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 우려에도 이듬해 ‘트라페즈 룩’ 등 선보인 컬렉션 대성공 거둬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이브 생 로랑①
그는 약골에 운동도 잘하지 못했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학생들의 놀림을 종종 받기도 했으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집에서 그림을 즐겨 그렸다. 특히 어머니와 두 누나들의 드레스를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11살 때 연극 ‘아내들의 학교’ 보고 디자이너 꿈꿔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상조합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3개월을 채 다니지 못하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자퇴했다. 열일곱 살이 된 1953년 국제양모사무국(IWS)에서 개최하는 디자인 콘테스트에 응모해 3등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다시 도전해 1등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같은 해 독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드레스 부문 2위를 수상했다). 이 수상을 계기로 이브 생 로랑은 당시 파리의 보그 편집자인 미셸 브뤼노프와 인연을 맺었다.
이브 생 로랑은 1955년 브뤼노프에게 자신의 포토폴리오를 보여 줬다. 이를 본 브뤼노프는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이 크리스찬 디올에 잘 맞을 것이라고 여기고 디올에게 소개했다. 디올은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 스케치를 보고 바로 인턴으로 채용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였다. 그리고 2년 뒤 1957년 크리스찬 디올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디올 하우스에서 발표한 드레스 80벌 중 50벌이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이었다.
디올이 죽자 이브 생 로랑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다. 스물한 살의 청년이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것은 이변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1월 디올 하우스에서 처음 선보인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 컬렉션에서 그 유명한 트라페즈 룩(어깨 폭이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의 라인)을 선보여 우아한 디올 스타일에 젊은 감각을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일부 파리지엔들은 “이브 생 로랑이 파리를 구했다”며 좋아했다. 언론에서는 큰 키에 깡마른 이브 생 로랑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고 디올 하우스의 전통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물자가 풍부해졌다.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었고 섬유 산업 발전에도 큰 영향을 줬다. 1960년대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1954년부터 8년간에 걸쳐 벌인 알제리 독립 전쟁) 패배의 대가로 인한 사회적 궁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젊은층들이 수입을 갖게 되면서 시장이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소위 젊은 세대(young generation) 중심의 영파워 소비가 형성됐다. 이들은 경제권과 함께 기존 가치관에 저항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고 활기차며 젊고 생동감 넘치는 시대를 이끌었다.

패션 학자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은 이렇게 분석했다. “1960년대는 정치적·사회적·의상 측면 모두에서 완벽한 대변동의 시기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입어야 한다는 의식들이 만연하면서 젊은이들은 그들의 패션 스타일을 창조했다. 이는 교육 기회의 확대로 자아를 싹트게 해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생기게 했다. 패션 혁명의 특성이 젊은이들의 반란이 됐다. 사회적·경제적 발전으로 젊은이들 스스로가 그들 자신의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사건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두드러지고 단합된 그룹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이브 생 로랑에게 알제리 전쟁에 참전하라는 군 복무 영장이 날아왔다. 전장에서 견디기 힘든 생활을 한 이브 생 로랑은 3주 만에 신경쇠약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고 정신과 약을 복용했다. 이브 생 로랑이 군에 입대한 사이 마크 보앙이 디올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앉았고 이브 생 로랑은 디자이너로서의 절망과 전장에서의 충격으로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21세에 크리스찬 디올 수석 디자이너 ‘이변’[명품 이야기]](https://img.hankyung.com/photo/202112/AD.28418718.1.jpg)
자료 참조 : ‘최고의 명품,최고의 디자이너(명수진, 삼양미디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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