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콜마 세종 공장 르포…스마트 공장 전환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최적화
[비즈니스 포커스] 한국 화장품 시장에서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콜마는 2019년 8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종합기술원의 문을 열었다. 이곳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연구 인력을 모았다. 화장품·제약·건강기능식품 등 3가지 분야의 기술들을 조합하며 기술력의 융합을 이끌기 위해서였다.화장품 산업에서 연구가 씨를 뿌리는 것이라면 이를 꽃으로 피워 내는 역할은 생산 기지가 도맡는다. 기술력을 한곳에 집결하는 동안 한국콜마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세종 공장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최근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제조 기지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을 도입하며 ‘스마트 공장’으로 변신 중이다. 한국콜마 세종 공장 역시 2019년부터 스마트 공장 전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700여 개 고객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고객사의 어떠한 요구에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산 기지를 구축하는 것이 스마트 공장 전환의 최종 목표다.
‘노 마스크’ 기대로 들썩이는 화장품 생산 기지
한경비즈니스가 세종시 전의면에 있는 한국콜마 세종 공장을 찾은 4월 29일은 마침 정부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조치를 해제할 것을 발표한 날이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지 566일 만의 일이다.
물론 야외에서도 50인 이상이 모인 곳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하고 실내 규제는 여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스크 프리’는 아니다. 하지만 규제가 다소 풀어진 만큼 화장품업계는 앞으로의 매출 증가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의 제조를 도맡는 ODM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자인 한국콜마는 최근 기대감에 부푼 화장품업계의 동향을 제일 먼저 실감하는 곳이다. 한국콜마 공정기술혁신팀 구준영 파트장은 “올해는 ‘노 마스크’도 기대되는 만큼 지난해 말부터 수주량이 급격히 늘었고 연초부터는 더더욱 수주량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콜마 세종 공장은 2021년 기준 6000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2021년 제조된 제품만 2만800톤, 포장된 양만 4억5000만 개에 이른다.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토너·로션·크림·에센스·클렌징 등 스킨 케어 제품이다. 또 팩·마스크·헤어 보디 케어·비비크림·파운데이션 등도 제조한다.
수많은 고객사들의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운영하는 생산 라인의 수도 많고 제품의 수는 더더욱 어마어마하다. 시설이 방대하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한눈에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생산이 종료된 후 불량 제품이 생긴 것이 확인된다면 이미 많은 비용이 발생한 시점이다.
한국콜마의 스마트 공장 전환의 첫 단계는 불량 발생률의 최소화, 혹은 사전에 불량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2019년 스마트 공장 전환을 위해 고민하던 한국콜마는 첫걸음으로 기존에 보유하던 모든 데이터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국 최초의 ODM 사업자로서 그간 축적해 온 수많은 데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세종 공장의 생산 라인을 둘러볼 수 있는 시설 앞에는 큰 모니터가 있다. 이 모니터를 통해 임직원들은 실시간 제품 생산 현황과 설비 가동 상태, 설비 담당자 등 현재 공장의 생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이미 제조 시설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모니터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콜마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LMS 프로그램’이다. LMS(Line Monitoring Systems, MES 프로그램의 일부)는 한국콜마가 도입한 제조 실행 시스템(MES) 프로그램으로 생산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다.
LMS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수집한 데이터들은 제조 탱크 내부의 온도, 압력, 작동 rpm, 작업 시간 등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내·외부 요소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들을 LMS 프로그램에 자동으로 그래핑(graphing)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완료했다.
LMS 프로그램을 통해 공장 관리자는 물론 사무실 내부에서도 공정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정 작업 중에 어느 한 부분의 온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이에 대해 의문점을 가진 공정 관리자는 당장 그래프화된 데이터를 통해 ‘온도가 솟구친 부분이 A 공정이고 이때 온도는 섭씨 영상 80도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즉시 시정하면 된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간을 크게 단축했다는 점에서 LMS 프로그램은 스마트 공장 전환의 ‘두뇌’ 역할을 톡톡히 수행 중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AI 구축 사업 등 스마트 공장을 위해 진행한 결과물이 LMS 프로그램에 적용됐다”며 “언제 어디서든 생산 과정을 점검하고 전체 생산 프로세스를 한눈에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일한 품질 유지해야
몇 년 사이 제조업 기지들은 ‘스마트 공장’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실행 중이다. 하지만 스마트 공장으로의 전환은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같더라도 산업군의 특징에 따라 각자 다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한국콜마는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를 이끄는 뷰티 기업이자 고객사의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기업이다. 이에 따라 한국콜마는 철저한 고객 중심주의를 구현해 내는 것을 스마트 공장 전환의 둘째 목표로 삼았다.
사람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화장품 제조 과정은 공정이 까다로워 100% 자동화는 사실 어렵다. 작업자의 개입이 중간중간 필요하기 때문에 얼마나 숙련된 작업자가 공정 과정에 투입되느냐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러한 화장품 제조 공정의 특징을 반영해 한국콜마는 어떤 작업자가 투입되더라도 표준 공정을 준수할 수 있는 제조 공정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궁극적 목표는 어떤 작업자가 어떤 설비에서 제조를 진행하건 소비자에게 엄격한 품질 관리와 높은 공정 준수율을 거친 최상의 제품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한국콜마 세종 공장의 스마트 공장 전환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성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콜마는 AI를 활용한 스마트 공장 전환 이후 제조 불량률이 42% 감소했다고 밝혔다.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불량이 발생하면 폐기해야 하는데 불량률이 낮으면 폐기 과정이 줄어들고 재생산과 재포장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포장 공정에서 폐기율도 84% 급감했다. 포장 공정 폐기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총생산량에서 불량 발생량이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 숫자로 나타나는 것 외에도 한국콜마가 추구한 것은 공정 과정에서 찰나의 지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종 공장은 제품을 생산할 때 원료 입고→칭량 지시→원료 칭량→제조→충진(내용물을 용기에 넣는 작업)→포장→출하의 과정을 거친다. 중간중간에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전체 공정에 차질을 빚게 된다.
