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조건부 승인…해외 경쟁 항공사들에 전략 노출 우려도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1월,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대한항공 항공기가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대한항공 항공기가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1년 만에 9부 능선을 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월 22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이번 기업 결합으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주식 63.88%를 취득하게 된다.

단 ‘조건’이 있다. 대한항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국제선 26개 노선과 제주행 노선 등 국내선 8개 노선에서 시장점유율을 낮춰야만 한다. 이러한 조치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주식을 취득하는 순간부터 10년 동안 이뤄진다.

국제선 26개·국내선 8개, 슬롯·인수권 이전해야

공정위는 심사 결과 국제선의 양 사 중복 노선 총 65개 중 26개 노선, 국내선의 양 사 중복 노선 총 22개 중 14개 노선에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중 국제선 26개, 국내선 8개 노선에는 구조적 조치를 부과한다. 다만 공정위는 화물 노선과 항공 정비 시장 등에서는 경쟁 제한성이 없다고 봤다.

공정위가 부과한 구조적 조치는 경쟁 제한성이 있는 국내외 여객 노선에 대해 슬롯과 인수권을 이전하는 것이다. 이는 경쟁 항공사의 신규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공정위 측은 설명했다. 슬롯은 항공사별로 배분된 공항의 이착륙 허용 횟수이고 운수권은 항공기로 여객과 화물을 탑재·하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번 조치에 따라 대한항공은 신규 항공사가 진입하거나 기존 항공사가 증편할 때 경쟁 제한성이 있는 26개의 국제 노선과 8개 국내 노선의 국내 공항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번 구조적 조치의 기준을 ‘노선 점유율’로 판단했다. 한 노선에서 양 사의 통합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그 이하로 축소될 때까지 슬롯과 운수권을 재분배한다.

공정위가 내건 구조적 조치의 효과는 신생 항공사들이 시장에 진입해야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장거리 노선에서는 서울~뉴욕·로스앤젤레스·시애틀·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 등 미주 노선 5개, 서울~바르셀로나·프랑크푸르트·런던·파리·로마·이스탄불 등 유럽 노선 6개가 구조적 조치의 대상이 됐다. 여행객은 물론 비즈니스 탑승객까지 몰리는 ‘알짜’ 노선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항공 시장의 침체가 시작된 시점에서 한국 항공사들 중 중·장거리 노선에 쉽사리 발을 들여놓을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병희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현실적으로 한국의 저비용 항공사(LCC)가 장거리 노선 운항에 진입하는 데 애로가 있다는 우려를 알고 있다”며 “공정위가 슬롯이나 운수권을 배분할 때 한국의 LCC에만 외국 항공사와 차별적으로 조치를 내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단거리 노선에서는 구조적 조치의 효과가 크게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는 “동남아와 중국 등 중·단거리 노선에서는 슬롯 외에 운수권 대부분이 이뤄져 한국 LCC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단거리 노선에서 LCC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적 조치와 함께 각 노선에 대한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축소 금지, 좌석 간격과 무료 수하물 등 서비스 품질 유지, 항공 마일리지를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태적 조치도 부과한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항공 시장의 불확실성 등으로 단기간 내 모든 노선에 새로운 항공사 진입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메가 캐리어’가 탄생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항공 결합은 큰 의미를 갖는다. 대형 항공사 간 결합은 물론 결합에 구조적 조치가 부과된 것도 처음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결합에 대해 “항공업계의 경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고 양 사 통합에 따른 소비자의 피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한국 항공 운송 시장의 경쟁 시스템이 유지·강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대한항공 측은 공정위의 결정에 수용한다고 밝히고 “향후 해외 지역 경쟁 당국의 기업 결합 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알짜 노선 반납해야 하는 ‘메가 캐리어’

해외 심사, 승인이 아닌 승인안 내용이 변수

이번 승인안은 ‘예상했던 대로’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실적에 버팀목이 된 화물 노선에 구조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행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합병안이 메가 캐리어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형 항공사의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기대했지만 공정위가 내민 조건으로 인해 양 사 통합의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대한항공에 내린 조치는 구조적 조치와 행태적 조치 등 두 가지다. 시장점유율을 낮춰야 한다는 구조적 조치가 우선 눈에 띄지만 전문가들은 행태적 조치도 우려스럽다고 판단한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합 항공사의 경쟁사는 더 이상 한국 항공사가 아닌데 공정위의 행태적 조치로 인해 해외 항공사들에 통합 항공사의 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합 항공사는 이제 세계 항공사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핸디캡이 주어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마케팅 방법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장거리 노선에서도 취약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 항공사들이 버티고 있는 한·중 노선 등이 그렇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정난에 처한 LCC들이 얼마만큼 활발하게 중·장거리 노선에 진출할지도 미지수다.

대한항공은 여전히 미국·중국·유럽연합(EU)·일본·영국·호주 등 6개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공정위는 현재 외국 경쟁 당국의 심사가 진행 중인 만큼 향후 결과가 나오면 외국의 심사 결과를 반영해 시정 조치 내용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승인을 받는 것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만 어떠한 방향의 승인이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이윤철 교수는 “해외 경쟁 당국의 판단은 철저히 자국 항공사 중심주의로 이뤄질 것”이라며 특히 중국은 자국 항공사에 가장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 대비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