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개발 플랫폼 환경 구축이 관건

[테크 트렌드]
게임 엔진 빅2, 게임 넘어 메타버스 경쟁
최근 메타버스가 미래 산업 패러다임의 핵심 화두로 부상하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 실체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메타버스의 정의와 범주에 대한 것이다. 즉, 어디까지를 메타버스로 봐야 하느냐다. 누구는 제페토나 로블록스 같은 2차원(2D) 가상 게임이 메타버스라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기반한 3차원(3D) 디지털 세계가 있어야만 메타버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것이 메타버스인지 아닌지는 지금 시점에선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기술 발전에 따라 구현되는 메타버스의 형태와 모습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삶에 녹아 있다고 봐야 한다. 글로벌 게임 엔진 업체 유니티(Unity)의 존 리치티엘로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가 지향해 가고 있는 중요한 흐름 중의 하나는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좀 더 현실적이고 좀 더 몰입감 있는 사용자 경험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다양한 지능형 서비스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데이터·클라우드 등 핵심 인프라와 기저 기술들이 있어야 하듯이 메타버스도 가상 공간에서의 활동들이 현실감 있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가상 공간과 아바타가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실시간으로 구현돼야 한다.

이러한 환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화질 그래픽과 실시간 렌더링 기술 등 최첨단 영상 기술이 필요하다. 실시간 렌더링은 단순 그래픽 표면에 색상이나 농도 등 3차원 질감을 줘 사실감·현장감·실재감 등을 실시간으로 부여해 주는 과정이다,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한 이러한 기반 기술은 주로 게임 엔진을 갖춘 회사들이 가지고 있다. 게임 엔진 기업 중 주목할 만한 글로벌 기업은 유니티·에픽게임즈·추공테크·크라이텍·고돗·밸브·아마존 등이 있다. 그중 유니티와 에픽게임즈가 전체 시장의 65%를 점유하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게임 엔진 분야 양대 산맥

유니티는 2004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게임과 3D 콘텐츠 제작 및 운영 플랫폼 업체다. 2D와 3D 비디오 게임의 개발 환경을 제공하는 게임 엔진이자 3D 애니메이션과 건축 시각화, VR 등 양방향 콘텐츠 제작을 위한 통합 제작 도구를 제공한다.

유니티는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어 유연성과 범용성 면에서 언리얼(unreal)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 실제로 유니티는 프로그램 언어로 구문 사용이 쉬운 시샵(C#)을 사용해 개발이 쉬울 뿐만 아니라 접근성도 좋아 인디 타이틀과 모바일 게임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게임 상위 1000개 중 71%가 유니티를 이용하고 있고 모바일 게임 개발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사용자와 개발자를 포함한 수는 무려 27억 명으로 추산된다. ‘포켓몬고’와 ‘리그오브레전드’ 등이 유니티 엔진으로 만들어진 게임이고 대표적 메타버스 사례인 ‘제페토’와 ‘로블록스’도 유니티 엔진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유니티는 저품목 소규모 게임 개발에 적합한 편이지만 메타버스의 고도화를 위해 중요한 VR과 AR 분야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한다. 전 세계 VR·AR 콘텐츠 제작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글로벌 VR·AR 기업들 중 90%가 사용하는 엔진이다. 전 세계 650만 명의 개발자가 사용하는 AR·VR 개발 플랫폼 유니티 마스와 AR 개발 플랫폼인 AR 파운데이션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유니티는 지난 11월 영화 ‘아바타’와 ‘반지의 제왕’의 특수 시각 효과를 담당한 웨타디지털을 16억 2500만 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 창작자와 예술가들은 웨타 디지털의 3D 기술을 활용해 보다 창의적으로 메타버스의 미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선보인 유니티 시뮬레이션 프로와 유니티 시스템 그래프는 시뮬레이션 기능을 한층 향상시켜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대규모 복합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러한 기술적 기능 향상을 통해 유니티는 게임 외에 콘텐츠·자동차·운송·제조·로봇·건축·엔지니어링·건설 산업 등 다양한 산업으로 적용 분야를 넓혀 가고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라이온킹’, HBO의 ‘왕좌의 게임’에 사용됐고 자동차 분야에서는 현대차·BMW·볼보 등이 차량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에 대한 효과적인 검토, 차량 설계, 차량 HMI(Human Machine Interface : 인간-기계 상호작용) 솔루션, 자율주행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에 적용하고 있다. 건축·엔지니어링·건설(AEC) 분야에서는 실시간 건축·엔지니어링·건설 공정 간소화 등에 유니티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유니티와 함께 게임 엔진 분야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업체는 언리얼이다. 언리얼은 미국의 게임 개발사인 에픽게임즈가 1998년 개발한 실시간 3D 게임 제작 엔진이다. 원래 에픽게임즈의 첫째 게임인 ‘언리얼’용으로 개발됐지만 이후 에픽게임즈의 주력 게임 엔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언리얼로 제작된 대표적인 게임은 ‘포트나이트’다. ‘포트나이트’는 캐릭터를 이용한 3인칭 슈팅게임으로, 전 세계 이용자만 3억5000만 명(2020년 기준)에 달한다. 무엇보다 2020년 이 게임 속에서 열린 미국의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콧’의 가상 공연에 1200만 명의 관객이 몰려 메타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이 밖에 우리에게 친숙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2M’과 넥슨의 ‘V4’,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도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됐다.

