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율 낮아 규모의 경쟁 필수
CSS로 무장한 인터넷은행, 저축은행과 격돌 예고

‘인뱅’ 삼국지에 판커지는 중·저신용자 대출 시장
중·저신용자 대출 시장이 벌써부터 격전지로 변해 가고 있다.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대출은 마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규모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이 때문에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물론 하반기 출범을 앞둔 토스뱅크까지 인터넷 전문은행(인터넷은행)이 중·저신용자 끌어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탄 확보를 위해 유상 증자에 나서거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자체적인 신용 평가 모델(CSS)을 개발하는 등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가세와 법정 최고 금리 인하를 앞두고 중금리 대출 시장 ‘홈팀(home team)’ 격인 대형 저축은행들도 대출 기한을 늘리고 한도를 확대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중금리 대출 확대 과제 떨어진 인뱅
중금리는 저금리와 고금리 사이 상대적인 개념이다. 올해 들어 신용 등급이 신용 점수제로 전환됐지만 통상 업계에서 중금리 대출은 신용 등급 4~7등급에 공급되는 평균 10% 초반(1·2금융권 평균 금리 중간) 대출을 가리킨다. 금융 당국은 중금리 개인 신용 대출 기준을 연 6.5~16%로 명시하고 있다.

중금리 대출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구분한다. SGI보증보험이 보증하는 정책성 상품 ‘사잇돌대출’과 금융회사 자체 ‘민간 중금리 대출’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 4년간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의 성과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이 소비자의 금융 편의성 제고에 기여한 점은 인정하지만 당초 인터넷은행 사업 허가를 내준 취지 가운데 하나인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 대출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출범 당시 통신 이력 등 비금융 데이터를 모아 자체 신용 평가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면서 “신용 평가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 등 규제에 가로막히거나 자본금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고신용자 대출에 비해 리스크가 크고 수익성이 안 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때까지 안 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제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는 아직 중·저신용자 전용 상품을 선보이지 않았다. 제 2호인 카카오뱅크도 출범 2년 만인 2019년부터 중신용 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신용 대출에서 중·저신용자의 비율은 인터넷은행(12.1%)이 은행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또 지난해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공급한 1조4000억원 중금리 대출 중 91.5%는 보증부 정책 상품인 사잇돌대출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66.4%는 신용 등급 1~3등급인 고신용자에게 공급됐다. 기존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했던 사람들이 대출한 셈이다.

결국 금융 당국은 인터넷은행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인터넷은행은 중·저신용자 중금리 대출 공급 계획을 달성하지 않으면 신사업 진출을 못 하게 된다는 고강수를 뒀다.
인터넷은행, 금융 당국 압박에 빨라진 행보
금융 당국의 압박에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움직임이 급해졌다. 케이뱅크는 중저신용자 대출 취급 규모를 지난해 5852억원에서 올해 1조2084억원까지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고 카카오뱅크는 지난해 1조4380억원에서 올해 3조1982억원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2023년까지 전체 신용 대출 중 중금리 비율을 30%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중·저신용자 신용 대출 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12.1%다.

특히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둔 카카오뱅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우선 중·저신용 고객 대상 신용 대출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부서장급으로 구성된 TF를 구성했다. TF장은 카카오뱅크의 경영 전략을 총괄하는 김광옥 부대표가 맡으며 관련 부서 책임자들이 참여한다.

고신용자의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의 최저금리를 0.34%포인트 인상하는 한편 한도는 최대 절반 이하로 축소했다. 신용 대출(건별)은 연초 대비 1억5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마이너스통장은 1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각각 낮췄다. 고소득 직장인들이 이제 카카오뱅크에서 5000만원이 넘는 마이너스 통장을 뚫기 어려워진 것이다.

반면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 상품의 한도는 연초 대비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확대하고 금리는 지난달 1.20%포인트에 이어 이달 1.52%포인트로 두 차례 인하했다. 이에 따라 연초 5%대였던 중·저신용자 대출 금리가 최대 2%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카카오뱅크 중신용 대출 금리는 6월 9일 기준 연 2.977~9.8%다.

실제 올해 들어 카카오뱅크의 자체 중신용자 대출 공급액(사잇돌대출 제외)은 크게 늘었다. 지난 1~5월 1757억원을 공급해 지난해 같은 기간(665억원)보다 164.2%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말 전체 공급액(1452억원)보다도 300억원 정도 많은 규모다.

