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2조원 투입, 100% 한국 기술 제작…KAI ‘총조립’ 한화 ‘엔진’ 현대중공업 ‘발사대’

스페셜 리포트] 우주 개발 대항해 시대
발사대로 이송하여 기립장치에 장착된 누리호 비행 기체.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대로 이송하여 기립장치에 장착된 누리호 비행 기체.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 개발·발사를 계기로 한국에도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12년간 약 2조원이 투입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에는 30개 주력 업체를 포함해 300여 곳의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해외에서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 시대를 넘어 스페이스X·블루오리진·버진갤럭틱 등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것처럼 만큼 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누리호 개발 참여 300개 기업…‘뉴 스페이스’ 시대 주역으로 등장
300개 기업·500명 참여·1500kg 위성

누리호 프로젝트는 2010년 3월 시작됐다. 실용 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km)에 투입하는 발사체 개발과 우주 기술 확보를 목표로 1조9572억원이 투입됐다. 그중 전체 사업비의 80%인 1조5000억원이 참여 기업에 쓰였다. 나로호 1775억원의 8.5배다.

300여 기업의 인력 500여 명이 1500kg의 위성을 띄우기 위해 힘을 모았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 기업 관계자는 “한국의 위성 자력 발사로 한국형 발사체의 신뢰성을 축적하고 한국 산업체를 육성·지원해 자생적 우주 산업 생태계가 조성될 것”이라며 “국가 우주 계획에 맞춰 역량을 강화하고 민간 우주 산업체 육성으로 신산업 창출 기회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누리호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특히 각 기업의 기술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개발 초기부터 산·연 공동연구센터를 구축하고 기술 이전에 힘썼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누리호 체계 총조립과 엔진 조립, 각종 구성품 제작 등 기술 협력으로 산업체의 역량을 강화했다. 점진적으로 기업의 역할을 확대해 향후 발사 서비스 주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누리호 개발의 핵심 기업은 한화그룹과 한국항공우주(KAI)다. 엔진 총조립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체계 총조립은 KAI가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엔진과 터보펌프, 시험 설비 구축 등에 참여했다. 75톤 액체 로켓 엔진을 개발해 우주 궤도에 도달하는 동안 극한 조건을 모두 견뎌낼 수 있도록 제작했다.

한화는 한국의 항공 우주 사업 초기부터 킥모터와 위성, 엔진 기반 설비 등 여러 분야에서 정부 사업에 참여해 왔다. 누리호 제작·발사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고 향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우주 개발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화그룹의 우주 산업은 올해 3월 출범한 ‘스페이스허브’가 맡고 있다. 이 조직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가 리더를 맡아 이끌고 있다. (주)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과 한화가 인수한 인공위성 기업 쎄트렉아이 등이 참여 중이다.

한화 관계자는 “1990년대 과학 로켓부터 누리호까지 발사체를 비롯한 여러 위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발사체 등 한국에 필요한 우주 산업의 모든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KAI는 2014년부터 누리호 프로젝트에 참여해 ‘지휘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300여 기업이 납품한 부품 조립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조립 설계 △공장 설계 △조립용 치공구 제작 △1단 연료탱크 △산화제 탱크 △발사체 총조립 등을 맡았다.

누리호가 발사된 ‘제2발사대’ 역시 한국 기업이 제작했다. 제2발사대는 현대중공업이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4년 6개월에 걸쳐 제작했다. 누리호에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높이 48m의 초록색 구조물 ‘엄빌리컬 타워’도 구축했다.

현대로템은 누리호의 연소 시험을 담당했다. 2011년 기본 설계 용역 사업을 수주한 후 추진 기관 시스템 시험 설비에 참가했다. 2014년 구축 설계 및 시험 설비 제작에 나서 2015년부터 3년간 나로우주센터에 시험 설비를 구축했다.

