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규제·ESG 열풍에 폐플라스틱 수요 증가
탄소 중립 시대의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부상

[비즈니스 포커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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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아직 재활용하는 비용보다 만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해 전 세계적으로 재활용률이 단 9%에 불과하다. 나머지 91% 중 79%는 매립, 12%는 소각돼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폐기물 처리 용량을 뛰어넘으며 환경 오염이 심각해졌고 2050년 넷제로를 위한 탄소 예산의 14%에 해당하는 560억 톤의 온실가스가 플라스틱 때문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대로 간다면 플라스틱 산업은 좌초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국들의 환경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제조 기업과 사용 기업에 대해 사용 이후 폐기 단계는 물론 제품의 설계·생산·유통 단계로 책임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한층 강화된 환경 규제와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투자 판단의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화학업계는 폐플라스틱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화학 기업들이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확대하고 썩는 플라스틱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폐플라스틱이 탄소 중립 시대의 ‘황금알’로 변신하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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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중립 시대, 신시장으로 부상

전 세계적인 환경 규제와 ESG 열풍으로 폐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면서 최근 가격도 급등세다. 환경부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월 압축 페트(PET) 가격은 kg당 329원으로 1년 전(209원)보다 57.4% 올랐다.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세척해 잘게 부순 형태의 플레이크 가격도 오름세다. PP 플레이크는 지난해 9월 kg당 248원에서 353원으로 42.3% 올랐고 PE 플레이크는 지난해 9월 274원에서 383원으로 39.8% 뛰었다.

아큐먼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2018년 세계 페트 재활용 시장 규모는 68억 달러(약 8조원)로 추정되며 재생 원료 사용 확대 흐름에 따라 2026년 125억 달러(약 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화학업계에서는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 사업이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는 안정적으로 폐플라스틱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 관련 기업과 손잡고 수거와 재활용 등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재활용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한국 최대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플라스틱 폐기물 회수와 재활용에 나섰다. LG화학의 재생 기술(PCR)을 통해 쿠팡의 전국 물류센터에서 버려지는 연간 3000톤 규모의 스트레치 필름이 PE 필름 등으로 재활용된다.

LG화학은 2028년까지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충남 서산에 있는 대산공장에 친환경 생분해 소재(PBAT)와 태양광 필름용 고부가 합성수지(POE) 등 총 10개 공장을 단계적으로 신설해 친환경 소재 사업의 메카로 육성할 계획이다. 먼저 연내 PBAT·POE 공장을 착공하는데 각각 연산 5만 톤, 10만 톤 규모로 건설된다.

PBAT는 자연에서 산소·열·빛과 효소 반응으로 빠르게 분해되는 석유 기반의 합성 플라스틱으로, 땅에 묻으면 6개월 안에 자연 분해돼 친환경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POE는 절연성과 수분 차단성이 높고 발전 효율이 우수해 태양광 패널 보호와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필름용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PBAT와 POE는 ESG 트렌드에 따른 썩는 플라스틱 수요 증가와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으로 2025년까지 연평균 30% 수준의 고성장을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PBAT·POE 두 공장 모두 2024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매출 증대 효과는 연간 약 4700억원 이상으로 기대된다. LG화학은 PBAT 개발과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티케이케미칼과도 협업하고 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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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원료로 다시 쓰는 기술 확보 경쟁

롯데케미칼은 프로젝트 루프를 통해 수거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한국 업계 최초로 재생 폴리에틸렌(PCR-PE) 포장 백을 자체 개발해 자사 제품 포장에 적용하고 있다. 포장 백의 원료인 PCR-PE는 고객사에서 수거해 PE 소재 폐포장 백으로 제조된다.

롯데케미칼은 친환경 사업 전략인 그린 프로미스 2030을 통해 폐플라스틱 재활용 제품 판매량을 100만 톤까지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2024년까지 울산 2공장에 1000억원을 투입해 11만 톤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 설비를 구축한다.

C-rPET는 폐페트를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기계적으로 재활용하기 어렵던 유색, 저품질 폐페트를 원료로 사용할 수 있고 반복적인 재활용에도 품질 저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SK그룹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순환 경제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SK종합화학에서 사명을 변경한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설비 구축 등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체질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 석유에서 만들어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다시 석유를 뽑아내는 세계 최대의 도시 유전 기업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은 지난 3년간 울산공장 신규 코폴리에스터(PETG) 생산 설비 증설을 완료하고 7월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SK케미칼은 케미칼 리사이클 코폴리에스터 ‘에코트리아(ECOTRIA) CR’을 9월부터 본격 상업 생산하고 리사이클 제품 판매 비율을 2025년 50%, 2030년 10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SK케미칼은 올해 5월 중국 폐플라스틱 리사이클 업체 지분 투자를 통해 케미칼 리사이클 원료와 케미칼 리사이클 페트 관련 제품의 한국 시장 독점권도 확보했다. 한국 최초 ‘케미칼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사’ 생산을 위해 휴비스와도 협업하고 있다.

SKC는 일본 친환경 소재 기업 TBM과 합작사 ‘SK티비엠지오스톤’을 설립하고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생분해 라이멕스 소재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착수했다.

생분해 라이맥스는 돌가루(석회석)에 생분해성 수지 PBAT, PLA를 혼합한 친환경 신소재로 다양한 일반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다.

생분해 소재는 최근 수요가 늘고 있지만 일반 플라스틱 소재보다 가격이 2~3배 비싸 시장 확대가 제한적이었다. 생분해 라이멕스는 자연에 매장량이 풍부한 석회석을 최대 80%까지 활용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솔루션은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나프타를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이렇게 생산한 나프타를 플라스틱 기초 원료로 재생산해 플라스틱 반복 사용이 가능한 순환 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주)한화(기계)와 한화솔루션은 최근 충청북도와 2050 탄소 중립 실현을 위한 폐플라스틱 열분해 활성화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금호석유화학도 폐플라스틱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폐폴리스티렌(PS)을 열분해 처리해 얻은 친환경 원료인 재활용 스티렌(RSM) 제조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쉽게 재활용되지 못하던 폐폴리스티렌까지 수거해 열분해 등 화학적 재활용 방식을 통해 자원 선순환 및 탄소 저감을 실현할 계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