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100주년 맞이한 중 공산당…철저한 통제로 불안 요소 억눌러
[글로벌 현장]중국 공산당은 지난 6월 1일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겉에서 보이는 중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마다 국기인 오성홍기와 100주년 경축 문구가 새겨진 붉은 현수막이 내걸렸다. TV 황금 시간대는 공산당 역사 드라마가 점령했다. 웬만한 인터넷 홈페이지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열면 첫 화면은 공산당 100주년 축하 메시지로 장식됐다.
2050년 ‘세계 최강국’ 목표
중국에서는 ‘당은 아버지, 국가는 자식’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공산당이 국가를 세우고 발전시켰다는 얘기다. 충성의 대상도 국가가 아니라 공산당이다.
1921년 7월 붉은 깃발을 올린 중국 공산당은 1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당원 9200만 명의 초거대 정당으로 자리잡았다. 세계에서 권력을 가장 오래 유지한 정당이기도 하다. 중국은 공산당 치하에서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랐다. 이제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공산당이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창당할 때만 해도 마오쩌둥 등 대표 13명을 포함해 당원은 50여 명에 불과했다. 산업화 초기 단계에 양산된 노동자들이 가세하고 민족해방운동이 일어나면서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이후 1957~1961년 독자적 산업화 전략인 ‘대약진 운동’, 1966~1976년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을 펼쳤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위기에 몰린 공산당이 꺼낸 카드는 경제 발전이었다.
마오쩌둥 주석에 이어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 주석은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정치는 공산당이 독재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시장 경제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지도자 자리를 계승한 장쩌민 주석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에 올랐고 2019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도 달성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35년 선진국, 2050년 세계 최강국’이라는 비전을 내놓았다. 이런 경제 발전은 중국 국민이 공산당을 지지하는 가장 큰 근거다.
중국 공산당은 건국 이후 7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해 왔다. 세계 최장수 집권당이다. 그런 공산당이 앞으로도 건재할 것인지에 대해선 견해가 갈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의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고 내부에선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게 위기론의 근거다. 중진국으로 발전한 많은 국가에서 국민이 민주화의 열망을 분출했던 경험이 중국에서도 재연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런 분석에 대해 중국 내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상황을 서구 시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며 발전과 개혁을 위해 일부의 이익을 희생하면서도 정책을 일관적으로 밀어붙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공산당은 당원 9200만 명을 기반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2200여 명, 중앙위원 370여 명, 정치국원 25명,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주석 1명으로 올라가는 피라미드 구조다. 승진하려면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지도부에 국민이 상당한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도 체제 안정 이유로 제시된다. 시 주석이 ‘부정부패를 척결한 지도자’라고 인정받는 것도 권력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공산당 내부 견제 실종은 문제
이런 외형적 성장과 발전에도 중국 공산당의 일당 지배에 따른 인권 문제 등 부작용이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권력 고착화로 부패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내세운 국가임에도 빈부 격차가 상상을 초월해 심각한 사회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7년 지니계수는 0.467이다.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를 넘으면 빈부 격차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중국 외부에선 공산당이 철저한 통제를 통해 이런 불안 요소를 억누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1989년 4월 톈안먼 사태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톈안먼 사태는 금기어가 됐고 톈안먼광장은 지금도 외국 기자들의 입장을 차단하고 있다.
공산당은 ‘만리방화벽’으로 국민의 해외 인터넷 접근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에서 민감한 단어들을 쓰면 계정을 정지시킨다. 반중 성향의 홍콩 빈과일보를 반강제로 폐간시켰고 음성 기반 소셜 미디어 클럽하우스도 화제가 되자마자 막아 버렸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반체제 인사들끼리 모이기도 어려운 구조다.
이런 통제가 앞으로도 통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당의 집단 지도 체제에서 시 주석 1인 체제로 변화하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부패 척결 과정에서 공산주의청년단이나 상하이방 같은 파벌이 무너져 현 지도층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없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의 견제는 중국과 공산당에 가장 큰 도전이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기 4년 전인 2006년부터 ‘주요 2개국(G2)’이라는 용어를 내놓으며 중국을 최대 라이벌로 지목했다.
중국의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현재 국제 정세를 미국이 이끄는 ‘세계 연합팀’과 ‘중국 단독팀’의 대결로 분석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1(미국) 대 1(중국) 구도보다 동맹국을 규합하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전략이 더 부담스럽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최근 유럽연합(EU)과의 정상 회의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함께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신설하기로 했다. 또 주요 7개국(G7)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 회의에서도 중국을 견제하며 대중 포위망 확대에 나섰다. 서방 국가들은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하며 중국의 국제적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던 한국 정부의 기류도 변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 회담 공동 성명에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관련 문구가 포함됐다. 한국 정상이 서명한 성명에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두 사안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7 정상 회의에서도 한국은 대중 견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3일 참석한 G7 정상 회의 ‘열린 사회 성명’에는 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 등의 가치를 보호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이 주로 신장위구르자치구·대만·홍콩 문제 등을 놓고 중국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한·미 정상 회담에서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반도체와 배터리, 의료 용품은 중국이 가장 시급하다고 여기는 품목”이라고 지적했다. 한·중 관계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확보할 발판이 마련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미국 중심 세계 연합팀의 압박에 직면한 중국은 러시아 등 기존 동맹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기술 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35년까지 인공지능(AI)·양자컴퓨터·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과학 기술 영역 연구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리커창 총리는 “10년 동안 칼 하나를 가는 정신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중국)=강현우 한국경제 특파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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