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테크 등 ESG 아이템 보유한 스타트업 몸값 급등…투자 제안서에도 ESG가 필수 항목으로
[ESG 리뷰] 이슈 소위 ‘갑질’로 여겨지는 기업의 불공정 관행이나 불합리한 노동 조건 등은 여론의 뭇매를 넘어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다. 내부적인 문제는 익명 게시판에서 임직원들의 폭로와 고발로 이어진다.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업의 제품은 언제든 소비자 운동의 타깃이 될 수 있다. 고객들의 행동주의는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기업의 변화는 어렵다. 이렇듯 빠른 변화가 어려운 대기업들을 위해 스타트업들이 파트너로 나섰다.투자받으려면 ESG는 필수…스타트업 뛰어드는 틈새시장
2020년은 변화의 해였다. 대기업들이 앞다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선언했고 ESG가 오히려 기존의 책임 투자나 지속 가능 투자를 압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 가치나 지속 가능성을 주장해 온 정부나 시민 사회가 아니라 ‘금융 시장’이라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ESG가 주는 ‘안정성’ 때문이다. 시장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기업의 재무제표나 실적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다. 가깝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그랬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도 마찬가지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는 대개 손실과 함께 온다. 투자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인 ‘어떤 상황에도 돈을 잃지 말라’는 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변수를 예측하고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ESG는 완벽하게 부합한다. ESG 경영 바람과 함께 기업들은 재무제표가 포함하지 못하는 기타 여러 비재무 정보를 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는 새로운 부담이 됐다는 목소리도 크다. ESG는 기업들엔 생존과 함께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된 셈이다. 실제로 금융 시장이 제시하는 ESG 기준은 종류와 내용이 다양하다. 특히 대기업들은 지배 구조를 바꾸기도 어렵고 진행 중이던 사업을 환경·사회적 영향을 이유로 즉시 중단하는 것도 힘들다.
이 지점에서 스타트업들을 위한 틈새시장이 발생한다. ESG를 조직이나 밸류체인에 바로 녹여 내기 어려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외부 협력 기관과 파트너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리스크 낮추기와 스타트업의 성장 요구가 딱 맞아떨어지는 양상이다.
최근 대기업 주도의 스타트업 투자 및 지원 프로그램을 보면 선발 분야나 주관 기관을 가릴 것 없이 ESG 스타트업을 찾는다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히 기후테크 등 환경과 연결된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폐기물·탄소 거래 등의 직접적인 환경 솔루션뿐만 아니라 농식품 산업처럼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주요한 출자자들인 대기업과 각종 기관들이 ESG를 요구해 제안서에 ESG가 필수로 들어간다. ESG 아이템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기대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할 기회를 얻기 위해 찾아오는 일도 부쩍 늘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에 가장 중요한 ‘고객’들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들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좋은 기업’이 될 것을 요구한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제품과 서비스를 테스트하며 끊임없이 사업 모델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변화 대응, 빠른 소통을 통한 고객과의 거리 좁히기, 잘못된 관행이나 제품에 대한 신속한 사과와 대응 역시도 가능하다.
ESG 적용 방향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은 제품과 서비스 간의 밸류체인 자체의 변화도 이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행동주의가 금융 시장을 움직이고 금융 시장의 요구가 ESG로 구체화돼 가는 이 흐름은 스타트업에 기회다. ESG의 대표 기업으로 포지셔닝하거나 대기업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ESG 영역에 대안을 제시한다면, 투자나 협업의 기회는 더 가까워진다. 리하베스트, 동구밭 등 ESG 스타트업 발굴 나선 임팩트 투자사
이를 제대로 해낸 대표적인 한국 스타트업으로 리하베스트와 동구밭 등이 있다. 리하베스트는 식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훌륭한 식품과 원료로 재가공하는 기업이다. 리하베스트는 창업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OB맥주와 맥주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리껍데기 재가공 계약을 했다.
발달 장애인들을 교육하고 채용해 고급 수제 비누를 만드는 동구밭 역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환경적 가치와 30여 명 이상의 발달 장애인을 채용하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고객과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작년 매출은 6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두 기업은 모두 친환경 제품은 물론이고 서비스 생산 방식, 자유로운 조직 문화, 공정성을 추구하는 보상 체계 등을 인정받으며 브랜드를 구축한 곳들이다. 고객들은 비슷한 가격이나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라면 기꺼이 ESG를 추구하는 기업들을 위해 지갑을 연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소풍과 같은 임팩트 투자사들이 ESG 경영과 스타트업의 친화도를 올리기 위해 나섰다. 가게 마감과 동시에 버려지는 식품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마감 할인 플랫폼 ‘라스트오더’는 첫 투자까지만 해도 가격을 중심으로 ‘합리적 소비’를 강조하는 사업 전략으로 운영됐다. 소풍은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경과 관련된 기업 방향성을 제고하고 줄어든 탄소 배출량, 음식물 폐기물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기를 추천했다. 그 결과 현재는 씨유·세븐일레븐·미니스톱·롯데마트 등의 대기업 프랜차이즈 입점에 성공하고 수십만 회원을 갖춘 서비스로 성장했다. 누적 투자 역시 70억원에 이르는 등 성장세다.
ESG는 임팩트 투자사에도 변화를 불러 왔다. 과거 가치 위주의 투자와 선행 투자 등 기업의 실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평가됐던 임팩트 투자사에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대기업과 투자사들이 늘었다. 소풍이 3년째 진행하는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 코스’도 임팩트 투자에 나서는 정부 기관, 투자사, 기업 관계자들로 금세 만석이다. 소풍을 비롯한 임팩트 투자사들은 기업과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투자가 모든 투자의 기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스타트업에 부는 ESG 바람은 그 시작이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