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미지는 경영 메시지, 새로운 전략·조직 문화에 맞춰 패션·스타일도 변화

[비즈니스 포커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그룹 제공
최고경영자(CEO)들이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CEO들의 프로필 사진도 기존 슈트 차림의 정형화한 모습에서 탈피해 노타이·노재킷·청바지 등 캐주얼 차림으로 바뀌고 있다.

신사업 추진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대 등 새로운 경영 전략과 조직 문화 변화에 발맞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CEO 브랜드 강화를 위한 최고경영자 이미지(PI : President Identity)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LAB&PSPA 대표는 “패션과 스타일을 통한 CEO 이미지는 강력한 경영 메시지”라며 “CEO 이미지 변화는 기업 정책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함축적 경영 메시지와 다름없고 기업의 전략적인 방향 전환을 알려주는 브리핑과 흡사하다”고 분석했다.

기업을 이끄는 CEO의 이미지는 개인의 이미지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조직·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평판을 좌우하고 주식 가치 등 기업의 가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 이미지가 CI라면 CEO의 이미지는 PI다. 각 기업 CEO 패션과 스타일은 임직원들에게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52)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10월 회장 취임 이후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변화를 주는 메시지로 캐주얼을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슈트 차림에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을 활용했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노타이 차림으로 높은 곳을 바라보는 프로필 사진을 쓰고 있다.

박영실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가능성을 고객의 일상으로 실현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밝힌 만큼 사진 속 정 회장의 시선과 표정이 마치 고객을 올려다보는 것 같고 부드럽지만 결의에 차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전통 자동차 제조업을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는 전기차 대중화에 대비해 “내연기관차 시대에는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모든 업체가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며 “경쟁 업체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성능과 가치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기차 글로벌 판매에서 눈에 띄는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25만2719대를 판매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에서 5위권 내에 진입했다. 올해도 1분기 친환경차 수출이 처음으로 10만 대를 넘어 큰 폭의 증가세가 예상된다.
구광모 LG 회장.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 회장.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 LG 회장

구광모(44) LG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는 남청색 계열의 슈트 차림을 선호하지만 그룹 행사에서는 넥타이 없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신년사 영상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창업자들을 연상하게 하는 깔끔한 남청색 라운드 칼라 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었다.

박 대표는 “화이트 셔츠와 블랙 라운드 니트를 대비 매치하고 소매를 걷어올림으로써 역동적인 리더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구 회장은 40대인 만큼 젊은 이미지보다 성숙한 리더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올해 3월 정기 주주 총회에서 사업 포트폴리오의 질적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겠다며 인공지능(AI), 지속 가능성, 헬스케어 등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힘을 싣겠다고 밝혔다.

젊은 총수 체제에서 LG그룹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택과 집중으로 스마트폰·태양광 등 돈 안 되는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미래 먹거리인 AI와 미래차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

정태영(62) 현대카드·현대커머셜 부회장은 재계에서 패션 감각이 뛰어난 CEO로 꼽힌다. 최근에는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다. IT업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캐주얼 차림으로 이미지 변신을 한 이유는 올해 현대카드의 경영 전략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 세로형 카드 출시 등 업계의 혁신을 주도해 온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를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카드는 올해 5월부터 금융권 최초로 상시 재택근무 체제를 도입했다.

그동안 쌓아 온 AI와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기반으로 카드 회사를 넘어 금융 테크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빅테크 기업들처럼 근무 환경 변화를 통해 혁신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현대카드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시도도 다른 기업들보다 앞섰다. 2014년 점심 식사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플렉스 런치, 2017년 유연 근무제로 불리는 플렉스 타임 등을 업계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권영수(65)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올해 초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 로퍼 차림의 새로운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다. 40대 젊은 총수 구광모 회장 시대를 맞아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이미지 변신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 혁신에도 힘을 쏟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역동적인 기업 문화 구축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업에서 대세로 부상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들과의 소통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권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울·대전 사업장의 MZ세대 직원들로 구성된 주니어보드를 직접 만난 것이다.

주니어보드 간담회에서 나온 “CEO 직접 소통 창구 만들어 달라”는 의견을 반영해 CEO와 직원 간 직통 채널인 ‘엔톡’이 만들어졌다. 엔톡을 통해 LG에너지솔루션의 전 세계 임직원 2만4000여 명은 언제든지 권 부회장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

CEO에게 궁금한 점, 건의 사항, 아이디어 등을 직접 쓸 수 있고 그에 대한 CEO의 답변 댓글도 받을 수 있다. 개설 첫 달인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제안은 240여 건에 이른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사진=신한카드 제공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사진=신한카드 제공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임영진(62) 신한카드 사장도 최근 공식 프로필 사진을 캐주얼 차림으로 바꿨다. 임 사장은 “데이터와 디지털은 고객의 마음을 향해야 하고 더 쉽고 새로운 금융 경험을 선사하는 딥테크(deep-tech)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표로 신한카드의 디지털 전환에 고삐를 죄고 있다.

임 사장은 디지털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위해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디지털 사업을 담당하는 그룹을 중심으로 애자일 조직 문화를 구축해 성과를 내고 있다. 임 사장은 지난해 모든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해 사내에서 ‘임영진 님’으로 불린다.

박 대표는 “임영진 사장은 사진에서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며 “앞머리를 정갈하게 넘기고 화이트 셔츠에 브라운 라운드 니트를 매치하면서 편안해 보이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CEO 이미지는 중요한 경영 전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캐주얼에서 주의할 점도 있다. 박 대표는 “시간·장소·상황(TPO)을 고려하고 전체 색상이 최대 4가지가 넘지 않도록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신체 치수를 정확하게 알고 잘 맞는 의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