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출신 수장 뽑고 팀 단위까지 조직 개편
삼성전자 팔고 애플은 샀다…위험 자산 비율 높여
대체 투자 확대와 인력난 해소는 과제

[스페셜 리포트]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전체 자산이 처음으로 900조원을 돌파했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33년 만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47%에 달하는 규모다. 내년에는 전 세계 투자 ‘큰손’ 중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에 이어 셋째로 ‘1000조 클럽’에 가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600조원대를 운용했던 국민연금이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전략을 짚어봤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건물 전경. / 사진=한국경제신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건물 전경. / 사진=한국경제신문
직업을 갖고 일하는 국민이라면 대부분 국민연금에 가입한 만큼 국민연금은 흔히 우리의 ‘노후 자금’으로 불린다. 국민연금 수입은 크게 연금 보험료와 기금 운용 수익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 국민연금이 굴리는 전체 자산은 900조원인데 이중 공단 설립 후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금이 500조원이다. 국민이 400조원을 연금으로 부었고 이를 통해 500조원을 벌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셈이다.

미래의 ‘밥줄’인 기금 운용 수익률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연평균 4.58%의 수익률을 내던 국민연금은 2019년 설립 후 최고치(11.31%)를 기록했다. 2020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악재 속에서도 9.70%의 수익률을 올렸다. 2021년 7월 말 기준 수익률은 8.55%다. 한동안 500조~600조원을 맴돌던 운용 자금은 수익률이 상승세를 타며 2019년 700조원, 2020년 800조원, 2021년 상반기 900조원을 돌파했다.
900조원 굴리는 국민연금, 체질 확 바꿨다
위기 딛고 조직·투자 전략 정비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은 수익률을 내기까지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고비는 격랑의 2018년이었다.

앞서 기금 운용을 총괄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1999년 설립됐다. 당시 기금기획팀과 자금관리팀의 2팀 체계로 출발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투자 다변화 및 전문화’ 기조로 리스크 관리, 전산 시스템, 투자 지원 체계 등과 관련해 운용 조직과 운용 체계를 개편했고 2015년 해외 투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해외인프라팀과 외환운용팀을 설치했다.

하지만 2017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전북 전주로 기금운용본부가 이전되면서 운용 인력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정치 논리에 따라 아무런 금융 인프라도 없는 전주에 홀로 내려가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여파로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2017년 7월 중도 사퇴하면서 1년 3개월 동안 운용본부 수장이 공석인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선장’의 부재는 인력 이탈에 더욱 불을 붙였다. 급기야 부문별 운용을 이끄는 실장급이 줄줄이 퇴사했다. 기금 운용 ‘전선’에 직접 뛰어들어 투자를 집행하는 4개실(주식운용실장‧대체투자실장‧해외증권실장‧해외대체실장)이 공중에 뜬 셈이었다.

고급 인력의 이탈은 수익률 악화로 이어졌다. 2018년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은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2008년(-0.18%)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백조원대의 거대 자금을 운용하며 ‘전 세계 3대 연기금’이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정치권의 외풍에 휘둘려 고래가 아닌 수면 위에서 숨만 쉬는 ‘붕어’로 전락한 것이다.

당시 국민연금 측은 미‧중 간 무역 분쟁, 신흥국 신용 위험 고조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운용 상품들이 각각의 비교 기준인 벤치마크(시장 평균 수익률)를 훨씬 밑돌았다는 점에서 운용 역량에도 문제를 드러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어수선했던 기금본부 상황이 위험 능력을 떨어뜨려 실적 악화를 최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악몽의 2018년을 겪은 국민연금은 안효준 현 기금본부장을 투입하며 2019년 반격을 꾀했다. 안 본부장은 교보악사자산운용 대표와 BNK투자증권 사장 등을 지내 글로벌 투자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국민연금 내부 출신(기금운용본부 해외증권실장 등)으로 조직 이해도가 높은 것이 강점으로 꼽혔다.

국민연금은 중장기적으로 국내 채권의 비중은 감소시키고 주식과 대체투자의 비중을 높이겠단 방침이다. 안전 자산은 줄이고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 자산을 점차 늘려 수익률을 제고하겠단 전략이다.