체계종합은 유콘시스템과 카프마이크로 등 6개 기업, 추진기관·엔진은 에스엔에이치·비츠로넥스텍 등 9개 기업, 구조체는 두원중공업·에스앤케이항공 등 9개 기업, 열·공력 분야는 한양이엔지·지브엔지니어링 등 3개 기업이 맡았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을 계기로 한국 기업을 발굴, 육성하고 누리호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에 산업체가 대거 참여하면서 자생적인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 생태계가 크게 강화됐다”고 말했다.
75톤 로켓 액체엔진 연소 시험.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75톤 로켓 액체엔진 연소 시험.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로 위성 자력 발사·우주 수송 능력 확보

발사체 개발 기술은 국가 간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분야다.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 및 미국의 수출 규제(ITAR) 등으로 우주 발사체 기술 이전이 통제돼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 개발이 필요했다.

한국은 누리호 개발로 독자적인 위성 자력 발사와 우주 수송 능력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국가 우주 개발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현재 자력 발사 능력을 가진 국가는 러시아·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인도·이스라엘·이란·북한 등 9곳이다. 무게 1톤 이상의 실용급 위성 발사가 가능한 국가는 자력 발사 능력을 가진 국가 중 이스라엘·이란·북한을 제외한 6개국이다.

누리호는 설계부터 제작·시험·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이 한국 기술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중대형 로켓 액체 엔진 개발에 성공했고 우주 발사체 엔진 개발 설비를 구축했다. 누리호의 주 엔진인 75톤 액체 엔진은 개발 초기에는 기능과 성능 위주로 설계해 목표 대비 25% 무겁게 설계됐다.

하지만 반복적인 엔진 연소 시험 등으로 엔진 기능과 작동 환경에 대한 데이터 축적, 무게 감량을 위한 설계 개선, 구조 해석, 경량 소재 등이 적용돼 최종적으로 75톤으로 무게를 줄였다.

75톤 엔진은 누리호 발사 전까지 모두 33기의 엔진이 시험돼 지상 등의 환경에서 184회, 누적 연소 시간 1만8290초를 수행했다. 7톤 액체 엔진은 12기의 엔진을 테스트해 총 93회, 누적 연소 시간 1만6925.7초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이 총괄한 누리호의 발사대(제2발사대)는 기존 나로호 발사대(제1발사대)와 달리 지상에 타워를 설치해 발사체에 케로신과 산화제 등을 공급한다. 또 제1발사대가 러시아로부터 기본 도면을 입수해 국산화 과정을 거친 것과 비교해 제2발사대는 순수 한국 기술로 구축됐다.

제2발사대는 추력 300톤급인 3단형 발사체까지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순 규모면에서도 건축 총면적이 약 2배다. 제1발사대는 3300㎡이지만 제2발사대는 6000㎡다. 발사체 연소 시작 후 이륙 시점까지 냉각을 위해 분사되는 냉각수 유량도 2배다. 제1발사대는 초당 0.9톤, 제2발사대는 초당 1.8톤이다.


[돋보기] 나로호와 누리호
누리호 개발 참여 300개 기업…‘뉴 스페이스’ 시대 주역으로 등장
나로호와 누리호의 가장 큰 차이는 순수 한국 기술 투입 정도다. 나로호가 러시아 기술의 엔진으로 발사한 한국 최초의 발사체라면 누리호는 한국 기술로 개발한 엔진으로 우주로 향하는 최초의 발사체다.

엔진도 차이가 있다. 2단 로켓으로 제작된 나로호의 1단에는 170톤 러시아 엔진을 썼다. 한국 발사체는 맞지만 국산 로켓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로호는 러시아와 엔진 구매 계약을 할 때 발사에 실패하면 최대 3개까지 받기로 합의해 3차 발사까지만 가능했다. 나로호는 2009년 8월 25일(1차)과 2010년 6월 10일(2차)에 2차례 발사했다가 실패했다. 3차 발사일인 2013년 1월 30일에 비로소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반면 누리호는 순수 국산 로켓이다. 올해 발사와 내년 5월 예정된 2차 발사 외에도 추가로 언제든지 로켓을 쏠 수 있다. 탑재 중량도 나로호 100kg보다 15배 많은 1500kg이다.

목표 궤도도 다르다. 나로호와 누리호 모두 저궤도에 위성을 올려놓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나로호에 실린 과학 위성은 고도 300km에서 주로 활동하는 반면 누리호의 더미위성은 700km의 궤도를 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