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한계 느낀 윤석열 입당에 최재형 출마 선언
친이·친박 이어 15년 만에 계파

[홍영식의 정치판]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카페에서 열린 청년 싱크탱크 ‘상상23 오픈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8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하우스카페에서 열린 청년 싱크탱크 ‘상상23 오픈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3지대에서 일을 도모하려 해 보니 거대 양당 정치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력·전략 등 모든 부문에서 한계를 절감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이유에 대해 캠프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지난 7월 중순까지만 해도 윤 전 총장과 캠프 내 분위기는 중원에서 일을 도모해 보자는 견해가 우세했다. 제3지대에 머무르며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들이고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최종 승리한 후보와 단일화 경선을 치르는 것이 목표였다.

윤 전 총장의 한 정치 참모는 “국민의힘 간판으로는 중원과 중도층의 지지를 확 이끌어 내기 어려운 만큼 제3지대에서 힘을 키운 다음 국민의힘과 적어도 대등한 관계에서 단일화, 야권 통합을 주도하자는 것이 캠프의 대세였다”고 말했다. 그래야 대선 본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러면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경선이 마무리되는 11월쯤 단일화 경선을 거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그렇게 예측했다.

하지만 한계가 적지 않았다. 우선 처와 처가를 둘러싼 검증 공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윤 전 총장의 한 측근은 “처와 둘러싼 이른바 ‘쥴리’ 논쟁만 하더라도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은커녕 매일 쏟아지는 의혹에 즉각적인 방어 전략을 짜는 것도 어려웠고 정무적 판단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며 “방어막을 쳐 줄 당의 힘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이어 “중원지대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국민의힘이라는 거대한 병풍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특히 처가와 처를 둘러싼 검증 공방이 벌어졌을 때 개인 플레이를 하다 보니 대응이 체계적이지 않고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의 메시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말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른바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이후 지지율 상승)’를 제대로 누려 보지 못했다는 것이 캠프의 분석이다.

“검증 공세에 효과적 대처 못해…국민의힘 병풍 절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견제도 윤 전 총장의 조기 입당에 한몫했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경선이 시작되는 8월 말까지 입당하지 않는다면 이후 단일화도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특히 윤 전 총장 입당 전 캠프에 합류한 국민의힘 인사들의 징계까지 거론했다. 윤 전 총장 캠프에 들어간 국민의힘 인사는 이학재 전 의원(상근 정무특보), 함경우 전 조직부총장(상근 정무보좌역), 신지호 전 의원(캠프 상황실 총괄부실장), 박민식 전 의원(기획실장), 캠프 대변인에 발탁된 이두아 전 의원, 김병민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대위원 등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 인사들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설상가상이었다. 윤 전 총장의 또 다른 측근은 “대선 승리를 위해선 중원 장악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조기 입당에 대해 캠프 내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았음에도 전격적으로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앞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윤 전 총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유로 국민의힘에 입당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모두 공고한 양당 체제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과 같이 수십 명의 계보 의원을 거느리는 거물 정치인들은 언제든 기존 정당 체제를 흔들어 자신의 정당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최 전 원장과 같이 계보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정치 신인들로선 대선을 불과 7개월 앞두고 정당 밖에서 자신의 정치 세력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오후 유튜브 채널 최재형 TV를 통해 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오후 유튜브 채널 최재형 TV를 통해 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싫든 좋든 국민의힘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기왕 제3지대에서 오래 머무르기 힘든 상황이라면 국민의힘에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 당을 장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함에 따라 윤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 모두 일정 부분 중도층 탈락이라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해 윤 전 총장을 돕기로 했지만 국민의힘에 함께 갈 수 없는 호남 출신 인사들은 고민이 깊다. 윤 전 총장 캠프 인사 중 상당수가 여전히 조기 입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에 일찌감치 들어가 최종 후보가 되는 것과 바깥에서 단일 후보가 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은 중도 지지 획득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전·현 의원 수십명씩 윤·최 캠프로 급속 이동

어쨌든 윤 전 총장이 전격 입당하고 최 전 원장이 입당 뒤 출마 선언을 하자 그간 어정쩡하게 있던 의원들은 두 갈래로 급속하게 갈리고 있다. ‘친(親)윤석열’과 ‘친최재형’ 신계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국민의힘 내 계파 형성은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가 2006년 만들어진 이후 15년 만이다. 친이계·친박계도 와해되고 양 캠프로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내 윤 전 총장 측 전·현직 의원들은 5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진석·권성동 의원은 윤 전 총장의 오랜 친구로 일찌감치 돕고 있다. 장제원 의원이 캠프 총괄실장 역을 맡고 있다. 조직본부장에 이철규 의원, 부본부장에 강승규 전 의원, 상황실 총괄부실장에 윤한홍 의원, 상임전략 특보에 주광덕 전 의원, 상임정무특보에 정용기 전 의원 등이 합류했다. 김선교·김성원·박성중·서일준·안병길·유상범·윤주경·윤창현·이달곤·이만희·이용·이종배·정점식·정찬민·지성호·최형두·태영호·한무경 의원 등도 윤 전 총장 측 인사로 꼽힌다.

최 전 원장을 돕는 정치인으로는 일찌감치 지지를 선언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종합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3선 출신의 김영우 전 의원이 있다. 김미애·김용판·박대출·박수영·이종성·조해진·정경희·조명희·조태용·최승재 의원과 신상진·이춘식·정옥임 전 의원 등도 최 전 원장을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원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 등도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책 전문가들 영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영입했다. 최 전 원장 캠프 경제 전문가로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김대기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합류했다. 둘 다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 관료를 지냈다. 안보 전문가로는 역시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을 영입했다.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이낙연 전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등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유불리 계산을 하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이 지사 측은 대선 본선에 진출할 경우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조기 입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바깥에 있을 경우 자신들의 지지층 중 일부가 이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윤 전 총장 입당으로 그런 걱정 하나는 덜었다는 분위기다.

반면 국민의힘 기존 주자들은 잔뜩 경계하고 있다. 특히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모두 입당하자마자 당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데 대한 견제다.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은 두 사람에 대한 치열한 검증을 예고했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모두 이제 내부 공격에도 직면하게 되면서 국민의힘도 본격 대선 경선전의 막이 올랐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na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