언리얼은 주로 PC나 비디오 게임 콘솔 기반 블록버스터급 고품목 게임을 제작하는 엔진으로 개발자들에게 효율적인 3D 제작 작업 환경과 제작 도구를 제공한다. 게임 ‘언리얼’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1세대 엔진부터 3세대 엔진까지는 주로 게임에 적용됐던 것에 비해 4세대 엔진부터는 범용성에 초점을 맞춰 좀 더 사용하기 쉽고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언리얼 엔진의 적용 분야는 단순히 게임을 넘어 자동차 운송·제조, 영화·애니메이션, 건축, VR·AR, 엔지니어링 분야로 점차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HBO의 ‘왕자의 게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AR’효과, 영국 슈퍼카 ‘맥라렌 570S’ 모델을 비롯해 도요타·쉐보레 등에 언리얼 엔진이 사용됐다.

언리얼의 강점은 명칭처럼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현실적인 고품질의 그래픽 구현이다. 최근에는 차세대 그래픽 기술을 탑재한 게임 엔진 ‘언리얼 엔진 5’를 발표했는데 기존 엔진 대비 실시간 시각화, 몰입형 양방향 경험을 한층 업그레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플랫폼 환경 구축 경쟁

이처럼 게임 산업을 넘어 게임 제작과 개발 솔루션 경쟁력을 활용해 다양한 산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유니티와 언리얼이 최근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분야는 메타버스다. 아직 초기 시장이라 현재로서는 누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판단하기는 이른 듯싶다.

물론 메타버스 구현 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기술적 완성도다. 하지만 기술적 완성도 못지않게 중요한 지표는 게임 엔진을 통해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서비스·퍼블리싱까지 하나의 개발 생태계에서 얼마나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창작자와 개발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다. 단순히 기술 경쟁보다 메타버스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개방형 콘텐츠 제작과 개발 플랫폼 환경 구축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게임이나 영화에서 사용되는 특수 시각 효과를 가진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일은 거대 전문 업체만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 및 개발 플랫폼은 더 이상 일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상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용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협업의 장(場)이자 참여자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범용성이 높은 제작 엔진을 통해 일반 사용자도 메타버스 환경에서 쉽게 3D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제작 및 개발 플랫폼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로블록스 사례를 통해 이러한 개방형 콘텐츠 제작 플랫폼의 성공 사례를 경험하고 있고 최근 창작자 경제(creator economy)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유니티와 언리얼 모두 메타버스 구현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더 나은 사용자 친화적인 콘텐츠 제작 및 개발 플랫폼 구축에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하다. 특히 사용자 친화적인 측면에서 유니티에 비해 다소 어렵게 느껴졌던 언리얼의 개선 노력이 눈에 띈다. 향후 메타버스 시장의 콘텐츠 제작 및 개발 플랫폼 환경 구축 경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