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밀러 의자로 유혹하는 SK하이닉스
네카라·몰두센 등 신흥 경쟁자 등장도 부담
주요 반도체·정보기술(IT)업계의 올해 연봉 인상률이다. 유능한 인재를 붙잡아 두기 위해 업계가 파격적인 연봉 인상에 나서는 가운데 재계의 맏형 삼성전자가 아직 올해 연봉 인상률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진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경쟁 업체보다 1.5배가량 높은 연봉을 유지하며 핵심 인재의 이탈을 방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경쟁사들이 삼성전자 연봉 인상률을 추월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됐다.
빅테크의 대표 주자인 카카오 임직원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전년보다 59.3% 늘어난 1인당 평균 1억7200만원으로, 1억4400만원인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삼성 직원들은 경쟁사들의 파격 대우에 못 미치는 연봉 인상률과 처우에 “삼성은 간판만 보고 다니는 회사가 됐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연봉과 복지에서 삼성전자를 빠르게 추월하고 있다. 입사 4년 차 직원이 이석희 대표와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e일을 보내면서 갈등을 겪었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 전년의 2배 수준인 평균 8%를 인상해 인상률로 삼성전자(7.5%)를 추월했다.
신입 사원의 초봉도 기존 4000만원대에서 5040만원으로 올려 약 4800만원인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복지 수준도 대폭 개선했다. 최근 출범 10주년을 맞아 200% 특별 축하금 지급과 함께 해피 프라이데이(쉬는 금요일)를 시행했고 가격이 200만원이 넘어 ‘사무용 의자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허먼밀러 의자로 교체해 주기로 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전문 업체 DB하이텍도 올해 신입 사원의 초임을 14.3% 인상해 삼성전자와 동급으로 맞췄다. 동종 업계뿐만 아니라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몰두센(몰로코·두나무·센드버드)으로 불리는 IT 기업들이 개발자 직군에 파격적인 연봉 정책을 제시하면서 인재 전쟁은 더 치열해졌다. 인재 쟁탈전의 한가운데 선 삼성전자는 아직 올해 인상률을 정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매년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인상률을 결정해 왔지만 노동자 위원 측이 올해 기본 인상률을 역대 최고 수준인 15.72%로 요구해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는 지난해 협의회가 합의한 기본 인상률 4.5%(성과 인상률 3.0% 포함 시 7.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와 함께 노조도 별도의 임금 교섭을 요구하고 있어 ‘노조 리스크’도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노사협의회·노조 등 2곳과 임금 교섭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사무직노조·전국삼성전자노조 등 4개 노조는 공동교섭단을 꾸려 2021년도 임금 복지 교섭 요구안 44개 중 투명한 급여 체계 도입과 휴식권 보장 등 2가지를 핵심 안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올해 3월 18일 경계현 사장(DS부문장)까지 직접 나서 노조 대표단과 대화에 나섰지만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 공동교섭단은 지난해 10월부터 이어 온 임금 교섭이 지지부진해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자택 앞 시위를 이어 가는 중이다. 노조는 파업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연봉 인상으로 핵심 인재 이탈을 일부 막을 수 있지만 과도한 인상은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해 임직원의 평균 연봉 1, 4위를 기록한 카카오와 네이버는 인건비 상승 등의 영향으로 영업이익률이 하락했다.
인공지능(AI)과 전장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서 대규모 인수·합병(M&A)을 검토 중인 삼성의 올해 임금 협상이 유난히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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