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대작에 영화시장 부활 기대하지만...OTT의 장벽 넘을지는 미지수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극장가는 모처럼 북적였다.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영화관의 풍경의 원인으로는 기대작의 개봉과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제를 꼽을 수 있다. 어린이날 하루 전날인 5월 4일 마블의 대작인 ‘닥터 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개봉됐다. 또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제로 4월 말부터 영화관 내 취식이 가능해졌다.어린이날 전국에서 총 1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극장을 찾았다. 지난해 어린이날과 비교하면 300% 증가한 100만여 명 더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은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많은 관객 수이기도 하다.
마동석부터 박찬욱까지 줄줄이 개봉될 대작
취식이 허용되면서 극장 매점도 오랜만에 웃음 지었다. CGV에 따르면 4월 25일 상영관 내 취식이 허용된 후 4월 25일부터 5월 5일 동안 극장 매점의 매출은 4월 11~21일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극장을 방문한 관람객 10명 중 7명이 팝콘을 구매했다고 CGV 측은 밝혔다.
어린이날부터 시작된 흥행 열풍은 5월 둘째 주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2’는 5월 10일 기준 38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4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모처럼 등장한 흥행작을 계기로 그간 개봉을 미뤘던 영화들도 개봉 일정을 다시 논의하고 있다. 이미 개봉일을 확정 지은 영화들도 있다. 5월 18일에는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2’가 개봉된다. 칸 국제 영화제 출품작이자 송강호·강동원 주연의 ‘브로커’는 6월 8일 관객을 받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6월 29일, 박훈정 감독의 ‘마녀2’는 6월 16일 선보인다.
한동안 극장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대작들 또한 개봉을 앞두고 있다. 7월에는 김한민 감독의 ‘한산 : 용의 출현’이 개봉을 확정했고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도 여름 개봉을 확정했다. CGV 관계자는 “기대작들의 개봉은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와 침체된 영화 산업의 회복은 물론 영화 생태계 선순환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멀티플렉스 3사는 5월부터 점진적인 영업 정상화를 조심스레 예상하고 있다. 올 초부터 영업 정상화를 기대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그 시기가 늦춰졌다. 하지만 엔데믹(주기적 유행)의 전환과 할리우드 대작들의 개봉으로 하반기부터 ‘턴어라운드’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그간 변해버린 소비자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감염병에 대한 우려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중 이용 시설인 극장 대신 공간의 제약 없이 홀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급부상했다. 그간 한국인들의 대표적 취미였던 영화 관람 대신 새로운 여가 생활을 찾은 사람들도 늘어났다.
NH투자증권은 코로나19 사태가 가속화한 OTT의 상용화로 신작의 홀드백(개봉 이후 타 매체에 풀리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기존의 20~50%로 단축됐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신작을 최소 90일을 기다려야 안방에서 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45일 정도만 기다리면 OTT를 통해 해당 작품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들은 홀드백 없이 OTT로 직행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영업 정상화가 궤도에 오르더라도 극장의 관람객 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비 80%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영화 산업계는 지금의 흥행을 지렛대 삼아 완연하게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간 영화 산업계는 여행이나 레저 등 다른 엔데믹 업종들보다 회복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기대가 현실이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정인숙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영화 산업은 OTT라는 플랫폼이 등장해 구조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코로나19 사태로 받은 타격을 회복하는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변한 것은 한국 영화 시장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영화의 주요 관객이었던 중·장년층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장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다만 미국보다 한국의 위기감이 더해 보인다. OTT로 인해 유료 방송 영화 시장의 수익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정인숙 교수는 “미국 영화 산업도 OTT에 타격을 입었지만 유료 방송 시장은 유지가 된 반면 한국은 케이블이나 IPTV 등 유료 방송을 통해 발생하던 수익 역시 OTT가 모두 가져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넷플릭스 주춤하지만 여전한 경쟁자
이렇게 영화의 영역을 침범해 ‘승승장구’하던 OTT업계가 최근 심상치 않다. 대표 주자인 넷플릭스 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넷플릭스는 4월 20일 1분기 유료 회원이 지난해 4분기에 비해 20만 명 줄어든 2억216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유료 회원이 감소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넷플릭스가 러시아 현지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70만 명의 가입자를 잃었다. 여기에 월 구독료 인상으로 북미 가입자 64만 명이 이탈했다.
구독자의 이탈은 일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엔데믹으로의 전환을 앞둔 시점에서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OTT 업종 전체의 침체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속단은 이르다. 그간 OTT 시장에는 HBO맥스·디즈니플러스·애플TV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했다. 정인숙 교수는 “OTT는 구독형 모델이 커지느냐 혹은 무료 모델이 커지느냐는 갈림길에 놓였다”며 “시장 전체는 성장하지만 최근 OTT가 다양해진 만큼 ‘옥석 가리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OTT는 극장의 강력한 경쟁자다. 대척만을 고집할 수 없는 멀티플렉스는 OTT와 다양한 협력을 꾀하고 있다. 영화 ‘서복’은 극장과 OTT 티빙에 동시 개봉하는 전략을 택했다. CGV는 넷플릭스와 지난해 9월 ‘승리호’ 등 7편의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하는 ‘NETFIC(NETFLIX IN CGV)’ 특별전을 진행했다. 같은 해 10월 ‘돈 룩 업’ 등 6편의 넷플릭스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해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였다. 대체재로 인식됐던 OTT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극장과 공생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게 영화업계의 바람이기도 하다.
콘텐츠 기업이었던 디즈니가 OTT를 시작한 것처럼 한국의 영화사들도 OTT 시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 교수는 “지금은 콘텐츠만 생산해서는 수익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OTT의 등장으로 콘텐츠 시장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극장 사업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플랫폼과의 제휴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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