6월부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용 평가 모델(신 CSS)을 적용한다. 저신용자에게까지 대출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 만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정교한 신 CSS를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신 CSS는 카카오뱅크가 2017년 7월 서비스 시작 이후 쌓아 온 카카오뱅크 대출 신청 고객들의 금융 거래 데이터 2500만 건을 분석해 반영한 것이다.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한 통신료 납부 정보, 통신과금 서비스 이용 정보 등 통신 정보도 추가했다. 올해 하반기엔 휴대전화 소액 결제 정보와 개인 사업자 매출 데이터 분석 결과도 반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중·저신용 및 금융 이력부족(신 파일 : thin-file) 고객들을 위한 별도 상품 개발이 가능해졌다.

앞으론 빅테크 기업의 이점을 십분 할용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2022년엔 카카오페이·카카오커머스·카카오모빌리티 등 카카오 공동체가 보유한 비금융 정보를 분석해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케이뱅크도 CSS 고도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존엔 KT 이용 고객의 통신비 납부 등 제한적인 데이터만 이용했지만 앞으론 BC카드의 데이터를 추가로 도입하는 등 CSS 고도화에 박차를 가한다. 이르면 올해 중 새로운 신용 평가 모형을 도입해 신 파일러에 대한 대출 공급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저신용자를 겨냥한 서비스가 카카오뱅크에 비해 늦었지만 반격의 여지는 있다. 그동안 케이뱅크가 자본금 부족으로 성장세가 더뎠다면 이젠 자본력을 강화한다. 케이뱅크는 5월 1조2500억원 규모의 역대급 유상 증자를 의결하며 실탄을 충전했다. 증자가 마무리되면 케이뱅크의 자본금은 917억원에서 2조1515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카카오뱅크(자본금 약 2조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토스뱅크가 셋째 인터넷은행으로 인가를 받으며 시장의 열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토스뱅크는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 대출 비율을 영업 첫 해인 올해 말 34.9%로 설정했다. 내년엔 42%, 2023년 말까지 44%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중·저신용자 대상 신용 대출 잔액은 올해 1636억원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는 금융위원회의 은행업 본인가 승인 후 “실제 사업을 출시했을 때 대출이 많이 일어나면 빠른 증자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면서 “앞으로 5년 간 1조원을 목표로 매년 최대 3000억원의 추가 증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2000만 명이 사용하는 모바일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토스를 기반으로 ‘원앱(one-app)’ 방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할 예정”이라며 “별도의 앱을 구축하면 해야 할 일도 많고 중복투자 등 문제도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절약해 슬림한 조직으로 운영하면서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토스뱅크 역시 자체 CSS를 활용해 중신용자 대출 시장에 드라이브를 건다. 기존 신용 평가사(CB사)의 데이터를 1차 검증 장치로 활용한 후 토스 앱에서 5년 이상 쌓아 온 금융·비금융 데이터를 결합해 신용 등급을 매긴다.

토스 관계자는 “예컨대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나 자영업자 중엔 상환 능력이 되지만 CB사 기준으로 7등급으로 분류돼 대출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의 카드·계좌·부동산·통신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해 상환 능력이 되는 고객을 4~5등급으로 평가받을 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중금리대출 시장 수성에 잰걸음
인터넷은행들이 중금리 대출에 특화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분명하게 잡으면서 저축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저축은행은 오랜 기간 제도권 내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취급해 왔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금리 대출 규모(11조2788억원)에서 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의 74.5%다. 또 법정 최고 금리 인하(24%→20%)로 저신용자의 고금리 대출이 막히면서 고객 풀이 줄어들자 중신용자 중금리 대출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 금리 인하, 상품 확대, 노하우 등을 통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은 연 6.9~15.4%에 최대 1억원을 빌릴 수 있는 신용 대출과 연 6.9~11.8%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중금리 대출 상품 강화에 나섰다. JT친애저축은행은 중금리 대출 상품의 대출 기한을 최장 6년에서 10년으로, 대출 한도는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하나저축은행도 최저금리 5.9%에 1억원 한도까지 대출되는 비대면 중금리 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다만 일각에선 인터넷은행의 가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제한된 환경으로 인해 업체들이 활용할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다. 중국에선 앤트그룹이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 많게는 10만 개의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한국 업체들은 100여 개가 전부인 실정이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해도 상환 능력이 되는 사람을 새롭게 발굴하고 갚지 못하는 사람을 얼마나 걸러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면서 “업권 간 경쟁이 격화될 수 있고 금리 경쟁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원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선 금리(가격)가 내려가 좋을 수 있지만 신 파일러들이 대출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소비자 선택지가 넓어졌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