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열풍 타고 지난해 패션 시장 주요 트렌드로 자리매김

[비즈니스 포커스]
코닥어패럴의 플리스.(사진=코닥어패럴)
코닥어패럴의 플리스.(사진=코닥어패럴)
3040세대에게 ‘코닥’은 소풍날 챙기던 아날로그 카메라 브랜드다. 하지만 요즘 1020세대에게 ‘코닥’은 ‘정해인 패딩’으로 더 친숙하다. 지난해 패션 시장에서는 과거 유명했던 브랜드를 라이선스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전략이 성행했다.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디스커버리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성공 이후 코닥·빌보드·CNN 등 패션과 접점이 없는 유명 브랜드들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말 발표한 ‘2022년 패션 시장 전망 및 2021년 패션 산업 10대 이슈’에서 지난해 패션 산업의 주요 이슈로 ‘라이선스로 돌아온 유명 브랜드’를 꼽았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고 누군가에겐 익숙한 추억인 오래된 유명 브랜드들이 ‘K라이선스 브랜드’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MLB의 롱패딩.(사진=에프엔에프)
MLB의 롱패딩.(사진=에프엔에프)

한국 찍고 중국 점령 나선 라이선스 브랜드
지난해 주가와 실적 두 마리 토끼를 잡은 패션 기업은 에프앤에프(F&F)다. MLB·디스커버리 등 브랜드 파워에 힘입어 F&F는 지난해 증시에 상장한 패션 기업들 중 시가 총액 1위에 올라섰다.

F&F의 선전에는 라이선스 브랜드가 큰 역할을 했다. F&F는 디스커버리의 성공으로 ‘라이선스 브랜드 명가’라는 별칭을 얻었고 중국 시장에서 MLB가 히트하면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했다.

F&F가 1997년 한국 판권을 들여와 유통하기 시작한 MLB는 높은 인지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뀐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덕분에 아시아 시장에서 ‘스트리트 브랜드’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커다란 모노그램 로고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이뤘다. 글로벌 논픽션 채널 ‘디스커버리 채널’과 라이선스를 맺은 디스커버리는 기존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획일화된 디자인에서 탈피해 캐주얼과 아웃도어의 경계를 허물었다.
NBA의 NBA 스타디움 농구화.(사진=NBA)
NBA의 NBA 스타디움 농구화.(사진=NBA)
한세엠케이의 라이선스 브랜드 ‘NBA’는 미국 프로농구 NBA팀의 로고·캐릭터·이미지 사용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를 2011년 취득했다. NBA는 스포티한 기본 의류부터 유니크한 액세서리까지 1020세대를 공략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내놓았다.

한세엠케이는 한국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NBA의 중국 라이선스 계약을 추가로 획득했다. 2014년 5월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2021년 5월 기준 한국 116개, 해외(중국) 193개로 총 309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9년 12월에는 한국 첫 플래그십 스토어인 롯데월드몰점을 오픈해 NBA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NBA마니아존과 커스터마이징존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선보였다.

해외 스포츠 리그와 라이선스를 맺은 브랜드들 외에도 지난해에는 코닥·CNN·빌보드 등 패션과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이종 산업의 브랜드들이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2020년 10월 하이라이트브랜즈가 카메라 업체 코닥의 라이선스를 도입해 만든 패션 브랜드 코닥어패럴은 지난해 가장 히트한 라이선스 브랜드로 꼽힌다.

인기 상품은 쇼트 패딩이다. 코닥 특유의 레트로 무드가 물씬 풍기는 ‘코닥35’와 ‘코닥 브라우니 쇼트 다운 재킷’은 2021년 가을·겨울 시즌 코닥어패럴의 주력 제품 중 하나다. 가벼운 무게감으로 명성을 떨친 코닥 카메라 기종이기도 한 코닥35mm와 코닥 브라우니에서 제품명을 따온 만큼 경량의 원단을 사용해 몸에 착 감기는 가벼움과 편안함이 특징이고 고품질의 충전재를 사용해 보온성도 갖췄다.
디스커버리.(사진=에프엔에프)
디스커버리.(사진=에프엔에프)

인지도 높지만 ‘속았다’라는 반응도

우리에게는 미국의 방송 채널로 익숙한 CNN도 패션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8월 씨엔엔어패럴은 미국의 방송 채널 ‘CNN’과 어패럴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한국 의류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세계 각지의 극한 상황에서 활동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CNN 방송의 모티브를 의류에도 적용했다. 온라인 자사 몰 론칭과 무신사 입점을 포함해 지난해 하반기에는 적극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유독 재론칭 브랜드가 많았다. 1990년대 인기 브랜드였던 마리떼프랑소와저버는 마리떼라는 이름으로 재론칭한 지 1년 만에 매출 100억원대 브랜드로 도약했다. 데님 브랜드 리(LEE)는 재론칭 직후부터 무신사 판매 랭킹 10위권에 진입했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 시간 만에 1억5000만원어치를 판매했다. 199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들이 주목받는 ‘뉴트로’가 패션 시장의 주요 트렌드가 된 것이다. 잊혔던 브랜드의 재론칭 사례는 노티카·트루릴리전·스톰을 비롯해 전개사를 변경한 챔피온까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이미 알려진 브랜드가 패션과 만나거나 오래된 브랜드의 재론칭은 분명 패션 시장에서 이점을 갖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이미 알려져 있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브랜드 각인이 신생 브랜드들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삼성패션연구소는 “라이선스 브랜드는 이미 알려져 있고 친근한 브랜드 네임과 로고 플레이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다”며 “브랜드의 높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분석했다. MLB나 NBA 같은 스포츠 리그 브랜드는 자유로운 스포츠 이미지를, 디스커버리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은 오지를 탐험하는 도전적인 이미지를 패션에 더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지난해 새롭게 등장한 라이선스 브랜드들은 패션과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브랜드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색다른 것을 추구하고 이종 협업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고 재미있는 브랜드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유통가에서는 이종업계 간 컬래버레이션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판매량을 견인했다.

반면 일부 소비자들은 라이선스 브랜드에 대해 ‘속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출시된 지 몇 년이 지난 브랜드들도 여전히 해외 브랜드인 줄 알고 있는 소비자들도 다수다. 이에 따라 신생 라이선스 브랜드들이 장수하기 위해서는 높은 인지도에 준하는 품질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