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국 경제성장률 2.5%로 낮춰…“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에 동시에 대처하는 진퇴양난 겪을 것”

 서울 서초구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계산대에서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계산대에서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현상) 경고등이 켜졌다. ‘우려’를 넘어 ‘초입’이라는 진단까지 나온다. 금리·물가·환율이 일제히 오르는 ‘3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를 고도 성장기로 이끈 3저 호황의 완벽한 반대 국면인 셈이다.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지선인 달러당 1250원을 뚫었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빅 스텝(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압박이 커졌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반대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면 기업의 투자가 줄어들면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이는 다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20년부터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가파르게 인하해 유동성을 확대하면서 물가 상승을 촉발한 만큼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잡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성장률 2.5%, 물가 상승률은 4%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켜진 한국 경제…금리·물가·환율 3高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2.5%인데 소비자 물가 상승 전망률은 4%다. 경제성장률 하락은 경기가 둔화한다는 말과 같다.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는 현상을 ‘경기 침체’라고 부르는 이유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이유는 투자와 소비 부진 때문이다. 1분기 한국 경제는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작년 4분기 성장률 1.2%에 못 미쳤다. 1분기 수출을 제외하고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 건설 투자가 모두 감소한 영향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낮아지고 있다. IMF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5%로 내렸다. 아시아 지역 국가 중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8개국 가운데 홍콩(0.7%)과 일본(2.4%)을 제외하면 가장 낮다. IMF는 아시아 지역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앤마리 굴드울프 IMF 아시아태평양국장 대행은 “아시아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에 동시에 대처하는 진퇴양난을 겪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 내 인플레이션 전개 상황과 외부 압력에 속도를 맞춰 긴축 통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高 현상, 기업 투자 둔화와 가계 소비 위축 촉발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켜진 한국 경제…금리·물가·환율 3高
고환율·고유가·고금리는 기업의 투자 둔화와 가계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환율이 오르면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기업의 외화 부채 부담이 커진다. 물론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는 있다.

4월 28일 환율은 2년만에 달러당 1270원 선을 넘어서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 급등은 미국이 고강도 긴축 정책을 예고하면서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고 미국 증시가 급락하자 코스피도 출렁였다. 1월 3일 2988이었던 코스피지수는 4월 27일 장 초반 2610선까지 떨어졌다. 유가증권시장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고 코스닥지수는 900이 붕괴됐다.

시장 전문가들은 경기 둔화 우려가 확산되면서 증시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코스피는 올해 하반기에 240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변준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장·단기 금리 역전 후 1년 내 증시 최대 하락 폭은 대략 평균 11%로 나타났고 이를 코스피에 적용하면 2400 수준”이라며 하반기 코스피 등락 범위를 2400~2850으로 제시했다. 주가 하락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주가가 올라 차익을 실현하지 않아도 소비가 늘어나는 부의 효과는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유가와 원자재 값이 급등했다. 유가와 원자재 값이 오르면 원재료를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한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하면 가격 부담 증가로 제품 값이 올라가며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올해 들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4% 정도 뛰었고 브렌트유는 32% 정도 올랐다. 4월 26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물 미국 WTI는 전 거래일 대비 배럴당 101.70달러에 마감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물 브렌트유는 배럴당 104.9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유가가 급등하면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소비자 물가는 오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연평균 100달러에 달하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둔화하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1%포인트 상승하며 경상 수지는 300억 달러 이상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의 수익성도 악화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연평균 100달러에 달하면 산업별로 높게는 23.5%(정유)에서 낮게는 약 0.3%(반도체) 정도의 원가 상승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국은행, “성장보다 물가 안정 급선무”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켜진 한국 경제…금리·물가·환율 3高
경제 둔화 신호가 뚜렷한 와중에 소비자 물가는 치솟고 있다. 지난 3월 한국 소비자 물가는 10년 만에 4%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 유가뿐만 아니라 곡물가가 급등하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어진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더 악화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물가가 치솟았다.

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1%를 차지하는 세계 3위 산유국이다. 여기에 유럽 천연가스 수입량의 40%는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만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에너지 가격을 뒤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중간재 공급처인 중국의 도시 봉쇄는 물가 상승 요인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물가가 오르자 금리도 올랐다. 물가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통화 정책이 곧 금리 인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4월 기준금리를 연 1.50%로 인상했다. 현행 금리 수준은 2017년 11월과 같은 수준으로,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났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경기 둔화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Fed 역시 강한 긴축을 예고하며 경제 성장보다 물가 안정을 택했다.

통화 정책 수장인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는 취임 후 첫 기자 간담회에서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모두 우려되지만 지금까지는 물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5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결정을 기반으로 자본 유출이나 환율의 움직임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단기간 급격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며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장기적으로 성장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5%인 상황에서 ‘경기 침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경기 하방 압력과 물가 상승 압력이 동시에 커지면서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특히 고령화 등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령화에 따라 부양 부담이 커지고 경제 역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단기적인 이슈와 구조적 변화가 맞물리는 2022년과 2023년에 스태그플레이션을 방어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거시경제 환경의 구조적 변화 생산, 고용, 물가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보고서에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장 교수는 한국의 소비자 물가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집값 등 주거비가 반영돼 있지 않은데 이를 반영한 체감 물가는 더 심각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을 통한 통화 긴축 정책이 적절하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미국을 덮쳤을 때 폴 볼커 전 미국 Fed 의장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이 30년 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며 “폴 볼커의 사례처럼 한국은행도 물가를 걱정하며 속도감 있게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