안 본부장은 이를 실행으로 옮겼다. 우선 채권 비중을 전체 자산의 절반 이하로 낮췄다. 2009년 전체 자산의 75% 이상 차지했던 채권 비율을 2019년 47.6%로 축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식 비율은 17.8%에서 40.6%로, 대체 자산 비율은 4.5%에서 11.4%로 높아졌다. 동시에 해외 자산 비율을 높였는데 2019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 가며 국민연금도 해외 주식에서 30.63%의 수익률을 거뒀다. 해외 채권 수익률은 11.85%를 기록했다. 한국 주식도 하반기 반도체 산업의 실적 회복 기대에 힘입어 12.58% 수익률을 기록, 전체 기금 성적을 뒷받침했다. 그해 기금 운용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은 73조4000억원에 달했다. 1년 만에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며 반등에 성공한 것이다.
900조원 굴리는 국민연금, 체질 확 바꿨다
국민연금은 안 본부장이 투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동안엔 기금운용본부장이 본부 내 모든 업무를 직접 관장하고 있는 구조였다면 기금운용본부장 산하에 운용전략·리스크관리·운용지원 등 별도의 3개의 부문장직을 신설해 각 부문장들이 업무를 맡도록 했다. 기금운용본부장이 투자 분야만 직접 관장하게 해 국내외 주식·채권·대체 투자 등 운용 분야에 보다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팀 단위 조직 개편도 마쳤다. 기존의 국내와 해외로 나눠져 있던 대체 투자 관련 조직을 아시아투자팀·미주투자팀·유럽투자팀으로 개편했다.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국내투자팀을 아시아투자팀에 편입하고 해외투자팀은 미주투자와 유럽투자로 나눠 전문성을 한층 강화했다. 대체 투자 기능을 국내와 해외 관점이 아니라 글로벌 투자 관점에서 재편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해외 대체 투자 확대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대체 투자 수익률(7월 기준)은 6.83%로 지난해(2.38%) 수익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해 말엔 해외 증권 운용 조직을 해외주식실과 해외채권실로 세분화했다. 해외 투자 확대 기조에 따라 전문성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리하면 2년간 조직도가 ‘10실·1센터·1단’→‘3부문·11실·1단’→‘11실·1단 산하의 하부 조직(팀) 기능 개편’→‘12실·1단’ 체제로 변경됐다.

일각에선 ‘자본 시장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기금운용본부장의 권한이 대폭 축소되고 의사 결정 단계가 길어지며 비효율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국민연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휘청인 상황에서도 2020년(수익률 9.70%)과 2021년 상반기(7.49%) 잇달아 호성적을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안 본부장은 성과를 인정 받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후 처음으로 2회 이상 연임에 성공했다.
한국 주식 상위 10개 종목, 비율 낮췄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민연금은 어디에 투자할까.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외에서 어떤 주식을 담고 있을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들어(9월29일 기준) 연기금의 유가증권시장 순매도 규모는 22조5614억원으로 지난 한 해 순매도액 4조1002억원의 5.5배에 달한다. 연기금의 유가증권시장 순매도 행진은 국민연금의 한국 주식 목표 비율 조절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의 올해 말 한국 주식 비율 포트폴리오 목표치는 16.8%인데 상반기 기준 한국 주식 비율은 20.3%로 이를 웃돌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분석 결과 국민연금은 지난해 투자 종목 상위 10개사의 비율을 모두 낮췄다. 국민연금 한국 주식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10.7%에서 올해 상반기 9.16%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11.0%→9.97%, LG화학은 9.7%→7.86%, 네이버는 11.6%→9.9%, 삼성SDI는 10.0%→8.80%, 현대차는 10.2%→8.89%, 셀트리온은 8.3%→7.48%, 카카오는 8.6%→7.72%, 현대모비스는 11.8%→10.05%, 포스코는 11.7%→10.16%로 지분을 축소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모든 주식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는 종목도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8월 테스나 주식을 171만5807주 매수하면서 보유 비율을 10% 위로 높였다. 테스나는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테스트 전문 업체다.

삼성전자에 이어 한국 반도체 수탁 생산(파운드리)업계 2위 업체인 DB하이텍의 주식은 연초 순매도했다가 2분기에 다시 순매수했다. 상반기 기준 국민연금의 DB하이텍 보유 비율은 13.15%다. 증권가에서도 최근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파운드리 업황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파운드리 판가 인상이 올해 3분기부터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재차 부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900조원 굴리는 국민연금, 체질 확 바꿨다
미국 기술주 더 담았다
올해 상반기에도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 부문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17.73%)을 거뒀다. 이미 올해 말 달성해야 할 자산 비율(25.1%)도 넘어섰다. 상반기 기준 국민연금 해외 주식 비율은 25.7%다.

