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범람 시대, 길고 빠르고 저렴한 차량으로 선택해야 후회 안 한다
[스페셜 리포트] 전기차 범람 시대다. 말이 끄는 마차가 자동차로 대체된 것처럼 내연차 시대에서 전기차 시대로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이 흐름에 맞춰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전기차 신모델을 잇따라 시장에 출시하고 있다.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어떤 전기차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똑똑한 소비자의 똘똘한 전기차 구매 요령과 올해 달라진 보조금 혜택 등을 자세히 알아봤다. “길어야 산다”…장거리 주행 여부 최우선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지난해 11월 한국의 전기차 구매자 729명을 대상으로 전기차 구입 전 우려 요소와 관련된 설문을 진행했다. 응답자들은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 시간 △배터리 내구성 △내연기관차 대비 높은 차량 가격 △부족한 충전소 인프라 순으로 고려 사항을 꼽았다.
충전식 전기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1년이다. 당시 프랑스의 발명가 귀스타브 트루베가 현대적 의미의 첫 충전식 전기차를 선보였다. 하지만 내연기관차의 등장으로 가능성과 잠재력만 높게 평가 받고 사라졌다. 하지만 130여 년이 흐른 후 테슬라의 모델S가 등장하면서 제대로 된 상품으로 시장에 재인식되기 시작했다.
다만 짧은 주행 가능 거리는 전기차의 빠른 보급을 막는 장애물이 됐다. 현재 출시된 전기차들은 1회 충전에 평균 300km 운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361km, 톨게이트 기준)까지 편도 운행하기에도 부족한 주행 거리다.
한국의 대표적 전기차 모델인 현대차의 아이오닉5는 1회 충전 시 최대 429km, 기아 EV6는 475km가 가능하다. 전기차 평균보다 주행 거리가 길지만 여전히 소비자의 높은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부족한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의 공식 미디어 채널인 HMG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기아 EV6를 구매한 소비자의 93.1%가 기본 모델과 비교해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가 더 긴 롱 레인지 트림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 트림인 스탠더드를 선택한 소비자의 비율은 5.6%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이 같은 롱 레인지 트림 편중 현상이 나타난 것은 장거리를 주행하려는 소비자의 수요가 크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스탠더드 모델은 2WD 기준 370km까지 달릴 수 있어 롱 레인지 트림의 77.9%에 불과하다.
글로벌 전기차 업체는 짧은 주행 거리의 단점 해결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전기차 주행 거리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선 주행 거리가 길어진 다양한 신규 전기차 모델이 대거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는 1회 충전으로 1000km를 달릴 수 있는 콘셉트 전기차 모델을 선보였다. 현재 존재하는 전기차 중 주행 거리가 가장 길다.
벤츠는 1월 3일 CES 2022에서 전기 콘셉트카 ‘비전 EQXX’를 공개했다. 개발에만 1년 6개월이 소요됐다. 실제 교통 상황을 반영해 진행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결과 이 차량은 한 번 충전으로 1000km 이상 달릴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주행해도 300km 더 운행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은 1kWh당 9.6km 이상이다. 100km 주행에 10kWh 정도의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셈으로, 화석 연료로 환산하면 100km 주행에 1리터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벤츠는 “초고효율의 전기 구동 시스템이 배터리에서 생기는 에너지의 95%를 바퀴로 전달한다”며 “가장 효율적인 내연기관 구동 시스템의 에너지 전달 효율이 30%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벤츠가 전기차 1000km 주행 시대를 열면서 다른 자동차 기업도 주행 거리 늘리기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현재보다 주행 거리가 늘어난 차량을 다수 출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의 짧은 주행 거리는 소비자가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며 “하지만 올해부터 늘어난 주행 거리를 자랑하는 차량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지금보다 향후 출시될 모델을 지켜보며 구입을 결정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답답한 충전 속도·인프라 개선 움직임
느린 배터리 충전 속도와 부족한 인프라는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다.
전기차 충전 방식은 충전 속도에 따라 크게 급속과 완속 충전으로 구분된다. 급속 충전은 별도의 변환을 거치지 않고 직류(DC)로 충전하는 방식으로, 완속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고 50분 내외면 충전이 가능하다.
