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구매 열풍 힘입어 매출 1조원 점포 전년 대비 두배 급증…업계 매출도 사상 최대

[스페셜 리포트]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사진=연합뉴스

“백화점의 성장 신화는 막을 내렸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만 하더라도 백화점업계를 바라보는 전망은 이와 같았다. 2010년께부터 시작된 경기 불안정과 온라인 쇼핑으로의 소비 트렌드 이동은 대형마트와 함께 백화점의 숨통을 점점 조여 왔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매년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해 왔던 백화점업계의 매출은 2010년대 들어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들의 전략도 점차 ‘성장’에서 ‘생존’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전망이 무색할 만큼 백화점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백화점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1월 7일 찾은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3시였음에도 불구하고 ‘맛집’들이 들어선 지하 1층 식당가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선 채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점포도 마스크를 쓴 이들이 긴 대기열을 만들었다.

고가의 시계·의류 등을 판매하는 층에서는 최근 뜨거운 명품 구매 열기를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패딩 한 벌에 수백 만원이 넘는 몽클레르 매장은 쇼핑객들로 가득했고 ‘없어서 못 판다’는 롤렉스 매장 앞에는 ‘금일 상담 예약이 모두 마감됐다’는 안내판이 보였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해 약 1조86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처음으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다음 날 점심께 찾은 롯데백화점 잠실점 역시 주말을 맞아 백화점을 찾은 쇼핑객들로 내부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며칠 전 세계적인 스타 셰프 고든 램지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햄버거집 ‘고든 램지 버거’ 앞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식당 관계자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자 “오늘은 예약이 마감돼 기다려도 식사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다른 식당들도 이보다 덜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기본으로 1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거리 곳곳에 인적이 드문 상황에서도 백화점들은 뜻하지 않은 호황을 맞고 있다. 수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업계의 지난해 매출은 30조원을 훌쩍 돌파했다. 사상 최대치다.
다시 찾아온 백화점 ‘전성시대’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 수도 급증했다. 2020년 5곳에서 지난해에는 무려 11곳이 매출 1조원을 넘어서며 ‘1조 클럽’에 가입했다. 1년 사이 무려 두 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계기로 ‘위기’라는 단어가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백화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 간 셈이다.믿고 명품 구매할 수 있는 창구로 급부상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백화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덩치를 키운 첫째 배경으로 단연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꼽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온라인’과 함께 ‘명품’이 새로운 구매 흐름으로 떠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해외여행에 썼던 비용 그리고 현지에서 명품 쇼핑에 들어갔던 비용들을 한국에서의 소비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게다가 명품은 소비자들이 온라인 구매를 꺼리는 대표 품목이기도 하다. 값이 비싼 만큼 직접 눈으로 일일이 흠집이 없는지 등을 따지고 구매한다. 온라인으로 사게 되면 자칫하다가는 가짜 상품을 구매할 위험도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백화점은 명품을 믿고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로 부각되면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 3대 명품이라고 불리는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등의 전략도 백화점들의 매출에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최초의 명품 전문 백화점인 갤러리아 명품관은 명품 구매 열풍에 힘입어 오픈 31년 만에 매출 1조를 달성했다. 사진=갤러리아 제공
한국 최초의 명품 전문 백화점인 갤러리아 명품관은 명품 구매 열풍에 힘입어 오픈 31년 만에 매출 1조를 달성했다. 사진=갤러리아 제공
이른바 ‘에루샤’라고 불리는 이 명품 브랜드들은 백화점 내에서도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직 오프라인 점포에서만 상품을 판매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 발란·트렌비·머스트잇 등 정품을 보장하는 플랫폼에서 해당 브랜드들을 파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철이 지났거나 인기가 없는 제품들이라는 설명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이런 초고가 브랜드를 선호하는 고객들은 특히 ‘신상’을 선호하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긴 줄을 서더라도 백화점에 직접 찾아가 상품을 구매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이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도 백화점 매출에 호재다. 가령 샤넬 핸드백은 수년 전까지 600만원대 제품이 주를 이뤘다. 해마다 가격을 올린 끝에 이제 1000만원 이하의 제품을 더 이상 찾기 어렵게 됐다.

사 두기만 해도 가격이 오르는 상품의 특성을 활용해 중고로 되팔아 돈을 버는 ‘샤테크(샤넬+재테크)’까지 생겨났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값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에루샤가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다 보니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수요가 급증했다”면서 “백화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매출 상승이라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백화점들의 면면을 보면 공교롭게도 11개 백화점 가운데 7곳이 ‘에루샤’를 모두 보유한 점포다.점포 혁신도 매출 상승의 비결명품 구매 열풍과 함께 백화점들의 뼈를 깎는 혁신도 마침내 코로나19 시대에 빛을 발하며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적으로 백화점들의 매출은 영업 면적에 비례한다. 하지만 온라인 쇼핑으로 무게 추가 이동하면서 이 같은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에 발맞춰 백화점들은 대대적으로 점포를 변신시켰다. 리뉴얼을 통해 과감하게 영업 면적을 줄이면서 즐길거리가 가득한 콘텐츠들로 공간을 채워 나갔다. 소비자들에게 쇼핑 외에도 백화점에 와야 할 다양한 목적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다시 찾아온 백화점 ‘전성시대’
먼 길을 가야 먹을 수 있었던 전국의 맛집들을 유치하는가 하면 키즈 카페·영화관·아쿠아리움 등과 같은 다양한 놀이 시설과 전시회 등을 수시로 개최하며 소비자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매출 2위를 차지한 롯데백화점 잠실점만 보더라도 숱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아시아에서 최초로 고든 램지 버거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고든 램지 버거가 들어선 지하 2층 몰은 롯데물산에서 관리하는 공간이어서 잠실점 매출에는 잡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백화점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돼 적극적으로 입점을 요청했고 마침내 최근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특성상 사람이 와야 매출 또한 늘기 마련이다. 특히 고든 램지 버거의 아시아 첫 매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내국인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 관광객들도 이곳에서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 롯데 잠실점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에 오픈한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 수천억원의 매출을 포기하며 점포를 구성했다. 전체 영업 면적 중 절반 이상을 소비자들이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개장 첫해였음에도 불구하고 7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백화점업계를 바라보는 전망도 밝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소비의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초고가 혹은 최저가 브랜드들만이 살아남고 중간급 브랜드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백화점은 이런 소비 양극화에 힘입어 더욱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관련 기업들이 파는 상품이 온라인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다. 백화점들은 명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고 최근에는 리뉴얼 등을 통해 명품 숍의 면적을 더욱 넓히고 있다. 명품의 구매 수요가 온라인으로 넘어가기엔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소비 양극화가 더 심해질수록 백화점이 수혜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주 애널리스트는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돼 여행이 자유로워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소비자들이 백화점을 찾는 데 익숙해졌다”며 “올해 백화점업계가 최소 전년 대비 8% 이상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