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도 사원도 ‘님’으로 통일한 인사 혁명
글로벌 기업 도약의 바탕이 된 ‘인재 제일’ 철학
CJ가 혁신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그 첫 시작은 바로 ‘사람’이다. CJ의 미래를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가 핵심이고 최고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과감한 변화를 진행 중인 CJ의 인사 혁신과 그 의미를 짚어 봤다. CJ그룹은 한국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수평적 호칭인 ‘님’을 도입하고 다양한 인사 제도 혁신을 통해 수평적 기업 문화 구축에 힘써 왔다. CJ그룹이 연매출 1조원대 내수 위주의 식품 기업에서 연매출 34조원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이재현 회장의 인재 경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장은 CJ그룹의 미래를 구현하고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곧 인재라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2021년 11월 그룹의 중기 비전을 밝힌 자리에서도 “CJ그룹의 미래 혁신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인재”라며 다양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인사 제도 혁신을 강조하고 탁월한 성과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보상’을 공언했다.
이 회장은 평소 “내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업보다 좋은 인재를 키우는 것에 있다”며 ‘사람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인재제일(人材第一)’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CJ그룹은 인재제일 철학을 바탕으로 인사 제도 혁신을 선도해 왔다. 재계 ‘○○님’ 문화 시작은 CJ
대표적인 것이 호칭 파괴 실험이다. CJ그룹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기업 간 생존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조직의 창의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으로 대기업 최초로 수평적 호칭을 도입했다.
CJ그룹은 2000년 1월부터 부장·과장·대리 등 직급 호칭 대신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임직원들은 공식 석상에서 이 회장을 호칭할 때도 ‘이재현님’으로 부르고 있다. 이 회장은 ‘님’ 문화 도입 당시 어색해하는 임직원들이 빠르게 수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이재현님’으로 호칭하도록 독려하면서 수평적 소통 문화의 안착을 이끌었다.
CJ그룹의 창조적 조직 문화를 만든 인사 제도 혁신 중 입사 후 10년 만에 임원이 될 수 있는 ‘패스트 트랙’ 제도도 빼놓을 수 없다. CJ그룹은 2012년 패스트 트랙 제도를 도입했다.
전통적 인사 관행을 깨고 역량 있는 젊은 인재를 조기에 발굴해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연공서열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성과와 능력을 발휘한 인재가 인정받는 CJ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직원들이 즐겁게 업무에 몰입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인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CJ그룹에는 ‘CJ 온리원 페어’라는 신입 사원 아이디어 경연 대회가 있다.
그룹과 각 계열사 신입 사원들이 팀을 이뤄 계열사의 주요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중 일부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으로 개발되거나 사업화된다. CJ제일제당의 라이스푸딩·비빔밥을 콘 형태로 만든 비비콘 등은 CJ 온리원 페어에서 나온 대표적인 아이디어다.
여기서 우승한 팀은 해외 연수 등의 기회를 얻는다. 신입 사원들은 CJ그룹의 주요 사업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회사는 신선하고 톡톡 튀는 신입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CJ그룹만의 차별화된 입문 교육이다.
인사 실험은 채용 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CJ그룹은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 선호도 설문 조사에서 매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CJ그룹은 올해 신입 사원 공채에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이 면접관으로 참여하고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비대면 면접을 시행하는 등 파격적인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한다.
CJ그룹은 미래 성장의 주역이 될 인재 선발을 목표로 계열사별 맞춤형 채용 절차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입사 4~7년 차 MZ세대 실무진이 1차 면접에 참여해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컬처핏 인터뷰’를 한다.
CJ대한통운과 CJ ENM은 MZ세대 직원이 주니어 면접관으로 면접에 참여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CJ올리브영네트웍스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채용 홍보를 하고 1차 면접까지 진행한다. 창조적 조직 문화가 낳은 인재들, 글로벌 CJ 만들다
호칭 파괴, 전통적 인사 관행을 깬 승진 제도, 파격적인 채용 절차 등 다른 기업들보다 선제적으로 시행한 혁신적인 인사 시스템은 CJ그룹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CJ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이재현 회장의 인재 경영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CJ그룹은 독립 경영을 시작한 1995년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출범 당시 내수 위주의 식품 기업으로 매출액이 1조6000억원에 불과했지만 30년도 채 되지 않아 2021년 기준으로 34조원까지 매출액이 증가했다.
CJ그룹 성장의 역사는 새로운 시장을 산업화하고 시장과 기업이 함께 발전한 창조적 혁신의 과정으로 평가된다. CJ그룹은 1995년 제일제당그룹 출범 이후 기존 내수 위주의 식품 중심 사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했다.
1998년 한국 최초로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했고 2000년 홈쇼핑(현 CJ온스타일) 진출을 통한 라이브 커머스 시장을 개척했다. 1999년에는 한국 최초의 헬스앤드뷰티 스토어 사업에 진출해 올리브영을 론칭했다.
2002년에는 CJ로 그룹 사명을 변경하고 2011년 CJ ENM을 출범시켰다. 2011년에는 CJ대한통운 인수로 글로벌 물류 기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식품·식품 서비스 △바이오·생명공학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신유통·물류 등 4대 사업군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이 회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성장의 기회가 없다’는 이념으로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매진해 왔다. CJ그룹은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직후인 1995년 미국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에 3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문화 사업에 처음 진출했다. 당시 제일제당 연간 매출의 20%가 넘는 큰 규모였지만 이 회장은 ‘문화가 미래’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투자를 강행했다.
그로부터 25년간 CJ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7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 과정을 통해 쌓인 역량이 ‘응답하라 1988’, ‘도깨비’, ‘삼시세끼’,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한류를 대표하는 콘텐츠들이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콘텐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1760만 관객으로 한국 영화 관객 수 순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화 ‘명량’을 비롯해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식품 사업에서도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햇반’을 필두로 한국에 전무했던 즉석밥 시장을 개척하고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를 선보이며 한 발 앞서 CJ그룹만의 식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특히 비비고 만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 시장점유율 40%로 1위를 차지했다. 비비고 만두는 한국과 미국을 넘어 유럽과 일본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사료·바이오 사업에서는 세계 최고의 생산 기술력을 통해 기존 일본 기업 위주로 형성됐던 전 세계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에서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CJ제일제당은 라이신·트리토판·발린·핵산·농축대두단백 등 5개 그린 바이오 사업 분야에서 글로벌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PHA)를 필두로 한 화이트 바이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레드 바이오로의 확장도 준비하고 있다. CJ그룹은 이 같은 창조적 혁신을 통해 한국을 넘어 글로벌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방침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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