단, 많은 양의 에너지를 빠른 시간 안에 충전하는 만큼 배터리 손상이 우려돼 80% 충전까지만 지원한다. 아이오닉5를 예로 들면 최대 주행 거리 429km의 80%인 343km만 운행할 수 있는 셈이다.
공공 기관과 공용 시설, 대규모 상업 시설 등에만 급속 충전소가 있어 충전을 위해 줄을 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형마트에서 주말에 급속 충전하기 위해 하루를 낭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충전 인프라 확대가 선행돼야 전기차 보급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완속 충전은 교류(AC)를 이용해 전기차 배터리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통상 7kW로 충전하는데, 전기차는 충전기에서 얻은 교류 전력을 배터리에 활용하기 위해 직류로 변환한다. 차종과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충전 시간은 7~12시간이 소요된다.
급속 충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긴 시간이다. 급속 충전과 달리 배터리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적지만 우리 국민의 특성상 운행을 위해 이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급속 충전소가 장사진을 치는 이유다.
전기차 운전자와 구매 희망자들은 충전 속도보다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거주지 인근 주차장에 충전소가 생기면 지금보다 더욱 나은 환경에서 운행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한국의 전기차는 20만 대 정도다. 반면 전국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급속 1만831기, 완속 6만641기 등 모두 7만1472기로 파악된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개인이 설치한 3만 기의 비공용 충전기를 합해도 10만 기 수준이다. 전기차 보급량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의 전기차 충전소 설치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기존 500가구 이상 아파트에만 전기차 충전 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100가구 이상 아파트도 설치해야 한다.
또 신축 시설의 전기차 충전소 설치 의무 비율을 현행 0.5%에서 5%로, 기축 시설은 0%에서 2%로 강화하기로 했다.
이민우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과장은 “전기차 충전 시설 설치 비율을 전기차 보급 목표와 동등한 수준으로 설정해 전기차 사용자의 충전 편의 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올해 전기차 보급 목표가 전체 차량 비율의 2%인 44만 대인 만큼 충전소도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도록 설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줄어든 보조금에 저렴한 전기차 ‘인기’
전기차는 차종·등급 등이 같은 내연차보다 비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전기차 가격은 동급 내연차의 1.8~4.1배 수준이다. 비싼 이유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가격이 내연차 엔진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을 상쇄해 주는 것은 정부의 보조금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전기차 보조금은 국고와 지방으로 나뉜다. 국고 보조금은 지난해까지 최대 지급액이 800만원이었만 올해부터는 100만원 줄어든 700만원만 가능하다.
국고 보조금 전액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차량 가격 범위도 축소된다. 지난해까지는 △6000만원 이하 100% △6000만~9000만원 이하 50% △9000만원 초과 0% 등이었다. 반면 올해는 5500만원 이하 전기차만 100%, 5500만~8500만원 이하 50%, 8500만원 초과 차량은 0%다. 이에 따라 5500만원 이하 전기차가 큰 인기를 끌 전망이다.
지방 보조금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하기 때문에 지원 금액은 상이하다. 서울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400만원을 지원했지만 같은 해 하반기부터 200만원으로 줄었다. 올해도 비슷한 금액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서울시 측은 귀띔했다.
아이오닉5 롱 레인지의 판매 가격은 4980만원(개별소비세 3.5% 세제 혜택 적용 후)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서울에서 국고 800만원, 지방 400만원 등 총 12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아 3780만원에 구매할 수 있었다. 반면 올해는 국고 700만원, 지방 200만원 등 900만원만 지원 받아 4080만원에 살 수 있다.
단, 전기차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자체의 보조금 예산은 금방 동나기 일쑤다. 지난해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한 지자체 161곳 중 107곳은 한 해가 채 가기도 전인 11월에 모든 보조금을 소진했다.
지방 보조금이 소진되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상대적으로 예산이 많은 국고 보조금만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방 보조금을 많이 주거나 예산이 많은 곳으로 ‘위장 전입’해 전기차를 ‘원정 등록’하는 이들도 많았다.
충남 당진은 지난해 전기차 지원 보조금이 1000만원에 달해 서울보다 800만원 많았다. 국고 보조금까지 합하면 1800만원까지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당진에서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 473건 중 13건이 등록 직후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 같은 원정 등록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위장 전입하는 이들을 면밀히 살펴 적발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구입 후 짧은 시간에 주소를 이전한 이들을 파악해 이전 사유 등을 파악할 계획이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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