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호 삼성SDI 사장

[스페셜 리포트] K배터리 별들의 전쟁
최윤호 삼성SDI 사장. 사진=삼성SDI 제공
최윤호 삼성SDI 사장. 사진=삼성SDI 제공
삼성그룹은 2021년 12월 삼성전자의 국내외 살림을 총괄해 온 최고재무책임자(CFO) 최윤호 사장을 삼성SDI 신임 대표이사에 내정했다. 최 사장은 2022년 3월 주주 총회를 통해 공식 선임될 예정이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전영현 사장은 배터리 사업 성장과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삼성SDI 설립 최초로 부회장직에 올랐다. 기존 사장 단독 체제였던 삼성SDI를 부회장-사장 ‘투톱 체제’로 전환한 것은 그만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글로벌 배터리 사업 확대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최 사장은 삼성전자 구주총괄 경영지원팀장, 미래전략실 전략1팀 담당임원, 전사 경영지원실장 등을 거쳤다. 35년간 삼성전자의 재무와 경영 관련 핵심 요직을 맡은 전략통으로 꼽힌다. 특히 최 사장이 근무한 미래전략실 전략1팀은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는 미전실 안에서도 핵심 부서로 평가받는다.

삼성전자에서는 전통적으로 미전실 출신들이 CFO 자리를 맡아 왔다. 최 사장이 이 부회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고 CFO로서 연매출 2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의 살림살이를 담당하며 인수·합병(M&A) 등의 전략적 결정에 깊숙이 관여해 온 만큼 향후 삼성SDI의 배터리 사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삼성SDI는 “재무 전문가이자 글로벌 사업 운영 역량을 갖춘 최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에 내정함에 따라 앞으로 삼성SDI의 글로벌 사업 경쟁력이 크게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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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란티스 손 잡고 미국 공략 본격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이 격화하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을 비롯한 배터리 기업들이 생산 능력 확대에 조 단위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더 많은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선 기술력과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생산량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삼성SDI는 배터리 3사 중 생산 시설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북미 시장을 두고 투자 레이스를 펼치는 상황에서도 삼성SDI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2021년 8월 반도체와 바이오 등 미래 전략 사업에 24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배터리 부문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빠져 있어 배터리 사업 확대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배터리 3사 중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마련하지 못한 곳은 삼성SDI가 유일했다. 삼성SDI는 미국 내 배터리 셀 생산 라인이 없고 배터리 팩 조립 공장만 가지고 있다.

경쟁사들은 2025년까지 2021년 말 대비 4배 이상 증설을 목표로 하는 반면 삼성SDI는 2021년 77GWh에서 2025년 214GWh로 증설에 다소 보수적인 모습이다. 공격적인 외형 성장보다 수익성을 확보하며 증설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SDI는 SK온의 공격적인 생산 능력 확대에 따라 2021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5위 자리를 내준 상태다.

삼성SDI가 세계 4위 자동차 업체인 스텔란티스와 미국에 첫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에 나서면서 순위 재탈환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SDI와 스텔란티스는 2025년 상반기부터 미국에서 최초 연산 23GWh 규모로 전기차 배터리 셀과 모듈을 생산하기로 했고 향후 40GWh까지 확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합작법인명과 공장 위치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삼성SDI는 한국·중국·유럽(헝가리)에 배터리 셀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으로 글로벌 생산 거점 4각 체제를 이루게 됐다. 2025년 7월로 예정된 신북미자유협정 발효를 앞두고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셀·모듈 생산을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R&D에 연매출 7% 쏟아부어…“질적 성장으로 1등”

미국 진출을 시작으로 삼성SDI가 북미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미국에서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도 파트너십을 확대한다면 LG에너지솔루션·SK온과의 생산 격차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사장이 줄곧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있어 최 사장 체제에서도 삼성SDI의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최 사장은 올해 1월 시무식에서 “질적 성장 없이 양적 팽창에 치중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철저한 사전 점검과 리스크 관리를 통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제품으로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을 이뤄 나가자”고 말했다.

삼성SDI의 성장 전략은 규모의 경제 실현이 아닌 초격차 기술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SDI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기술 개발을 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삼성SDI의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R&D 비용 8083억원을 집행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매출액 대비 7% 이상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4530억원(3.4%), SK이노베이션이 2092억원(0.64%)을 투자하는 것과 비교해 많은 비용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13조5532억원, 영업이익 1조676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20%, 영업이익은 59% 각각 늘었다. 지난해 3분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공급을 시작한 젠5(Gen.5) 배터리 중심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젠5는 삼성SDI의 최신 소재 기술이 집대성된 결과물로 삼성SDI의 초격차 기술 전략을 상징한다. 품질 경쟁력을 높이고 기술 격차를 벌려 선두 지위를 유지하는 전략이 수익성을 이끈 만큼 양적 팽창을 지양하는 전략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최 사장은 지난해 말 임직원 소통 간담회에서도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난도가 계속 높아지는 배터리·소재산업에서는 질적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진정한 1등은 초격차 기술 경쟁력과 최고의 품질을 기반으로 수익성 우위의 질적인 성장을 이루는 기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스페셜 리포트 : K배터리 별들의 전쟁 기사 인덱스]
-‘배터리에 미래 달렸다’…삼성·SK·LG 거물급 전진 배치
-LG에너지솔루션, 미국 전기차 붐 타고 세계 1위 진격
-SK온, 과감한 미래 투자로 ‘배터리 톱’ 야심
-삼성SDI, ‘쩐의 전쟁’ LG·SK와는 다른 길 간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