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만 2200만 명…이웃 간 대면 거래 앞세워 중고 거래 ‘대명사’로
[스페셜 리포트]두나무(업비트 운영사), 직방, 컬리(마켓컬리 운영사), 빗썸코리아(빗썸 운영사),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운영사), 당근마켓, 리디(리디북스 운영사)….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신규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 2021년 기준)’의 명단이다. 총 7개사가 새롭게 합류했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지역 기반의 중고 거래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근마켓이다. 지난해 선정된 기업들 가운데 가장 짧은 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이 설립된 것은 2015년 7월이다. 불과 7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무섭게 사세를 확장해 당당히 유니콘 기업에 합류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단위의 사업을 시작했던 것을 감안하면 약 4년 만에 거둔 성과다.
당근마켓의 등장으로 오랜 기간 중고 거래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해 오던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의 굳건한 독주도 막을 내렸다. 짧은 기간에 소비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애플리케이션(앱)이자 중고 거래의 ‘대명사’가 된 당근마켓의 성공 비결을 파헤쳐 봤다.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 게시글이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품들을 돈을 받지 않고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는 글을 이곳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가 사용하던 장난감 공짜로 가져가세요.”
“햄버거 무료 쿠폰 필요하신 분 없나요.”
당근마켓의 등장은 중고 거래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돈을 받고 쓰던 물건을 싼값에 거래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쓸모없는 물건들을 타인에게 대가 없이 제공하는 ‘무료 나눔’ 문화를 확산시킨 주인공이다.
이는 상품 거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른바 ‘도움 요청’ 글들도 당근마켓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금호동에서 용인 중동까지 가구 몇 개 옮겨 주실 분 찾습니다. 원하는 비용 알려주세요”, “○○역 근처에 있는 헬스장 오전에 6시부터 8시까지 사람 많나요”와 같은 재미있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때로는 이런 게시물들이 소비자들에게 웃음거리로 회자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이런 특징 때문일까. 당근마켓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약 앱’이라고 불릴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현재(2021년 12월 기준) 당근마켓의 누적 가입자 수는 약 2200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전체 가구 수(약 2100만)를 감안하면 집집마다 최소 한명씩은 당근마켓에 가입한 셈이다.
이용자들의 체류 시간도 상당하다. 글로벌 데이터 조사 기관 앱애니에 따르면 당근마켓 가입자들은 월평균 2시간을 머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불안한 중고 거래의 틈새 공략
당근마켓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파악해 이를 보완한 서비스를 내놓으며 빠른 속도로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기존의 중고나라·번개장터 등과 같은 플랫폼이 가진 단점들은 명확하다.
모르는 사람과 비대면(택배)으로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믿고 거래하기가 어렵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안한 뒤 발 빠르게 선보인 결과물이 바로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은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끼리 직접 만나 필요한 물품을 거래하도록 유도한다.
당근마켓이 첫 서비스를 출시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중고 거래 사기는 큰 사회적 이슈였다. 택배 박스 안에 쓰레기가 담겨져 왔다거나 가품을 받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소비자들의 중고 플랫폼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당근마켓을 설립한 김용현·김재현 공동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사내 게시판을 통해서였다.
두 대표는 당시 모두 카카오에서 근무하는 ‘판교 직장인’이었는데 사내 게시판에서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끼리 직접 만나 활발하게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점에 주목한다.
그렇게 두 대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들을 직접 만나 거래하도록 연결해 주면 중고 거래의 문제점들을 크게 해소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뜻을 가진 당근마켓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사업 초기 당근마켓은 판교테크노밸리 내에 근무하는 직장인들만 회사 메일을 입력해 쓸 수 있도록 앱을 구축하며 닻을 올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들의 반응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예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앱을 다운받은 뒤 대면으로 물건을 사고팔았다. 급기야 앱이 입소문을 타면서 직장인이 아닌 판교 주민들로부터 ‘우리도 앱을 쓰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결국 두 대표는 판을 더 키우기로 결심한다. 휴대전화 위성항법장치(GPS)를 통한 동네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며 지금과 같은 모습의 앱을 만든 것이다. ‘판교 직장인’에서 ‘동네 이웃사촌’으로 타깃 고객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당근마켓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웃과 직접 대면으로 거래를 유도한다. 이를 위해 거주지에서 최대 반경 6km 내에 있는 이용자들끼리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게시판을 도배하는 전문 판매업자를 원천 차단한 것도 특징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들은 수익을 목적으로 전문업자가 반복해 올리는 게시물에 대한 피로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당근마켓은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해 부적절한 콘텐츠를 검수하고 삭제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비대면 중고 거래에 불안해 하던 소비자들은 당근마켓의 거래 방식에 열광했고 당근마켓은 이를 등에 업고 빠르게 사세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
당근마켓은 현재 전국 6577개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하나의 ‘당근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가까운 이웃과의 거래를 기반으로 삼은 덕분에 무료 나눔이나 도움 요청과 같은 당근마켓만의 독특한 거래 문화도 나타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소비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서비스 개선내부에서는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는 와중에서도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서비스를 계속 내놓은 것도 성공의 비결로 꼽는다.
거래 당사자들이 앱에서 쉽게 송금·결제할 수 있도록 한 간편 결제 서비스 ‘당근페이’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웃끼리 직접 만나 거래할 때 현금을 준비하거나 길거리에서 계좌번호 혹은 예금주 등 개인 정보를 주고받아 불편하다는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많았다. 이런 지적을 귀담아듣고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당근페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당근페이는 소비자들의 거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를 사용하면 은행 계좌와 연동돼 당근페이 지갑에 50만원까지 충전 후 이용할 수 있다. 송금과 결제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이웃과 중고 거래 상황에서 당근페이를 이용하면 별도의 은행, 송금 앱을 사용할 필요 없이 당근 채팅 한곳에서 실시간으로 송금이 이뤄진다.
또 판매자도 채팅 화면을 보고 송금 여부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경쟁사들과 다르게 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도 받지 않아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중고 거래뿐만 아니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는 것 역시 당근마켓만이 가진 강점으로 꼽힌다.
이를테면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외에도 2020년 9월부터 ‘동네생활’이라는 카테고리를 신규로 도입해 운영 중이다. 여기에서는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조차 찾기 어려운 유용한 지역 정보와 소식들이 올라온다.
동네의 친절한 병원이나 맛집 등의 소식들을 엿볼 수 있고 이용자의 거주지 인근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들도 접할 수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급히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헌혈증을 모아 전달하거나 실종된 치매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이용자들이 힘을 합치는 등 위급한 상황에서 같은 동네 이웃끼리 서로 돕는 사례가 많이 알려지면서 점차 ‘동네생활’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생활’과 같은 시기에 서비스를 시작한 ‘내 근처’라는 이름의 서비스도 반응이 좋다는 후문이다. 이는 이용자들이 인근에서 운영 중인 가게들을 각각의 카테고리별로 구분해 보여주는 서비스다.
‘맛집’, ‘카페’, ‘장보기’, ‘쿠폰북’ 등 다양한 테마로 나눠져 있는데 이용자들은 ‘내 근처’에서 동네 가게 정보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소상공인에게도 이웃 주민들에게 가게를 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소상공인들이 자신의 가게를 알릴 수 있는 창구로 입소문이 나며 활성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 당근마켓은 청소·반려동물·교육 등 전문 O2O(Online to Offline)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생활 밀착형 서비스 영역을 다양하게 넓혀 나가며 지금도 계속 사세를 확장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역의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해 주는 ‘하이퍼 로컬(지역 밀착)’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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