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으로 사고 발생시 경영자 처벌 가능…대규모 조직 앞세워 조력자 자처

[비즈니스 포커스]
김앤장  ‘중대재해 대응그룹’ 변호사들.
김앤장 ‘중대재해 대응그룹’ 변호사들.



한국 최대 규모의 로펌인 김앤장은 지난해 말 내부에 ‘중대재해 대응그룹’을 출범시켰다.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기업들의 리스크를 적극 방어하기 위해서다. 보건의료·특허·건설·제조물책임 등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맹활약한 노경식 변호사(사법연수원 19기)를 필두로 다양한 전문가들을 포진시켜 조직을 구성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올해를 기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의 중대재해법 관련 자문 수요를 잡는다는 목표로 대규모 조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 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주요 로펌들의 행보도 분주해졌다. 김앤장뿐만이 아니다. 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등 대형 로펌들이 일제히 중대재해법 자문과 관련한 대규모 조직을 꾸리고 나서며 기업 고객을 그러모으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처벌 수위도 한층 강화돼중대재해법은 기업의 경영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명 사고에 대해 기업의 경영진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가령 제조사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동안에는 현장 관리 감독자가 해당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현장 관리자와 함께 기업의 대표이사까지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받게 된다.

과실이 인정되면 받게 되는 처벌 수위도 높아졌다. 이전까지는 징역 또는 벌금형 두 가지 중 하나의 처벌만 받았지만 1월 27일을 기점으로 대표이사는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동시에 부과 받는다.

또 산업 현장 외에도 기업이 운영하는 시설 등에서 시민들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동일한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시행을 걱정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특히 중대재해법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처벌을 피해 갈 수 있는 예방 수칙 기준이나 경영자가 책임져야 할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더욱 혼란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수요 잡아라”…출격 나선 대형 로펌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최근 많은 기업들이 대형 로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주요 로펌들이 경쟁하듯이 중대재해법 관련 조직을 신설하고 나선 배경이다.

로펌업계 일각에서는 중대재해법 관련 수요를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올해 실적이 판가름 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앤장은 100여 명에 달하는 전문가들로 대규모 조직을 구성하며 중대재해법 관련 자문 수요 잡기에 고삐를 죄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전 산업군에 걸쳐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구성원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산업 안전을 비롯해 형사·인사노무·제품안전·건설·컴플라이언스·기업 지배구조 등 각각의 산업 분야에서 활약해 온 변호사들로 그룹을 채웠다. 그리고 더욱 효과적인 자문 제공을 위해 고용노동부와 같은 정부 부처에서 오랜 실무 경험을 쌓아 왔던 인사들도 영입했다.

광장도 기존의 ‘산업안전팀’을 ‘산업안전·중대재해팀’으로 확대 개편한 상태다. 김앤장과 마찬가지로 형사·노동·환경·건설부동산·민사보험팀 등 각 분야에서 핵심 인력을 차출해 60명으로 팀을 꾸렸다. 다른 대형 로펌들과 달리 공동 팀장 체제를 구축하며 차별화를 둔 것도 특징이다.

노동·산업 안전 부문을 담당하는 진창수 변호사(21기), 기업 형사 부문을 담당하는 배재덕 변호사(26기), 환경·산업 안전 부문을 담당하는 설동근 변호사(30기) 등 3인의 파트너 변호사들이 공동 팀장을 맡고 있다. 각각의 업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로 정평이 자자한 인물들이다. 광장 관계자는 “산업안전중대재해팀 발족으로 현장감 있는 법률 자문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은 ‘중대재해 대응센터’를 신설해 대응하고 있다. 포괄적인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30여 명의 전문가로 이를 구성했다. 중앙노동위원회 소송 총괄 변호사, 고용노동부 서기관을 역임한 김동욱 변호사(36기)가 센터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의 지휘 아래 세종은 이미 수차례 중대 재해와 관련한 온라인 세미나(웨비나)를 진행했고 당시 영상들을 유튜브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기업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고 있다.

율촌도 ‘율촌중대재해센터’를 출범시켰다. 중대재해법 관련 대응을 위해 지난해 야심차게 영입한 박영만 변호사(36기)가 센터장을 맡았다. 박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산업재해예방보상정책국장 등을 역임하며 이론과 실무 모두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최근에는 ‘율촌 중대재해센터TV’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다양한 법 해석과 대응 방안 등을 담은 변호사들의 영상들을 올리며 수요 잡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율촌 관계자는 “중대재해·산업안전·강연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매주 정기적 업로드하며 기업의 산업 안전 실무진을 대상으로 정보를 공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이진한 태평양 변호사
“이미 주사위 던져져…철저한 대응으로 처벌 피해야”
“중대재해법 수요 잡아라”…출격 나선 대형 로펌들
주요 로펌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업 재해 관련 사건을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태평양 역시 이 같은 경험을 십분 활용해 적극적으로 ‘기업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기존에 운영하던 중대 재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중대재해 대응본부’로 격상하고 핵심 인재들을 배치했다. 또 전국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변호사들이 365일 24시간 실시간 자문을 제공하는 종합상황실까지 가동 중이다. 현재 중대재해 대응본부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이진한 변호사(21기·태평양 형사 그룹장)를 만나 중대재해법 시행이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들어봤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게 되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막기 어려운 것이 인재다.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나서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런 산업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무작정 처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산업 재해를 막기 위해 기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처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중대재해법 도입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다.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안전보건법 및 형법에 따라 현장 책임자들이 주로 처벌 대상에 올랐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현장 안전 관리에 다소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개정안이 발의돼 법이 통과되게 됐다.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본사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현장 안전 관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이 법을 시행하는 목적인 셈이다. 쉽게 설명하면 법을 도입함으로써 기업들도 여기에 맞춰 변하라는 얘기다.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한다거나 직원들의 교육 횟수 등을 늘리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나.

“모든 기업 규제가 그렇듯이 이 법도 뚜렷한 ‘빛과 그림자’를 갖고 있다. 대표이사가 수사 대상에 오르고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 만큼 기업들이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분명히 과거보다는 사고가 발생하는 빈도가 줄어들 것이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하는 ‘악법’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 말에도 공감한다. 여러 국가들을 놓고 봐도 산업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났다고 해서 대표이사를 처벌하는 법은 찾기 힘들다. 특히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산업 흐름이 급변하고 있다. 경영에만 집중해도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실정인데 어찌 보면 경영자들이 ‘안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과도한 벌금도 문제다. 한국 기업들은 전문 경영인들이 많다. 이들도 결국엔 월급을 받는 직장인인데 자칫하다가는 10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측면에서 중대재해법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

-중대재해법이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되돌릴 수 없다. 진통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엔 어쩔 수 없다. 선거법도 그랬다. 작은 돈을 주고받아도 선거에 나선 후보자를 구속시키는 법이 통과되자 처음에는 ‘너무 법이 엄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시행된 지 약 20년이 흘렀지만 법은 사라지지 않았고 선거철에는 돈을 주고받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업이 갖고 있는 사업의 특성별로 대응 방법이 다르겠지만 우선 큰 틀에서 보면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들을 최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작업자의 과실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작업 환경이 문제였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인 만큼 따로 이런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들은 만의 하나 산업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대 재해 예방을 위한 노력으로 인정받아 리스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