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의 전통 백일주 방식을 잇는 ‘(유)친구들의 술’

[막걸리 열전]

2016년, 전통주 시장에 파란이 일어났다. 술을 빚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이가 ‘대한민국명주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유)친구들의 술’의 임숙주 대표다. 순창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양주 비법과 전통 누룩을 이용해 그가 담근 술이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 수상 이후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양조장이 있는 순창군 순창읍에 내려와 곳곳을 면밀히 둘러봤다. 임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직접 술을 빚은 게 맞는지 확인하러 오신 거 같아요”라고 웃음 짓는다. 연구소장은 임 대표와 부인 김수산나 씨가 다정하게 술을 빚는 모습을 보고 부부가 친구처럼 격의 없고 아름답게 지내니 마치 지초와 난초의 향기로운 사귐과 같다며 사자성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상품명으로 추천했다. 그렇게 친구 같은 부부의 술, ‘지란지교’가 탄생했다.
100일 동안 발효하고 90일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치는 지란지교.
100일 동안 발효하고 90일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치는 지란지교.
‘지란지교’, 200일간의 기다림

‘지란지교’ 술은 순창 전통의 백일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순창에서 나는 멥쌀과 찹쌀, 직접 만든 전통 누룩과 지하 791m에서 뽑아 올리는 천연 암반수를 사용하는데, 이때 100일 동안 발효하고 90일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친다. 술이 나오기까지 대략 6개월이 걸린다. 김수산나 씨는 “술을 빚는 것은 기다림과 기대감의 연속”이라며 긴 기다림 후 완성된 술을 마시면 모든 인고의 시간이 상쇄되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전통 누룩을 쓴 ‘지란지교’는 단맛·신맛·쓴맛에 더해 떫은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또한 충분한 숙성 덕분에 알코올 도수 13%라는 높은 도수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지란지교’는 약주 잔에 마셨을 때 그 맛이 더 살아난다. “알코올 섭취의 목적이 아니라 정말 우리 술의 향과 맛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약주 잔에 따라 조금씩 천천히 마시면 술이 몸을 존중해 줘요. 무례하지 않게 취기가 올라왔다가 어느새 취기가 사라지고 숙취도 남지 않아요.” ‘지란지교’는 천천히 음미하고 즐길 때 그 가치가 빛나는 술이라고 부부는 강조한다.
‘순창 백일주’를 복원해 후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임숙주 대표와 아내 김수산나 씨.
‘순창 백일주’를 복원해 후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임숙주 대표와 아내 김수산나 씨.
직접 재배한 무화과로 만든 무화과 탁주

‘지란지교’ 탁주에 이어 ‘무화과 탁주’도 만들었다. 부부가 직접 재배한 무화과로 청을 만들어 탁주에 아낌없이 넣는다. 임 대표는 “무화과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데 탁월한 효소가 있어요. 그래서 무화과를 넣으면 향도 잡고 자연스러운 단맛도 내고 천하의 명주가 나오겠다 싶었죠. 다만 무화과의 함유량을 정하는 게 난제여서 아내와 매일 공부했어요”라며 ‘무화과 탁주’를 완성하기까지의 시행착오를 떠올린다. 무화과 양이 조금만 넘쳐도 발효 과정에서 바로 식초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무화과의 껍질은 붉지만 속살은 그렇지 않아 붉은색을 내는 방법도 함께 연구했다. 포기하지 않고 2년 동안 연구한 끝에 무화과와 탁주의 황금 비율을 찾았고 자연스러운 붉은 빛깔을 내기 위해 비트를 첨가했다. 그렇게 무화과의 은은한 향과 맛을 살린 ‘무화과 탁주’가 완성됐다.
전통 누룩으로 빚은 지란지교는 단맛, 신맛, 쓴맛에 더해 떫은 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전통 누룩으로 빚은 지란지교는 단맛, 신맛, 쓴맛에 더해 떫은 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문화인의 마음을 담은 제조 일지

“저는 장인이 아니라 문화인으로 남고 싶어요. 장인은 자신만의 비법을 고이 간직한 채 작품을 만든다면 문화인은 불특정 다수에게 그 비법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요. ‘지란지교’를 공유해 순창 백일주의 문화를 전파하고 싶어요.” 임 대표의 다짐은 그가 술을 빚기 시작한 이후 거르지 않고 적은 제조 일지에도 잘 나타난다. 그날의 기후, 온도, 습도, 제조 과정, 술맛 그리고 기분까지도 상세히 적혀 있다. 태풍이나 폭설이 닥쳤을 때나 제조 과정에서 변수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술을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 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 ‘지란지교’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순창 백일주’를 복원하려고 했을 때 아무런 문헌이 남아 있지 않아 고전했기 때문에 후대에게 물려줄 마음으로 적기 시작한 일지다. 임 대표는 “전통주 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그의 제조 일지가 누구에게든 유용하게 사용된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며 오늘도 성실히 일지를 적어 나간다.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