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상 화폐도 사기죄의 재산상 이익 맞다”…재산 가치 인정

[법알못 판례 읽기]
11월 9일 오전 서울 강남 빗썸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비트코인 가격을 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11월 9일 오전 서울 강남 빗썸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비트코인 가격을 보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하루에도 1000만원대의 가격 조정이 이뤄지는 비트코인. 비트코인 가격은 11월 초 8270만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11월 22일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연임 소식이 들리자마자 다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11월 23일 오후 6955만원에 마감됐다.

극단적인 가격 변동성에 따라 실생활에 이용하는 화폐로서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상 화폐는 법조계에서도 종종 화두에 오르곤 한다.

코인 투자 리딩방 등 가상 화폐를 미끼로 한 사기 사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활용해 범죄자들이 범죄 수익에도 가상 화폐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대법원이 누군가를 속여 비트코인을 받아낸 경우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을 처음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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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속이고 비트코인 6000개 편취…사기죄 성립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모 전 보스코인 이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월 19일 밝혔다.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코인은 피고인 박 모 씨의 아버지가 설립한 회사로, 가상 화폐 개발·판매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들은 2017년 스위스에 ‘보스 플랫폼 재단’을 설립하고 신종 암호화폐 ‘보스코인’의 가상 화폐 공개(ICO)를 진행해 전 세계 투자자에게서 6902BTC(비트코인)를 투자금으로 유치했다.

투자금은 1명이 임의로 출금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 관계자 3명 중 2명이 동의해야 출금할 수 있는 다중 서명 계좌에 보관됐다. 박 씨는 설립자인 아버지가 다른 임원들과의 갈등으로 회사 내 영향력이 줄어들자 6000BTC를 자신의 단독 명의 계좌에 이체하기로 마음먹었다.

박 씨는 “6000BTC를 단독 명의 계좌로 이체해 주면 비트코인 수에 비례해 일정량의 코인을 지급받을 수 있는 이벤트에 참가한 뒤 곧바로 돌려주겠다”고 다른 주요 주주인 A 씨와 B 씨를 속였다. 박 씨는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뒤 반환하지 않았다. 기소 당시 검찰이 판단한 비트코인 사기 편취 이익은 197억원 상당이었고 현재 시세로는 약 4200억원에 달한다.

1심 재판부는 박 씨의 행동이 사기에 해당한다고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 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 범행에 이르렀고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대부분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박 씨는 항소심에서 “비트코인 전송은 실물 자산이나 권리와 연결돼 있지 않은 ‘정보의 기록이나 변경’에 불과해 비트코인 전송 그 자체를 재산상 이익의 이전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이 존재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돈·부동산 등과 같은 실물 자산이 아니라 일종의 디지털 기록이기 때문에 ‘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비트코인 거래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이를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취급한 이상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비트코인은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해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 자산의 일종으로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3년 전 가상 화폐 ‘재산’ 인정…과세 대상 될까

이처럼 가상 화폐가 ‘재산’으로 인정받은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가상 화폐가 재산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계기는 범죄 수익으로 비트코인이 ‘몰수’ 대상이 되는지를 처음 판단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에 서버를 둔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한 안 모 씨는 122만여 명의 회원을 모집해 약 19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했다. 그중 약 5억원에 달하는 216BTC도 있었다. 검찰은 해당 비트코인을 범죄 수익으로 봐야 한다며 법원에 몰수를 요청했다.

2017년 1심 재판부는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 없이 전자화된 파일의 형태고 객관적 기준 가치를 상정할 수 없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2심 재판부는 비트코인에 대해 “물리적 실체가 없이 전자화된 파일 형태로 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몰수의 대상으로 본 것이다.

법원 최초로 가상 화폐를 재산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 역시 “비트코인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으로 특정할 수 있으며 범죄수익은닉규제법에 따라 무형 재산도 몰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세무 전문가들은 “법원이 가상 화폐의 재산 가치를 인정하는 판례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며 “세법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가상 화폐도 소득세 등 과세의 대상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이미 대법원 판례만으로도 상속세나 증여세에서는 과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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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해킹·증발 시달리는 가상 화폐거래소, 책임 있나 없나

블록체인은 절대 해킹이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져 있지만 종종 가상 화폐거래소 자체가 해킹이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송금 오류 등 기술적인 문제로 손해를 보는 가상 화폐 투자자들도 있다. 법원은 가상 화폐거래소의 기술적 오류로 인해 생기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약관에 ‘가상 화폐 반환 의무’가 적혀 있다면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2018년 서울중앙지법 민사35단독(부장판사 김수정)은 계정이 해킹돼 보유하고 있던 가상 화폐를 도난당했다고 해도 가상 화폐거래소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는 “빗썸이 비트코인의 거래를 중개하는 사업자에게 요구되는 계약상 주의 의무를 위반해 개인 정보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음 해 대구지법에서는 가상 화폐를 송금하다가 전송 오류가 나 코인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해도 거래소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가상 화폐의 특성상 한 번 송금이 잘못될 경우 이를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재판부는 “전송에 사용한 컴퓨터 자체의 오류나 해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거래소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부장판사 김성원)는 11명이 가상 화폐 거래소 ‘코인레일’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코인레일 측은 11명에게 3억83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코인레일은 2018년 6월 해킹을 당해 400억원 규모의 가상 화폐가 유출됐다. 이에 피해자들은 “코인레일 측이 이용자의 가상 화폐가 유출되지 않도록 방지할 의무가 있음에도 보안 체계를 갖추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며 “해킹 직후 거래소 서비스를 중단해 가상 화폐를 시장가에 매도하지 못했고 이후 동종·동량의 가상 화폐를 반환할 의무의 이행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 회사에 해킹 사고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이용 약관에 따라 원고들이 전자적인 방법으로 가상 화폐 반환을 요구할 경우 피고는 그 즉시 원고들의 계정에 예치돼 있는 가상 화폐를 반환할 의무가 있다”며 “피고 회사는 해킹 사고를 이유로 거래소 거래를 중단하고 거래소를 폐쇄해 원고들에 대한 각 가상 화폐 반환 의무의 이행을 거절해 이에 따른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