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2B 기업들의 탄소중립 대응 전략…화학·에너지·건설 등 업종별 분석
[ESG 리뷰] 기후 변화를 막는 것이 인류 전체의 당면 과제인 만큼 각국 정부는 물론 많은 글로벌 기업도 앞다퉈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대선언의 시대(big pledge era)’라고 했다.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산업 부문에서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실제로 구체적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 B2B 업종의 선도 기업들은 어떻게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자 하는지 그들의 전략을 살펴봄으로써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화학) 독일 바스프(BASF)는 2030년까지 우선 탄소 중립 성장을 달성한 뒤 순차적으로 ‘2050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단계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 중립 성장은 제품 생산량이 늘어나도 탄소 배출량이 함께 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 탄소 관리 전략 아래 비즈니스 운영 방식 자체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바스프는 우선 공장 내 에너지 효율성 개선에 대한 투자 규모를 기존 연간 2억5000만 유로 수준에서 연간 4억 유로 규모로 대폭 확대하고 글로벌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최대한 카본프리(carbon-free) 전력으로 구매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2050 탄소 중립은 획기적 저탄소 기술과 신공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총 연구·개발비의 절반을 에너지 효율성 향상과 온실가스 감축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에너지) 네덜란드 쉘(Shell)은 에너지 산업 생태계 전체의 관점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대형 수요가들과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선박 연료유의 주 고객인 해운업계를 위해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와 함께 ‘해운업의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을 제시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탄소 배출 제로 연대(Getting to Zero Coalition)’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항공업계와는 지속 가능한 항공유 개발을 위한 ‘내일을 위한 맑은 하늘(Clean Skies for Tomorrow)’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또 글로벌 탄소 포집 저장(CCS : Carbon Capture and Storage)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 중인데 2035년까지 연간 2500만 톤의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 저장한다는 목표로 글로벌 CCS 프로젝트 총 8곳에 참여 중이다. 쉘은 탄소 포집과 이송, 저장 인프라 구축, CCS 설비 운영과 상용 솔루션 개발 등 전 영역에 걸쳐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설) 스웨덴 스칸스카(Skanska)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고 2045년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건설 프로젝트별 총탄소량을 관리할 수 있는 고유의 툴 ‘EC3(Embodied Carbon in Construction Calculator)’를 개발했다. EC3는 약 2만6000여 종 건설 자재의 탄소 발자국을 보여주는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인데, 건설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공법에 따른 총탄소량(embodied carbon)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자재나 공법을 바꿨을 때와 탄소량을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해 자연스럽게 저탄소 자재와 공법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스칸스카는 2019년 EC3 파일럿 버전을 개발한 후 업계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무료 공개하기로 결정했는데 2020년 5월까지 약 6500개사가 가입해 활용하고 있다. 스칸스카는 앞으로 탄소 중립 빌딩에 대한 사회적 니즈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저탄소 건설 솔루션을 새로운 비즈니스 경쟁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엔지니어링) 독일 지멘스(Siemens)는 203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로 2015년부터 사업장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총소요 전력의 70%를 그린 에너지로 구매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사내 각 부서별로 발생하는 탄소량을 측정하고 이에 따라 내부 탄소 가격(internal carbon pricing)을 부과했는데 이를 통해 조성한 기금은 탄소 감축을 위한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펀딩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멘스 UK 사업장은 2019년 톤당 13파운드의 내부 탄소 가격을 부과해 총 24만 파운드의 기금을 조성했고 이를 임직원의 탄소 저감 아이디어 제안 등 6개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한 바 있다.
글로벌 B2B 기업들의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을 종합해 보면 각 회사별로 상황에 따라 목표 시점과 추진 전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사의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바스프는 대규모 장치 산업이자 공정 산업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쉘은 에너지 사용 업계와 공동 이니셔티브에 주력하는 식이다.
탄소 중립이라는 원대한 목표는 기업만의 노력으로 달성될 수 없고 전후방 모든 영역에 속한 주체가 함께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B2B 기업은 파트너사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업계 내 인식 제고에도 긍정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스칸스카는 공개 플랫폼을 구성해 업계 전반의 인식 수준을 높이고 저탄소 건설업으로 빠르게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민세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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