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몰입하고 더 나은 선택을 내리는 법

[서평]
하버드 출신 심리학자가 포커의 세계에서 배운 것은?
블러프
마리아 코니코바 지음 | 김태훈 역 | 한국경제신문 | 2만원


“우리 머리에서 나오는 최고의 속임수는 태생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이클 루이스의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겪게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투자할 주식을 고를 때, 진로를 결정할 때, 포커 경기에서 베팅을 더 해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까지…. 상황을 둘러싼 정보와 변수를 모두 고려하지 못했지만 섣부른 결정을 내리고 손해를 반복한다.

다른 버전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블러프’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뇌는 내재적 불확실성을 이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대로 끝인 걸까. 선택의 결과는 결국 운에 달려 있고 인생은 결국 주사위 던지기와 다름없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이 저자를 포커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는 포커를 통해 삶 전체에서 보다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려고 했다. 포커에서 얻은 통찰과 심리학·행동경제학을 넘나드는 풍부한 사례를 책에 담아 우리가 사고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식에 대한 비밀을 풀어 간다. 운과 실력의 경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 감정을 통제하고 자신에게 몰입하는 기술 등을 짚어 준다.

불확실성 속 의사 결정 방법

왜 하필 포커였을까. 포커 경기는 자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영역(자기가 가진 카드와 테이블에 놓인 카드)과 자신이 알 수 없는 영역(상대방이 가진 카드)으로 구성돼 있다. 운이 개입할 틈이 없는 체스와 순수하게 운에 좌우되는 룰렛과 달리 포커는 불확실한 정보와 확실한 정보가 공존한다. “포커 테이블에서 이뤄지는 운과 기술의 혼합은 우리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혼합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우월하게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저자에게 포커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포커를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삶을 플레이하는 법’을 배우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생전 포커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그는 1년 만에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여기에는 그가 포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에릭 사이델의 가르침을 받은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하버드 출신 심리학자와 세계 최고 포커 선수가 함께 펼치는 모험담은 코니코바가 에릭 사이델에게 포커를 가르쳐 달라며 무턱대고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사이델은 돈이 아니라 인생과 세상의 법칙을 배우고 싶다는 얘기에 함께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라스베이거스부터 시작해 마카오, 바하마 등 전 세계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는 포커를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을 배우는 데 성공했을까. 인생과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게 됐을까.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인간의 뇌에서 나오는 최고의 속임수라는 마이클 루이스의 말을 떠올려 보자. 이 책의 저자 역시 이를 최고의 ‘블러핑(속임수 혹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의미는 조금 다르다. 착각 또는 속임수가 우리를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술,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착각 말이다. 믿음 또는 희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불확실성의 정도,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 운과 실력의 비중을 알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성공 가능성이 65%인 문제를 앞두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확률은 장기적 차원에서는 일관성을 보이지만 단기적 차원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성공 확률이 84%라면 어떨까. 주사위를 여섯 번 던졌는데 여섯 번 모두 1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1만 번쯤 던지면 각각의 숫자가 비슷한 비율로 나오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기술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더 노력한다면 다음에 성공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운과 불확실성의 속성을 알고자 시작한 여정이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애초의 목적에서는 어긋났지만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미리 답을 정해 두고 그에 맞는 논거를 취사선택한 게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탐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종오 한경BP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