칭량은 투입될 화장품 원료의 무게를 재는 것이다. 칭량된 화장품 원료는 보관소를 거쳐 제조 기술팀으로 향한다. 고객사마다 생산하는 제품의 양이 제각각인 만큼 화장품의 원료를 배합하는 제조 탱크도 30리터부터 5톤까지 다양한 규모로 구성돼 있다.
화장품 원료가 배합되는 제조 탱크에는 바코드 리더기가 부착돼 있다. 방진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작업 중간중간에 바코드를 인식하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구준영 파트장은 “바코드는 전체 공정 과정에서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어떤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데이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원료실에서 제조 지시서 바코드를 스캔하면 얼마만큼의 원료를 계량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또 제조 시에는 원료를 넣는 타이밍이 적절한지, 지금 제조 과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도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수작업 박스 포장 대신하는 ‘로봇팔’
제조된 화장품은 케이스에 담기는 진공 포장부터 시작해 제품 상세 정보와 유통 기한을 케이스에 새기고 밀봉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고객사에 따라 프로모션 관련 스티커나 광고 모델의 사진을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과거에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스마트 공장이 이뤄 낸 또 하나의 성과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콜마는 화장품이 용기에 투입된 과정 이후를 전부 자동화로 바꾸는 과정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화장품이 소비자에게 유통되기 전 소비자가 구매하는 최종의 형태로 포장되는 충전 포장실의 규모를 지난해 확장했다.
4월 29일에도 방진복을 착용한 노동자들이 각 라인별로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화장품을 포장하는 작업 중에서 인력이 많이 소모되는 부분은 제품 하나하나를 개별 박스에 담는 일이다. 상자를 펴고 조립한 후 제품을 담고 마지막으로 스티커를 붙이는 데까지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한국콜마 세종 공장에서는 이러한 포장 작업을 기계가 대신해 준다. 기계의 이름은 ‘카토너’다. 제품 하나를 자동으로 접어진 상자 속에 넣으면 상자를 밀봉하는 것까지가 카토너의 몫이다. 사실 카토너라는 기계는 어느 제조업 공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계다. 하지만 고객사의 제품 품목과 발주량에 맞는 카토너를 선정하고 검토하는 게 한국콜마 공정혁신팀의 중요한 과제였다.
공정혁신팀이 주목한 것은 ‘범용성’이었다. 구준영 파트장은 “한국콜마의 수많은 고객사의 다양한 제품들을 모두 생산하기 위해서는 ‘범용성’을 갖춘 카토너 설비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스킨·로션·선크림·에센스 등 제품마다 다양한 크기는 물론 포장 방식에도 고객사마다 차이가 있다. 최대한 많은 제품을 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은 한국콜마의 공장 자동화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카토너를 비롯한 생산 자동화 과정에 쓰이는 설비들이 투입되면서 기존 12명이 필요했던 작업을 5명이 거뜬히 소화할 수 있게 됐다.
세종 공장 외에도 한국콜마는 한국에서 부천 색조화장품 공장, 해외에서는 중국의 무석콜마·북경콜마, 북미 CTP·CSR에서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에 있는 생산 기지에서도 스마트화를 진행 중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타 공장에서도 현재 고도화 사업 진행을 검토 중이고 확장 시 제조 작업자의 원료 투입 준수율, 공정 준수율 등의 수치 또한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화장품 안전성’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세종 공장
세종 공장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2020년 2월 품질 분야에서 ‘한국인정기구(KOLAS)’ 인정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KOLAS 인정을 통해 한국콜마는 화장품 유해 물질(중금속)·미생물 분야의 6개 항목에 대해 공인 시험 성적을 자체적으로 발급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국콜마에서 생산되는 화장품이 ‘안전하다’는 것을 한국콜마가 자체적으로 검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KOLAS의 국제 공인 시험 기관 인정 제도는 국제표준관련 법 등에 의거해 시험 기관의 품질 경영 시스템, 기술 능력을 종합 평가해 국제적 수준의 시험 능력이 있는 기관임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제도다. 성적서는 국제시험기관인정협력체(ILAC)에 가입한 104개국 105개 인정 기구와 아시아·태평양인정협력체(APAC)에 가입한 28개국 46개 인정기구에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콜마는 KOLAS 공인 시험 기관 인정 획득을 목표로 팀을 꾸려 약 2년간 필요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KOLAS 인정 과정 중 국제 비교 숙련도 시험에서 상위 클래스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는 등 우수한 결과로 KOLAS 인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KOLAS 인정으로 국제적 공신력이 더해져 해외 마케팅에도 유리하다”면서 “해외 기관에 화장품의 시험을 맡겨 여러 번 시험을 치르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의 위험을 줄이고 수출 과정의 소요 시간을 절약해 제품 생산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체계적인 사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인정을 유지한다. 향후 4년마다 인정을 갱신해 한국콜마의 국제적 수준의 품질력을 지속적으로 입증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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