기업평가뿐만이 아니다. 한국기업평가를 시작으로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 평가사들이 줄줄이 동국제강의 신용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모든 신용 평가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특정 기업의 신용도 전망을 우호적으로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동국제강의 사업·재무 상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데다 투자·실적 전망에 악재보다 호재가 부각되고 있다는 얘기다.

동국제강은 1954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전기로 제강 업체다. 한국 3위의 제강 능력을 갖춘 철강 업체이기도 하고 철근·형강 등 봉형강을 주력 제품으로 생산하고 있다. 2015년 계열사인 유니온스틸과 합병해 아연도강판과 컬러 강판 등 냉연 판재류 사업 부문이 추가됐다. 지난해 별도 기준 매출을 보면 철근 31.9%, 형강 17.4%, 컬러 강판 18.6%, 냉연·아연도강판 15.7%, 후판 12.6% 기타 3.8%로 구성돼 있다.

동국제강은 2018~2019년 주요 부재료인 전극봉 가격 인상으로 제조 원가가 뛰면서 영업 수익성이 나빠졌다. 냉연 도금강판 내 경쟁이 심화된 원인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컬러 강판 수요가 유지되면서 영업 수익성이 개선됐다. 중국산 수입 물량이 감소해 봉형강 부문의 수급 환경이 좋아진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들어서는 전방 수요가 회복되면서 원부자재 가격 상승분을 판가에 원활하게 반영하고 있다. 판매량 증가에 따른 고정비 부담 완화로 영업 실적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동국제강은 수년간 보수적인 설비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운전 자금 감축, 자산 매각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6316억원의 영업 현금 흐름을 창출했다. 이 덕분에 지분 매입 등 비경상적인 자금 소요에도 차입 부담이 크게 줄었다. 2019년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이 2조2548억원이었는데 올 3월 말엔 1조8281억원으로 감소했다. 2019년 말 41.5%였던 순차입금 의존도도 올 3월 말엔 33.3%로 내려왔다.
‘신용도 흑역사’ 지우고 부활한 동국제강…투자 오판 족쇄도 풀까
과제 많지만 추가 신용도 개선 가능성 높아

동국제강은 투자 등급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투자 등급의 가장 하단인 ‘BBB-’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투자 등급으로서 이점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신용 등급이 한 단계만 상향 조정돼도 현재 확연하게 벌어져 있는 신용 스프레드(국고채와 금리 차이)를 최대한 축소할 수 있다. 설비 투자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자금 조달을 채권 시장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동국제강에 이번 신용 등급 전망 조정이 의미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 동국제강의 신용도를 바라보는 한국 신용 평가사들의 시각은 장밋빛 일색이지만 동국제강의 신용도를 돌이켜보면 단어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동국제강은 2013년 초까지만 해도 우량 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AA급(AA-, AA, AA+)’ 신용도를 눈앞에 둔 이른바 ‘잘나가는’ 철강 업체였다. 2000년대 초반 ‘BBB급(BBB-, BBB, BBB+)’ 기업으로 처음 채권 시장에 발을 들인 동국제강은 당시 주력 제품이던 후판과 봉형강의 탄탄한 시장 지위와 개선세인 수익성에 힘입어 꾸준히 신용도를 높였다.
‘신용도 흑역사’ 지우고 부활한 동국제강…투자 오판 족쇄도 풀까
한국 신용 평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당시 추진하고 있던 브라질 제철소 건설이 동국제강의 ‘퀀텀점프(대도약)’를 이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가 경쟁력이 강화돼 중·장기적으로 동국제강의 영업 수익성이 한층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전망은 동국제강의 실제 신용 등급에 고스란히 반영돼 평균적으로 3년에 한 번꼴로 동국제강의 신용 등급을 높이는 동력이 됐다.

청사진이 무산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3년 하반기 들어 동국제강의 신용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요 전방 수요 산업인 조선업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다. 후판 부문의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창출 능력이 빠르게 약화됐고 당진 후판 공장과 인천 신규 철근 공장 투자 진행으로 차입 부담이 확대됐다.

상향 조정만 되던 동국제강의 신용 등급은 결국 2013년 말 처음으로 꺾이게 됐다. 그 이후 신용 등급이 줄곧 하향세를 탔다. 속절없이 떨어지던 동국제강의 신용 등급은 2015년 말 투기 등급으로까지 주저앉았다. 조선업의 불황이 심화되면서 후판 부문의 실적이 살아나지 못했고 주택 수급 부담으로 봉형강 부문의 수익성 역시 나빠진 탓이다.

동국제강의 장밋빛 미래를 상징하던 브라질 일관 제철소는 어느새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브라질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저하되고 헤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브라질 일관 제철소 관련 지분법 손실과 지급 보증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동국제강이 본사 사옥 등 보유 자산을 매각해 이미 재무적 융통성이 소진됐다는 판단에서 수시 평가를 통해 동국제강을 투기 등급으로 떨어뜨렸다.

시장 안팎에선 동국제강의 존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동국제강은 굴하지 않았다. 과감하게 불필요한 계열사와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고수익 제품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편하고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이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현금 흐름을 새로 창출했다. 확보한 자금은 오롯이 차입 부담을 줄이는 데 사용됐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2018년 동국제강은 다시 ‘BBB-’의 투자 등급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채권 시장에선 투기 등급에서 투자 등급으로 올라선 기업을 특별하게 부르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라이징 스타’다. 직역하면 ‘떠오르는 별’이지만 그만큼 투기 등급에서 투자 등급으로 올라서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채권 시장에 발도 붙이기 어려운 투기 등급에서 어느 정도 기관투자가들의 눈길을 끌 만한 투자 등급으로 변모하는 기업은 1년에 한 곳도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리고 투자 등급으로 올라선 지 3년.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받아내며 또 한 차례 신용도 도약을 앞두게 됐다. 물론 동국제강의 향후 신용도 개선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주력 제품인 봉형강이 내수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을 주요 수요 산업으로 하고 있다.

냉연 판재류는 가전·건설업, 후판은 수출 의존형인 조선업의 경기에 따라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다. 과거엔 봉형강, 냉연 판재류, 후판의 비중이 비슷하게 유지됐지만 최근엔 후판 부문의 축소로 건설업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브라질 일관 제철소도 여전히 골칫거리다.

이영규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북미 지역 내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전개되면서 브라질 일관 제철소의 영업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됐지만 헤알화 가치 하락 등의 여파로 자본 잠식의 재무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추가적인 지원 부담 발생 여부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 올해 들어 매출과 수익성이 동시에 뛰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동국제강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6% 증가한 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9%였던 EBITDA 마진은 올 1분기 11.6%로 상승했다.

유준기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사회 간접 자본 투자 확대와 신도시 건설 추진을 감안할 때 봉형강 수요는 일정 수준 유지될 것”이라며 “가전·건자재 등 냉연의 수요 호조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 양호한 현금 흐름에 기반한 차입금 상환 기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