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이어 사회 복지 예산까지 물가 자극… 월가 투자은행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물가 지속”

[글로벌 현장]
11월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가졌다.(/연합뉴스)
11월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가졌다.(/연합뉴스)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 대만·북핵·무역 등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주요 2개국(G2) 수장들은 시장의 예상대로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회담 내내 고압적 자세를 취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정중하게 요청한 사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비축유 방출이다. 고공 행진하는 원유 가격이 미국 내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이란 판단에서다. 중국은 정상 회담 직후 비공개적으로 비축유를 시장에 푼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을 통화 정책 수장으로 재선임한 뒤 강조한 것도 ‘물가 안정’이었다.

◆유가 뛰자 바이든 지지율도 바닥까지 추락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만 비축유 방출을 타진한 것은 아니다. 한국·일본·인도 등 우방국에도 잇달아 비축유를 공동으로 풀자고 제안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에 수차례 증산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란 게 에너지업계의 설명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인 7억2700만 배럴의 전략적 비축유(SPR)를 보유하고 있지만 홀로 방출해 봤자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내부의 판단이다. 7억여 배럴은 미국에서 90일간 소비할 수 있는 규모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석유·가스 업체들에 대해 조사를 벌이도록 촉구했다. 원유 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 가격이 되레 상승하는 데는 기업들의 담합이 있을 것이란 의심에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유가 잡기에 골몰하는 것은 물가 급등에 따른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40% 안팎으로, 올 1월 취임 후 최저치다. 특히 경제 현안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게 설문 조사 결과다. CBS와 유거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설문 응답자의 82%가 “과거부터 구매해 온 물품의 가격이 예전보다 비싸졌다”고 하소연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올 10월 6.2%(작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1990년 12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5개월 연속 5% 이상 고공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기저 효과를 감안할 필요가 없는 전달 대비 상승률은 0.9%로, 역시 시장 전망치(0.6%)를 크게 웃돌았다.

가장 큰 원인은 에너지로 파악됐다. 휘발유 가격은 작년 동기보다 약 50% 뛰었다. 2014년의 최고 가격에 근접한 상태다. 신차 가격은 9.8% 상승해 1975년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가구와 침구 가격도 1951년 이후 최대로 상승했다. 공급망 차질과 소비 수요가 직접적인 원인이란 분석이다.

도매 가격 성격인 생산자 물가 상승률은 10월에 8.6%였다. 2010년 11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후 가장 높았다. 트럭 화물 비용이 16.3%나 급등했다. 공급망 차질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지금과 같이 고공 행진하는 물가를 잡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정부와 Fed가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을 시장에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는 팬데믹 이후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심지어 대기업을 대상으로도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에 나섰다. 미국인과 미국 내 납세 실적이 있는 외국인에게 1인당 총 3200달러씩 현금을 쥐여줬다.

Fed는 작년 3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같은 해 6월부터 매달 1200억 달러씩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올 11월이 돼서야 월 채권 매입 규모를 1050억 달러로 조금 줄였을 뿐이다.

통화 팽창 정책에 따른 고물가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규모 예산 지출이 추가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 상·하원을 통과하고 대통령 서명까지 마무리된 인프라 투자 법안이다. 총 1조2000억 달러 규모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의 숙원 사업인 사회 복지 예산안도 하원을 통과했다. 상원 통과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최종 관문까지 넘으면 2조 달러가 또 풀리게 된다.

사회 복지성 예산은 의료보험 보장 확대와 기후 변화 대책, 교육 지원 강화 등이 골자다. 미국인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때 최대 1만2500달러씩 지원하고 3~4세 어린이의 유치원 교육비를 정부가 내주는 방안도 담겨 있다.

하지만 재정 적자엔 빨간불이 들어왔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이 예산안만으로 향후 10년간 연방 재정 적자가 3670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바이든 정부가 부유세를 도입하고 법인세를 강화해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는 게 CBO의 설명이다.

채권 운용 회사인 핌코는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투자 노트에서 “물가 급등세가 조만간 꺾일 것이란 Fed의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향후 수개월간 소비자 물가가 7%대까지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 선거 앞둔 바이든의 물가 고민…금리 인상 빨라지나 [글로벌 현장]

◆파월의 ‘인플레 처방’…금리 인상 서두르나

바이든 대통령이 파월 의장의 임기를 4년 연장한 것도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차기 의장에 대한 선택지가 파월 의장과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 중 한 명으로 좁혀진 상태에서 물가를 잡는 데 ‘파월 카드’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공화당 소속인 파월 의장과 달리 민주당 출신이어서 조금 더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파월 의장과 브레이너드 부의장 선임을 발표한 자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최대 고용을 가져오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과 브레이너드 이사를 각각 백악관으로 불러 장시간 독대하며 정책을 협의했다.

친시장 성향의 파월 의장은 매우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Fed 이사진에 합류한 뒤 비둘기파로 분류됐지만 2017년 의장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높이며 매파 성향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도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작년 3월 팬데믹이 발생하자 긴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 제로 금리 시대를 열었다.
막대한 돈 풀기로 물가가 뛰었기 때문에 파월 의장은 자연스럽게 금리 인상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란 게 시장의 관측이다. 테이퍼링(채권 매입 감축) 속도를 조금씩 높인 뒤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흡수할 것이란 얘기다.

파월 의장이 “고물가는 특히 음식·주택·교통 등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한 것도 물가만은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해석이다.

다만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두고 있는 점이 물가엔 불안 요인이다. 보상 소비 심리가 팽배한 상황에서 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공급 부족 상태인 시장에서 과수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추수감사절 등 연휴 기간의 항공편 여행객 수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적어도 기저 효과가 지속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금과 같은 고물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바이든 정부로선 물가를 끌어내려야 할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