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인프라 기반으로 비약적 성장…수많은 스타트업 끌어들이는 ‘낙수효과’도

[스페셜 리포트] ‘혁신 성지’ 판교밸리에서 본 미래
2012년 판교에 둥지를 튼 카카오는 현재 판교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카카오 제공
2012년 판교에 둥지를 튼 카카오는 현재 판교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카카오 제공
‘약 109조원.’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의 지난해 매출액이다. 1300여 개의 기업들이 사업을 영위하며 이 같은 매출을 올렸다. 판교테크노밸리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수치다.

지금의 판교테크노밸리를 있게 한 배경으로 카카오·엔씨소프트·넥슨·NHN·안랩 등 IT 분야 선두 기업들의 힘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빠른 성장을 거듭해 온 이들은 2010년께 이후부터 하나둘 판교에 몰려들었다. 크고 화려한 사옥을 지으며 판교의 경관은 미래 도시다운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 갔다.

또 예상을 뛰어넘는 ‘낙수 효과’도 일으켰다. 판교의 이미지를 ‘혁신’으로 바꾸며 수많은 IT 관련 스타트업들이 이들의 뒤를 따라 판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판교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이 기업들은 지금도 성장을 이어 가며 판교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판교테크노밸리 성장의 결정적 역할을 한 기업은 단연 카카오다. 카카오는 2012년 판교 시대를 열었다. 201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빠르게 퍼지면서 ‘국민 메신저’에 등극하며 사세가 급격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판교 랜드마크 된 엔씨소프트 사옥카카오가 카카오톡을 첫 출시했을 당시 직원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후인 2012년에 10배 이상 늘어난 240여 명이 됐다. 그래도 인원이 부족했다. 당시 카카오는 게임과 이모티콘 등 다양한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더욱 많은 인원 충원이 필요했고 결국 카카오는 판교행을 선택했다.

서울 강남과 가까워 교통이 편리한 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신축 건물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에도 이미 중견 IT 기업들이 이곳에 꽤 많이 들어서 있었던 만큼 스타트업이었던 카카오의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약 8년이 지난 현재 카카오는 판교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판교 시대를 연 뒤 카카오는 수익 모델 다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업계 1위를 굳건히 유지했지만 수익 창출력이 떨어져 문제였다. 이에 카카오가 내놓은 해답은 메신저와 연계한 신사업 발굴이었다.
판교의 랜드마크가 된 엔씨소프트 사옥. /사진=엔씨소프트 제공
판교의 랜드마크가 된 엔씨소프트 사옥. /사진=엔씨소프트 제공
카카오톡 회원 수를 무기로 웹툰·웹소설·게임·쇼핑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익 모델 발굴에 나섰다. 그 결과 2016년 카카오는 최초로 연매출이 1조원을 넘었고 지난해에는 매출 4조원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판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업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또한 판교테크노밸리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입주는 카카오보다 늦었지만 판교로의 이전 계획은 훨씬 이전부터 갖고 있었다. 엔씨소프트는 2007년 직접 연구·개발(R&D)센터를 판교에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판교테크노밸리가 조성되기 전부터 이 같은 청사진을 제시하며 판교에 대한 기대감을 일게 만들었다.

약 6년의 시간이 흐른 2013년 마침내 엔씨소프트의 판교 R&D센터가 완공됐다. 독특하면서 화려한 외관의 엔씨소프트 판교 R&D센터는 단숨에 지역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2000명이 넘는 엔씨소프트 임직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주변 상권 또한 더욱 활성화되기에 이르렀다. 판교에 둥지를 튼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과 ‘리니지 2M’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거듭되는 성장에 엔씨소프트의 직원들도 꾸준히 늘며 어느덧 4000명을 넘어섰다. 처음 판교에 왔을 때보다 두 배 정도 늘며 현재 사옥도 포화 상태가 됐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로부터 판교구청 부지를 약 8000억원에 사들인 뒤 제2 사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NHN, 판교에서 새 출발…사업 다각화 성공NHN도 엔씨소프트와 같은 해인 2013년 판교에 새 둥지를 틀었다. NHN은 당시 NHN엔테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에서 분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분당 정자동에 있는 네이버 사옥 그린팩토리에서 나와 새롭게 닻을 내리게 된 곳이 바로 판교다.

새로운 출발을 알린 NHN은 이후부터 종합 IT 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내걸고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NHN은 사업 초기 게임 사업의 비율이 90%에 달할 만큼 매출 구조가 편중된 모습을 보였다. 사업 다각화에 힘을 쏟은 끝에 NHN은 페이먼트·콘텐츠·커머스·기술 등 4대 핵심 사업에서 고르게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NHN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7000억원으로, 설립 초기 대비 3배 이상 성장했다.

2014년에는 한국 게임업계 맏형인 넥슨도 이전을 결정하면서 판교테크노밸리는 명실공히 한국 IT 산업의 중심지로 입지를 굳혔다. 넥슨은 2014년 초 직접 사옥을 지어 임직원 1500여 명을 입주시켰다. 판교 시대가 개막된 이후에도 넥슨의 거침없는 성장은 계속 이어졌다.
카카오에서 NC·안랩까지…‘판교밸리 신화’ 만든 주역들
2019년 야심차게 출시한 신작들의 흥행 부진으로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이내 반등에 성공하며 이를 잠재웠다. 넥슨은 지난해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바람의 나라 : 연’ 등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한국 게임사 최초로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판교테크노밸리의 역사를 얘기할 때 안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판교테크노밸리 형성 초기라고 할 수 있는 2011년 판교에 사옥을 마련하고 입주를 완료하며 ‘제2의 창업’을 선언한 바 있다.

판교 시대를 연 안랩은 이때를 기점으로 사업 다각화에 잰걸음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안랩 성장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백신 프로그램 ‘V3’의 비율을 낮추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 나갔다. 현재 안랩은 클라우드 보안과 같은 신사업 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안랩은 2015년부터 매년 10% 정도의 성장세를 이어 가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롭게 써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약 1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