국민연금은 미국 주식을 대량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주식 현황 보고서(13 Form)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지난 6월 말 기준 미국 상장사 주식 평가액은 526억4200만 달러(약 62조4861억원)로 지난해 말 438억6200만 달러(약 52조642억원) 대비 20.01% 증가했다. 미국 주식을 1억 달러 이상 보유한 기관투자가는 매 분기가 마무리된 후 45일 이내에 보유 주식 현황 보고서를 SEC에 보고해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은 한동안 관망했던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대형 기술주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했다. 국민연금이 대형 기술주를 대거 사들인 것은 저가매수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연초부터 시작된 미국 국채 수익률 급등이 고성장 기술주를 강타해 투자 심리를 압박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부채 비용이 증가하고 현금 흐름이 나빠져 성장에 타격을 입는다. 반면 헬스케어 기기 업체 바리안메디컬시스템과 제너럴일렉트릭(GE)에 대한 보유 주식은 2분기 모두 청산했다.

또한 보유 종목 상위에 포진됐던 SPY 상장지수펀드(ETF)와 VOO ETF를 1분기에 전량 매도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SPY·VOO·IVV 등 3종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추종 ETF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IVV만 남기고 2종을 현금화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들 종목을 처분한 것은 차익 실현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두 종목 모두 지난 분기 7.5%씩 오르며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그 대신 국민연금은 MSCI USA 지수를 추종하는 PBUS ETF를 대거 사들였다. PBUS는 미국 대형주와 중형주 중심의 ETF다. 편입 종목 수가 S&P 500보다 100여 개 더 많고 기술주의 비율이 다소 낮다. 더 많은 종목을 담아 변동성에 대비하겠다는 국민연금의 의도로 해석된다. PBUS는 2분기에 7.5% 오르는 등 지난 상반기 내내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리하면 지난 6말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미국 주식 상위 10개 종목은 애플(포트폴리오 비중 5.50%), 마이크로소프트(4.60%), PBUS ETF(3.84%), 아마존(3.49%), 페이스북(2.06%), IVV ETF(1.88%), 알파벳C(1.85%), 알파벳A(1.83%), 테슬라(1.24%), 엔비디아(1.21%) 순이다. 전체 투자에서 상위 10위권의 총 비중은 27.49%로 집계됐다.
900조원 굴리는 국민연금, 체질 확 바꿨다
한국 투자 줄이고 대체 투자 확대
글로벌 연기금들은 최근 주식과 채권 운용 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해 부동산·인프라·사모투자 등 대체 투자를 늘려 가는 추세다. 대체 투자 수익률이 20%를 웃도는 연기금도 있다. 국민연금도 기금 운용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하반기에 한국 주식 비중을 낮추고 대체 투자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부터 국민연금은 글로벌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 부동산 개발사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하고 각 지역 우량 대체 자산에 대해 공동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 현재 국민연금의 대체 투자는 연말 목표(전체 자산의 13.2%)와 비교해 2.8%포인트 정도 적다. 반면 2분기 말 기준 한국 주식은 연말 목표(16.8%)보다 3.5%포인트 더 갖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이 계획대로 기금을 운영하고 호성적을 내기엔 대내외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올 하반기 들어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및 기준 금리 인상 논의가 본격화되고 헝다그룹을 비롯한 중국 부동산 부문에 대한 부실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기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이 상존하는 등 대내외 리스크 요인이 동시 다발적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도 발목을 잡는다. 해외 투자(약 370조원) 비율이 운용 자산의 40%를 넘어서면서 해외 투자 및 대체 투자에 능통한 인력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최근 5년 동안 운용역 절반 이상이 ‘물갈이’됐다. 최근엔 투자 실무 경력 요건을 삭제하며 채용 문턱도 낮췄다. 운용직 경력 개발 프로그램을 새로 도입해 직접 인재를 양성해 쓰겠다는 게 국민연금의 복안인데, 부족한 인력을 ‘선수’ 대신 ‘신참’으로 채워 보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물론 국민연금은 보상 체계를 개편하고 해외 연수나 해외 투자 기관 파견 근무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계약 기간 동안 경험을 쌓은 뒤 서울로 이직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의 인력난은 우리의 노후 자금이 달린 문제다. 코로나19와 같은 악재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성과를 내기 위해선 최고의 수익을 달성할 수 있는 운용 인력들이 필요한 만큼 앞으로 국민연금의 전문 인력 수급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이목이 쏠린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