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으로 총선 재미 본 與, 뒤질 수 없다는 국민의힘 25→50→100조원 판돈 올리기

[홍영식의 정치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월 13일 경북 성주군 별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반상회에서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월 13일 경북 성주군 별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반상회에서 지역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자영업자의 손실 보상 대책이 대선판의 중심 화두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고 ‘백신 패스(접종 증명서 제시)’ 제도 시행, 거리 두기 강화 예고로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당장의 방역 대책은 정부가 감당해야 할 영역이지만 보상 문제는 차기 정부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야 후보들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후보들이 내놓는 지원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치 도박판 판돈 올리 듯한다. 수십조원은 기본이고 100조원까지 던졌다. ‘묻고 더블로’식 경쟁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덜어 줘야 한다는 데 대해선 누구도 공감한다. 그렇더라도 한 해 예산의 6분의 1을 쓰자면서 재원 대책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않는데 대해선 우려가 적지 않다. 아무리 표가 중요하지만 25조원, 50조원, 100조원을 마구 던질 일은 아니다.

이재명 후보 “당장 협상”, 국민의힘 “당정 협의 우선”

발단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11월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을 펴면서다. 그는 지난 10월 말 국민 1인당 최대 50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재정 25조원을 투입해야 한다. 그는 연말까지 발생하는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고 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그의 주장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초과 세수는 법적으로 지방교부금과 나랏빚을 갚는 데 우선적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초과 세수 활용이 위법 논란에 부닥치자 일부 세목의 납부를 유예해 내년 초 집행하자는 꼼수까지 내놓았다. 이 역시 위법 논란이 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반대했고 여당은 ‘국정 조사’, ‘기재부 해체’ 등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며 몰아붙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홍 부총리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후보는 일단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소상공인 보상 논란에 불을 붙였다. 윤 후보는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피해를 보상하겠다”며 손실 보상 기금 조성을 공약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판돈을 더 키웠다. 김 위원장은 “집권하면 100조원 정도를 투입하겠다”고 한 것이다.

판돈 키우기에는 선거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이 100조원을 던진 것은 선점 효과를 노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4·15 총선’전 여당이 추진한 1차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비판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뒤늦게 1인당 50만원 지급을 주장했다. 하지만 줏대 없이 표만 바라보며 왔다 갔다 한다는 비판만 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엔 이재명 후보에 앞서 선제적으로 100조원을 내지르는 게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김 위원장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일반 국민의 걱정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대선 자체를 삼켜 버릴 수 있는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한 것도 그런 차원이다. 또 “일반 국민이 심리가 불안하게 되면 믿는 것은 결국 정부다. 지난해 4·15 총선 때 코로나19 사태가 초기 상황이었는데도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서도 그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지원할 바엔 이 후보의 주장을 훨씬 능가해 한꺼번에 대규모로 해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하지만 여야는 모두 소상공인의 대폭 지원에 뜻을 같이하면서도 그 시기를 놓고선 동상이몽이다. 이 후보는 당장 협상을 통해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 내년 초에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취임 후까지 기다릴 것 없이 50조원을 내년 본예산에 편성해 당장 지원하자고 역제안했다. 그는 “미리 집행하면 윤 후보도 손해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또 “곧바로 협의해 임시 국회에서 추경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집권 시’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임태희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상황본부장은 ‘당장 논의하자’는 이 후보에 대해 “진정성 없는 제안”이라고 했다. 그렇게 급하다고 생각했으면 민주당에서 추진하는 여러 대책에 이미 반영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희룡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도 “현실적인 해법을 내는 게 국민의힘의 목적”이라고 했다. 재원 대책 등 실현 가능한 방안을 검토한 뒤 실행하자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여당의 손실 보상을 위한 추경 편성에 반대하며 조기 지원에 대해 선을 그었다. 코로나19 사태 진행 상황을 볼 때 어떤 경제적인 결과가 나올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윤 후보는 먼저 집권 여당의 후보가 대통령에게 행정부를 설득한 뒤 먼저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면 논의하면 된다고 밝혔다. 여당이 선제적으로 행정부를 설득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왼쪽)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 참석, 악수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00조원 불쑥 던져놓고 재원 대책은 현실 불가능

민주당의 ‘당장 협상 뒤 내년 초 지원’과 국민의힘의 ‘선거 뒤 지원’ 주장엔 역시 선거 전략이 숨어 있다. 여권으로선 대선 전에 지급하게 되면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4·15 총선 직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여당 승리에 도움이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야당이 보상안에 합의해 줬다고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공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고 했다. 여야 모두 자영업자 보상 시기마저 선거 표 계산에 바쁜 모양새다. 보상 지원이 대선판 ‘졸(卒)’이 된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에서도 지원 시기를 놓고 갈리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의 주장이다. “당선 이후 지원을 고집하면 여당이 대선전에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보상 지급이 다급한데 야당이 반대해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는 논리를 펴면 아무리 당선 뒤 100조원이라는 통 큰 지원을 한다고 약속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의원은 “여당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할 때 여당이 급증하는 나랏빚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마당에 엄청난 나랏돈을 성급하게 주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여야는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던져놓기만 해놓고 재원 대책에 대해선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예산 구조 조정을 내세우고 있다. 부처별로 10%씩 절감하자고 한다. 이럴 경우 의무 지출을 제외하고 재량 지출 300조원 중 3분의 1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재량 지출 내용도 경제 활성화, 복지 등 반드시 써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아 100조원이라는 거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부처의 반응이다. 다른 분야의 예산을 줄이면 그 피해를 보는 국민이 가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여당의 주장대로 추경을 통해 지원하면 막대한 나랏빚을 낼 수밖에 없고 고스란히 후세대의 부담으로 떠넘기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 채무가 급증해 지금 계획된 예산 규모대로라도 내년엔 1000조원을 넘어간다. 손실 보상 100조원을 지급한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는 올해 47.3%에서 내년 55%로 위험 수위에 다다르게 된다.

모두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 수 없는 만큼 세계 잉여금, 예비비 등 활용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두 지방교부세 등 용처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쉽지 않다. 설사 자영업자 지원용으로 쓴다고 하더라도 세입과 세출 결산 등 절차를 감안하면 대선 전 사용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