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사장에 현대차 출신 김경배 내정…불안한 시황 대응·새 주인 찾기 ‘과제’
[비즈니스 포커스] HMM이 지난해 영업이익 7조원을 거두며 또 한번 시장을 놀라게 했다. 한국 기업 중 넷째로 많은 영업이익이다.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계기로 급락했던 주가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 HMM은 해운 업황 회복이 시작됐던 2020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주가가 2300% 급등하면서 이른바 ‘흠슬라(HMM+테슬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HMM의 2대 주주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것을 밝힌 이후부터 주가가 2만원대로 하락했지만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4개월 만에 3만원대에 들어서며 급등세를 보였다.
신임 김경배 대표 임기는 3월부터
HMM의 2021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52% 증가한 7조3775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13조7941억원으로 115% 늘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창사 이후 최대치다. 당기순이익도 5조3262억원으로 전년 대비 4200% 증가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미국 항만 적체가 지속되면서 아시아~미주 노선을 비롯한 전 노선의 운임이 크게 올랐다. 특히 4분기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가 2020년 12월 말 기준 2129에서 지난해 12월 말 기준 5046으로 대폭 상승했다.
HMM 측은 지속적인 원가 절감 노력과 정부 기관의 적극적 지원으로 세계 최대 2만4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 등 초대형 선박 20척 투입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HMM은 올해 상반기에 대해 오미크론의 확산,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교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동시에 벌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추가 화물 확보 노력과 내부 역량 강화, 영업 체질 개선을 통한 수익성 개선에 주력할 계획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1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은 2024년 상반기에 인도, 완료할 예정이다. 동시에 HMM은 신임 대표 선임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택했다. HMM을 이끌어 갈 신임 대표에 김경배 전 현대글로비스 사장이 내정됐다. HMM 채권단은 2월 9일 경영진추천위원회를 열고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대표 내정자는 3월 주주 총회 승인 이후 공식 취임한다.
김 내정자는 현대가와 오랜 연을 맺어 왔다. 1964년생으로 1990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수행비서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현대차 미주법인 최고재무책임자(CFO), 현대글로비스 미주법인 CFO, 현대모비스 기획실장을 거쳤고 2007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특히 2009년부터 9년간 현대글로비스 대표로 재직하면서 해운 시장에 몸담은 적이 있다는 것이 김 내정자의 장점으로 꼽힌다.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 운반선을 통해 해운업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에서의 임기가 끝난 후 김 내정자는 2018년부터 현대위아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HMM은 김 대표 취임 전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괄 부사장’직을 신설하고 박진기 현 컨테이너사업총괄 부사장을 선임했다. 기존 컨테이너, 전략·재무, 벌크(건화물), 해사 등 4개 사업 부문 가운데 해사를 제외한 3개 사업 부문을 종합 관리한다. 한진해운 출신인 박 부사장은 HMM이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재훈 HMM 사장의 임기는 3월 26일 만료된다. 배 사장은 기존 임기 2년에서 1년을 더한 3년 동안 HMM을 이끌어 왔다. 배 사장의 임기 동안 HMM은 해운 시장의 반등으로 연일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동시에 정부의 해운 재건 지원 정책 등으로 초대형 선박을 잇달아 발주하면서 체급을 키웠다.
시황에만 기대기엔 불안한 컨테이너 시장
지난해 최대 실적을 냈지만 HMM엔 ‘경영 정상화’라는 남은 과제가 있다. 그간 HMM의 실적이 급등했던 것도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린 시장의 호황이 컸다. 지난해 주식 급락에서 알 수 있듯이 HMM이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여전히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시장의 판단은 여전하다.
올해 컨테이너 시장이 ‘상고하저’로 예상되면서 HMM에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컨테이너 운임은 5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월 둘째 주 상하이종합운임지수(SCFI)는 지난주 대비 34.9포인트 하락한 4946이다. 해양수산개발원(KMI)은 북미 서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항로에서 운임이 하락했지만 세계 주요 항만에서는 여전히 정체가 지속돼 큰 폭의 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컨테이너 시장의 물류 병목이 하나씩 해결됨에 따라 1분기를 고점으로 상반기에는 점진적으로,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컨테이너선 운임 하락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아시아~미주 노선 병목 현상의 주원인이었던 미국의 롱비치항 또한 지난해 12월 중순 3단계 증설을 끝내 기존 대비 항만 처리 용량이 1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진투자증권도 올해 컨테이너 시황을 ‘상고하저’로 예상했다. 미국의 내구재 소비 모멘텀도 시간이 갈수록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고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 공급망 차질도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흐름을 고려할 때 김 내정자는 현재 컨테이너에 쏠린 HMM의 사업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유동성 위기 전후로 4분의 1 수준으로 작아진 벌크사업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2021년 4분기 기준 HMM의 매출 구조는 컨테이너가 93%, 벌크 6%, 기타 1%로 이뤄져 있다. 컨테이너가 사실상 사업 구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향후 요동칠 시장과 액화천연가스(LNG)선이 해운업계의 주요 먹거리로 떠오른 점을 감안하면 벌크 사업의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향후 HMM의 매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이 70%에 달해 매각이 불가능하다”며 단계적인 지분 매각을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역대급 실적을 낸 상황에서도 대표를 교체하면서 HMM의 ‘새 주인 찾기’가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