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프리미엄 막걸리 ‘삼양춘’에는 인천의 전통과 문화가 담겨 있다.
[막걸리 열전] 우리 선조들에게 술은 단지 맛과 흥을 위한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관혼상제에서 예를 갖출 때도,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때도 늘 함께하는 문화 그 자체였다. 그 덕분에 전국에는 각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담은 전통주가 전해져 내려온다.그중에서도 인천의 삼해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시대부터 궁과 사대부, 백성들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을 정도다. 그 흔적은 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이규보는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시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인천에 살던 그가 즐겨 마시던 술이 바로 삼해주다. 그는 ‘동국이상국집’에 삼해주의 맛이 뛰어나다고 감탄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어의 전순의가 1450년께 쓴 ‘산가요록’, 1670년대 쓰인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삼해주 빚는 법이 실려 있다.
‘전통주 1세대’ 양주장으로 꼽히는 송도향전통주조는 바로 이 삼해주에서부터 출발했다. 삼해주가 평생 술 빚는 일과는 인연이 없던 강학모 대표를 전통주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역 공기업을 퇴직한 뒤 제2의 인생을 계획하던 그에게 삼해주의 오랜 전통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고향인 인천에 기여할 수 있고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잠재력이 있는 사업을 찾아나서던 그에게 삼해주는 삼박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아이템이었다. 막걸리가 한 병에 만원이라니
지금은 막걸리를 생산하는 것이 트렌디한 스타트업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양조’를 경쟁력 있는 사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때였다. “‘집에서 빚는 술로 무슨 비즈니스를 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저 역시 어릴 때 어머니가 술 빚던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봐 왔으니까요.” 강 대표가 가족들을 설득하기까지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첫 발자국은 역시 맛을 내는 일. 이전까지는 강 대표 역시 맛을 음미하기보다 빨리 취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들이켜던 ‘폭탄주’가 술의 전부였다. 그는 이름이 알려진 전국 팔도의 전통주 연구소를 모두 찾아다니며 연구를 시작했다. 현장에서 맛을 보고 집에 돌아와 직접 술을 빚어 보며 꼬박 1년여를 보냈다. 원하는 맛을 내기까지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2013년, 첫 ‘삼양춘’이 탄생했다. 삼해주는 12일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술을 빚어 완성되는 술이다. 삼양춘은 이 삼해주를 현대인의 취향에 맞게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둘째 술까지는 멥쌀을, 셋째 술에서는 찹쌀 지에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빚는다. 이렇게 완성된 술에서는 은은한 청주 향이 난다. 마실 때는 크림치즈처럼 묵직하고 걸쭉하지만 부드럽게 넘어간다. 알코올 함량 12.5%로 다른 막걸리에 비해 도수가 높기 때문에 벌컥벌컥 들이켜기보다는 작은 청주잔이나 와인잔에 담아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이 좋다.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라 다양한 음식과의 밸런스를 자랑하지만 특히 삼겹살 구이, 스테이크, 돼지고기 수육, 수제 햄버거처럼 지방이 풍부한 음식에 곁들이면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 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 병에 1만원이라는 가격 때문이었다. 지금은 한 병에 10만원 이상 하는 막걸리도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프리미엄 막걸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상황이었다.
삼양춘은 고서에 쓰인 전통 제조법 그대로 인공 감미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완성한 고급 막걸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중의 3000원짜리 막걸리와 비교되기 십상이었다. 오죽하면 삼양춘이라는 막걸리 이름보다 막걸리 가격이 더유명하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삼양춘의 낯선 맛도 선뜻 손이 가지 않도록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 소비자들은 목넘김이 가벼우면서도 탄산이 세고 공장에서 갓 출하된 막걸리를 최고로 쳤다면 삼양춘은 충분한 숙성을 거쳐 탄산이 없고 묵직했기 때문이다. 막걸리 펍이라는 정면 승부
품질과 맛에서만큼은 자신감이 있던 강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인천 송도에 막걸리 펍을 연 것이다. 일단 와서 맛보면 삼양춘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펍에서는 막걸리 가격도 할인해 판매했다. 반응은 예상하던 대로였다. 확실히 시중 막걸리와는 깊은 맛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개업 초반에는 삼양춘 막걸리만을 판매했지만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시중의 여러 막걸리를 함께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호평이 쏟아졌다. 자연스럽게 비교 시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가격에 거부감을 느끼던 소비자들도 까다로운 품질 관리와 정성스러운 제조 과정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납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펍이 고객에게 막걸리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줬다면 삼양춘에는 시야를 넓혀 주는 기회가 됐다. 막걸리를 마시는 고객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그전까지는 전통에 따라 단맛이 전혀 없는 드라이한 맛을 고집했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객과 눈을 맞춰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 막걸리에 감칠맛·단맛·산미를 더한 새로운 버전의 삼양춘이 탄생했다. 이러한 ‘진화’는 2018년 대한민국 주류 대상의 프리미엄 탁주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할 때까지 거듭됐다.
삼양춘은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에서 ‘1세대’로 인정받으며 두꺼운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들어 막걸리 시장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팬들도 생겨나는 중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고 송도향전통주조의 사업 확장을 위해 얼마 전 핵심 인력을 스카우트했다. 일본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던 강 대표의 딸 강예진 씨가 마케팅 팀장으로 합류한 것. 3개 국어에 능한 그는 마케팅과 함께 해외 수출을 위해 바이어들과 접촉 중이다. 삼양춘에 담긴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바다를 건너 안착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은아 기자 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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