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위기 시뮬레이션 자주 경험해야 정확한 대응 가능해

[강함수의 레드 티밍]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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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밖에서 수송 차량의 사고로 화학 물질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약 1000갤런이 주변 강 아래 제방에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주변 5km 이내 지역 주민들이 위험한 상황이다. 수송 차량에 부식이 있었다고 한다.”

위기 리더십 워크숍을 진행할 때 이처럼 회사와 관련된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 제시해 본다. 지금 이런 상황을 보고 받는다면 가장 먼저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묻는다. 임원은 “우리에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관리 체계가 그만큼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한다. 리스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위험 발생 요인도 충분히 관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실제 발생했을 때 그 영향은 더욱 예측할 수 없다. 리스크는 ‘화학 물질의 유출’ 하나인데 그것이 미치는 피해 범위, 희생자, 지역 사회와의 관계, 개입하는 이해관계인 속성, 원인과 결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 의사 결정에 고려해야 할 변수는 수십 가지다.

가상의 시나리오로 위기관리 체계 점검해야

2001년 가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 비행기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사건이 수습된 후 ‘9·11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당해 봄과 여름 미국 정보 기관들은 알카에다가 엄청난 사건을 계획 중이라고 강하게 경고하는 보고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위원회는 시스템의 경고등이 빨간색이었는데 왜 대처하지 못했는지 정보 기관 책임자에게 물었는데 그는 “그 정보는 ‘가상(假想)’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위기관리를 준비할 수는 없다. 조직의 어떤 리더도 미래에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을 가정해 현재의 자원·인력·시간을 투입하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위기관리는 ‘가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고 활용해야 한다. 위기관리는 ‘가상’의 위기 상황을 ‘실제’라고 보고 조직의 대처, 의사 결정의 기준과 원칙, 내부 구성원의 책임과 역할을 제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가상의 접근법이 중요한 이유는 조직 내부의 질문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면 조직 내부는 언제나 구태의연하고 빤한 질문과 답에 의지하게 된다.

‘엄청난 참사가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 조직이 된다. 단순히 과거에 해온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조직이 되는 것이다.

“우선 화학 물질의 특성을 세밀하게 고려해 피해 범위를 최대한 축소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부, 감독 기관과 최대한 협력한다. 화학 물질에 대한 정보와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역학적 정보를 파악해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 지역 주민들의 피해 현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채널을 만들어 불안감을 없애야 한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운송 차량의 실태, 관리 현황,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지시한다. 현장 대응 상황과 밝혀지는 정보, 앞으로 파악할 정보를 정기적으로 미디어에 알린다.”

가상의 접근법은 이처럼 가상의 위기 시나리오를 가지고 위기 대응을 고려하면서 다시 조직의 위기관리 체계를 살피게 만든다.

리더는 지금 운송 차량의 현황, 관리 기준과 원칙, 화학 물질의 특성 정보와 유출에 따른 인명·환경 역학 정보, 유출 사고 발생시 피해 범위를 통제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고 그것을 위해 현재 준비된 장비는 있는지, 지역 주민과 커뮤니케이션은 누가 해야 하는지 등 조직에 여러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조직 담당자가 가상의 위기 상황이어도 실질적인 준비 행동을 하게 된다.

타조는 맹수가 나타났을 때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눈만 가린다. 앞에 나타난 위험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눈만 가린 뒤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한다. 회사의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타조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본인에게 나쁜 소식을 적극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 이처럼 의사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를 ‘타조 효과(ostrich effect)’라고 한다.

위기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것을 말한다. 의사 결정에 필요한 상황 정보는 언제나 부족하다. 이때 스스로 설정한 가정과 대치되거나 반박하는 부정적인 정보는 잘 들리지 않는다. 가상의 훈련은 위기 상황에서 리더를 타조 효과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평상시 위기 시뮬레이션을 자주 경험한 리더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평정심을 가지고 가상 접근법을 통해 파악했던 질문을 활용해 적절한 조치를 내린다. 가상 접근법을 활용하면 불확실성과 혼란의 위기에서도 리더와 조직은 가상으로 연습한 것처럼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줄 수 있다.


강함수 에스코토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