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앞바다의 상쾌함을 닮은 ‘순진탁주 딸기’
[막걸리 열전]드넓은 모래 포구와 맑은 날 낙조가 황홀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 50년 넘게 몰운대 입구 제일 안쪽에 자리한 ‘할매집’은 탁 트인 바다 전경과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근처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 할매집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할머니·시어머니·며느리로 3대째 이어 온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할매집 며느리인 박미화 씨는 가양주의 맥을 이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레시피로 한층 더 발전시킨 ‘순진도가’라는 막걸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 집 막걸리 참 잘해’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 순진도가의 순진탁주를 마시며 그 명성을 확인해 봤다. 순진도가라는 이름을 들으면 ‘순진하다’는 단어를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순진도가는 박미화 대표의 시할머니 ‘순이’, 시어머니 ‘순자’, 아들 ‘진만’의 머리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처음엔 박 대표와 남편이 함께 술을 빚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다대포 몰운대에 있는 노포 ‘할매집’ 운영에 집중하고 박 대표가 순진도가에서 전적으로 술을 빚는다.
“어릴 땐 제가 막걸리를 빚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결혼하고 처음 막걸리를 빚게 됐죠. 어머니가 쌀은 이만치, 누룩과 물은 이만치 이래 이래 넣으라고 하시면 그대로 했어요. 소질이 있는지 맛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막걸리를 빚은 지 어언 10년. 아이가 자라고 여유 시간이 생긴 박 대표는 본격적인 막걸리 공부를 위해 막걸리 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이론 수업을 듣는 데 재미있었어요. 공부하니까 모르고 만들던 게 하나씩 다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원리로 발효되고 막걸리가 만들어지는구나, 신기하면서도 내가 그동안 막걸리를 틀린 방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에 신이 났어요.”
풍부한 실습 경력에 이론까지 갖추니 자신만의 막걸리 레시피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딸기를 듬뿍 넣은 ‘순진탁주 딸기’
할매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가 건물에 순진도가를 차리고 할매집 막걸리 레시피에 이것저것 변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귤·블루베리·한약재 등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테스트한 끝에 선택한 재료는 바로 딸기다. 은은한 딸기 향과 새콤달콤한 맛이 가미되니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박 대표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하지만 딸기 함량을 최대 20%까지 꽉 채워 넣어도 색이 잘 나지 않는 게 못내 아쉬웠다. 고민 끝에 홍국쌀을 섞어 빚으니 은은하게 붉은빛을 띠는 ‘순진탁주 딸기’가 완성됐다. 딸기를 한 번에 다 넣지 않고 1주일의 숙성 과정 동안 세 번에 나눠 넣는 것도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비법이다. 둥둥 떠 있는 딸기 씨는 ‘순진탁주 딸기’의 매력 포인트다.
“제가 일일이 다 손으로 딸기를 체에 밭쳐 거르거든요. 제성기를 쓰면 딸기 씨도 다 갈려 이렇게 보존되지 않을 거예요. 힘은 드는데 이 맛에 손으로 만드는 것을 선호해요.”
근면과 성실을 원동력 삼아
지금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순진탁주 딸기’를 출시한 직후엔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하루에 10병 팔기도 힘들었다. 낙심한 박 대표에게 남편은 큰 힘이 됐다.
“맛이 있으니까 판매량에 상관없이 1년은 꾸준히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성실한 것은 자신 있거든요. 사실 납품처를 한 곳 뚫기도 힘든데 순진도가는 확실한 납품처인 할매집이 있잖아요. 그것을 믿고 계속 만들었어요.” ‘순진탁주 딸기’는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하루에 최소 60병은 거뜬히 팔려 나간다. 또한 납품처도 늘어나고 플리마켓에 참여해도 늘 마감 시간을 한참 앞두고 품절된다.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는데 기계도 없이 혼자 하다 보니 매일 술을 담가도 물량이 부족하다.
“아무리 손으로 꽉꽉 눌러도 마지막에 술지게미가 남는 것을 보면 흥건하더라고요. 그럴 땐 기계가 있었으면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손으로 하는 게 더 좋긴 해요. 2022년에 좀 더 넓은 곳으로 양조장을 옮기면 주입 기계처럼 손을 거들 수 있는 기계들을 구비하려고요. 그러면 온라인 스토어도 운영하고 좀 더 안정적으로 막걸리를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문지현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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