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할 후 재상장 조짐에 주주 반발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우려에 시가 총액 1500억원 증발

[비즈니스 포커스]
LS일렉트릭 청주 스마트공장 전경. 사진=LS일렉트릭 제공
LS일렉트릭 청주 스마트공장 전경. 사진=LS일렉트릭 제공
LS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LS일렉트릭이 친환경차 핵심 부품인 EV릴레이 사업을 물적 분할하기로 하면서 주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등 기업들의 알짜 사업부문 물적 분할로 모회사의 디스카운트가 이어지자 소액 주주들의 반대 기류가 커지고 있다. 대선 주자들도 관련 제도 개선과 함께 규제 방안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전기차 부문 떼내는 LS일렉트릭

LS일렉트릭은 2022년 2월 8일 기존의 EV릴레이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LS이모빌리티솔루션(가칭)을 신설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분할이 이뤄지면 LS일렉트릭은 LS이모빌리티솔루션의 지분을 100% 보유하게 된다. LS일렉트릭 존속 법인은 전력·자동화 사업 등 기존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EV릴레이는 전기·수소차를 구동하는 기능을 하는 파워 트레인에 배터리의 전기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안전하게 차단하는 핵심 부품이다. 미래 에너지 사업인 에너지 저장 장치(ESS), 스마트 그리드에서도 전력 제어 부품으로 사용된다.

EV릴레이 매출액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3.8% 늘었다. 2021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15.6% 증가한 585억원이다. EV릴레이 시장은 연평균 3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EV릴레이는 LS일렉트릭 전체 매출액(2조6683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약 2%에 불과하지만 중국 친환경차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수혜가 예상된다. LS일렉트릭은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우시에 사업장을 설립해 중국 시장용 EV릴레이를 생산하고 있다.

주주들은 쪼개기 상장을 통한 모회사의 기업 가치 하락을 우려한다. LS일렉트릭은 신설 법인의 상장에 대해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지만 증권가에서는 상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인적 분할이 아닌 물적 분할을 택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로 LS일렉트릭은 물적 분할 발표 직후인 2월 9일 하루 만에 시가 총액이 1500억원 증발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구글 보유한 알파벳, 자회사 비상장 유지

해외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표적으로 구글은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하고 2015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알파벳은 유튜브·구글·구글 딥마인드·구글X·웨이모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지만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다.

알파벳이 물적분할로 분리한 자회사의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이들 자회사의 기업 가치는 지주회사인 알파벳에 모두 반영돼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메타(구 페이스북)·아마존도 마찬가지다.

장효선 삼성증권 글로벌주식팀장은 2022년 1월 17일 ‘애플의 성장은 오롯이 애플 주주에게’라는 리서치 보고서를 통해 모회사 주주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물적 분할이 가장 선진화된 자본 시장으로 평가받는 미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장 팀장은 “애플이 PC·휴대전화·플랫폼·반도체·모빌리티 등 미래 패러다임 대부분을 아우르는 초국가적 기업으로 발전한 것도 대단하지만 성장의 과실이 오롯이 애플 주주에게 귀속된다는 것이 더 놀랍다”며 “애플의 성장 모멘텀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플 주식을 보유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배자영 기자
그래픽=배자영 기자
규제 역풍 맞을라…속도 조절 나선 기업들

배터리업계에서 시작된 물적 분할 후 재상장 논란은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주들의 불만이 커지자 대선 주자들도 물적 분할 후 재상장을 금지하는 안을 들고나왔다.

대표적인 물적 분할 관련 정책으로 모·자회사 동시 상장 관련 규정 정비, 분할 후 상장시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 우선 배정, 물적 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주식 매수 청구권 부여 등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도 비슷한 방침을 표명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021년 12월 30일 “기업의 물적 분할 이슈에 대해 법적 부분에서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2022년 1월 25일 “물적 분할 자회사에 대해 상장 심사를 할 때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항목의 하나로 두고 적극 검토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1월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이 회사의 분할·합병, 대규모 자산의 양도·양수와 같은 중대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지배 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 통과 여부를 떠나 차기 정권에서는 주주의 권리 강화 움직임이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해 물적 분할을 추진하려던 다른 기업들도 신중 모드에 들어갔다. CJ ENM은 콘텐츠 제작 부문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를 설립하는 계획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해 물적 분할로 자회사 SK온을 설립했던 SK이노베이션은 SK온의 상장을 당분간 검토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당초 현금 부족과 신규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을 사유로 무배당을 추진하던 SK이노베이션은 물적 분할에 따른 주주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깜짝 배당을 실시하기로 했다.

최근 LG화학·포스코·NHN·세아베스틸 등이 물적 분할 이후 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하고 금융 당국과 정치권까지 관련 규제에 나서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