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사 등 유니콘 기업, 베테랑 CTO 선임 줄이어…연봉 인상, 각종 보너스, 스톡옵션 등 CTO 몸값 치솟는 중

[비즈니스 포커스]
하늘의 별 따는 ‘기술 리더 구하기’…뺏고 뺏기는 CTO 영입전
개발자 인력난에 ‘구인 전쟁’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기술 비즈니스를 책임질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혁신 없이 기업의 백년대계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CTO의 수요 폭발로 몸값이 치솟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을 중심으로 증가하던 CTO의 수요는 이미 디지털 전환에 사활을 건 금융업계나 일반 대기업, 조(兆) 단위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에서도 급증하고 있다. 뺏고 뺏기는 CTO 영입전을 들여다봤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기술 리더 수요

기술을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기업들이 최근 CTO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네카라쿠배당토직(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직방)’이라고 불리는 개발자를 선호하는 정보기술(IT)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권, 유통 대기업, 유니콘 기업, 스타트업까지 CTO 모시기에 나선 것. 이들 기업은 연봉 인상에 더해 각종 보너스와 스톡옵션 그리고 다양한 복지 혜택 등을 내걸며 CTO를 영입하고 있다.

롯데는 최근 순혈주의를 깨고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CTO도 그중 한 명이다. 롯데쇼핑은 유통군 HQ 디지털혁신센터장(부사장)에 현은석 전 이베이코리아 부사장 겸 CTO를 영입했다. 오라클과 이베이코리아 출신인 현 부사장은 온라인과 디지털에 사활을 건 롯데쇼핑의 조직 문화를 개선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SK텔레콤도 최근 CTO에 변화가 있었다. 김윤 전 CTO가 지난해 말 사임하면서 이상호 커머스사업부장 겸 11번가 대표가 SK텔레콤의 CTO를 겸하기로 했다. 이상호 CTO는 개발자 출신으로, 자연어·음성 처리 전문가다. 2016년 SK플래닛 CTO에 영입된 이후 SK텔레콤 AI사업단장 등을 거쳤다. 2018년 SK텔레콤에서 서비스플랫폼 사업부장을 맡은 뒤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 개발을 주도했다. 업계에선 SK텔레콤의 겸직 사례가 최근 CTO 인력난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CTO는 이동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도 특징이다.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의 이동보다 유니콘 기업이나 벤처 스타트업계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고 IT 기반 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대출 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 중인 핀다는 최근 LG전자 출신 데이터 전문가인 서희 CTO를 영입했다. 서 CTO는 LG전자에서 통합 고객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 서비스와 분석 플랫폼 개발 조직을 이끌었다. 핀다는 또 네이버 부사장 출신 최성호 커넥트인베스트먼트 대표를 기술전략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최 자문위원은 네이버 재직 시절 메일·블로그·카페 등 서비스를 진두지휘했고 LG전자에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센터장을 역임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마이데이터(본인 신용 정보 관리업) 사업자인 뱅크샐러드는 지난해 말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김문규 CTO를 영입했다. 김 CTO는 뱅크샐러드의 기술 조직을 이끌며 마이데이터 사업에 최적화된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빅테크에서 유니콘 기업으로

‘네카라쿠배당토직’과 같은 IT업계 핵심 인재들이 분야별 유니콘 기업을 찾고 있는 것도 최근 새로운 분위기다.

한국 최대 패션 플랫폼으로 유니콘 기업에 오른 무신사는 올 3월 ‘배달의민족’ 출신 조연 CTO를 새로 선임했다. 무신사의 첫 CTO가 된 조연 CTO는 그동안 카카오의 전신인 다음·엔씨소프트 등 IT·게임·모바일 플랫폼 등의 기술 기반 기업과 글로벌 기업 등에서 모바일·웹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그는 영미권 웹소설 기반의 플랫폼 ‘래디쉬미디어’의 공동 창업자 겸 CTO를 지냈고 배달의민족 베트남 현지 법인 CTO를 역임하는 등 국내외에서 기술 전문가로 활약했다. 무신사는 조연 CTO와 함께 역량 있는 개발 조직 구축과 적극적인 투자에 주력할 계획이다.

앞서 푸드테크 유니콘 기업인 마켓컬리는 지난해 하반기 카카오에서 클라우드 관련 업무를 맡았던 류형규 CTO를 영입해 기술 개발 총괄을 맡겼다. 차량 공유 유니콘 기업인 쏘카는 지난해 11월 류석문 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개발이사를 CTO로 신규 영입했고 소셜 커머스 유니콘 기업 티몬 역시 올 3월 구글 출신의 황태현 CTO를 선임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C레벨급 베테랑 개발자들이 기존의 정통 IT 기업 대신 개인과 조직 측면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니콘 기업 플랫폼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콘 기업 근무 시 가장 큰 장점은 개발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근무 조건에서 커리어와 실력을 함께 쌓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말 발표한 ‘개발자 트렌드 리포트 2021’에 따르면 개발자들은 취업이나 이직 시 연봉, 개인과 회사의 성장 가능성, 고용 안정성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유니콘 기업은 각 분야에서 시장을 개척하는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고용 안정성과 안정적인 임금은 물론 도전적인 업무 분위기까지 동시에 갖추고 있는 곳이 많다. 여기에 빠르게 성장하는 분위기와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수평적인 기업 문화도 유니콘 기업의 장점으로 꼽힌다. 정통 IT 기업 개발자의 역할과 도전 범위도 보다 넓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 분위기에 맞춰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 과제 수행을 직접 자신만의 스타일로 경험해 나가며 기업에 개발이 기여하는 점 등을 체감하는 보람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별 따는 ‘기술 리더 구하기’…뺏고 뺏기는 CTO 영입전
“위기 상황에 기술 리더 영향력 더 증가”

혁신 기술로 미래 성장을 도모하는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은 CTO에 더욱 애절한 상황이다. 국내외 유수 기업에서 개발자로 활약한 이들을 CTO로 선임해 IT 조직의 경쟁력과 기술 강화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 라인플러스에서 개발 리더로 활약한 박원준 씨를 CTO로 영입한 윌라(오디오북 구독 서비스), 아마존·웨이브 출신의 조휘열 CTO를 영입한 워시스왓(모바일 세탁 서비스), 리디 출신 김남수 CTO를 영입한 글램(라이브 데이팅 서비스 앱)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선 CTO 인재 영입 전쟁이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고도화가 필수인 상황에서 한국의 인재 풀이 협소해 C레벨급 기술 리더 인재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삼정KPMG는 ‘KPMG CIO 보고서’에서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황에서 기술 리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기술 부서의 영향력이 축소된 것과 대비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의 위기 상황은 기술 리더의 영향력 증가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탁월한 기술 리더는 이러한 기회를 잘 포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인식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IBM기업가치연구소가 글로벌 50개국 3000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21 CEO 스터디’에 따르면 CEO의 57%는 조직에 영향을 미칠 가장 중대한 동인으로 ‘기술’을 선택했다. 한국 CEO의 경우 ‘규제’ 문제가 70%로 가장 많은 응답을 차지했고 기술이 66%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 연구소는 글로벌 고성과 기업의 핵심 강점에 리더십과 기술을 통한 차별화 등이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2~3년 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최고경영진(C레벨)이 누구냐는 대답도 흥미롭다. 글로벌 CEO의 56%는 CTO와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기술 리더를 선택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이은 2위다. 한국 CEO들은 최고운영책임자(COO, 77%)와 CFO(62%)에 이은 3위로 CTO(27%)를 선택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