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 호텔, 하늘길 막히자 내수에 집중…신라호텔 예약률 전년 대비 40%↑

[스페셜 리포트]
웨스틴 조선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이며 객실 점유율을 끌러올릴 수 있었다.  사진=웨스틴 조선 제공
웨스틴 조선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이며 객실 점유율을 끌러올릴 수 있었다. 사진=웨스틴 조선 제공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는 웨스틴 조선 호텔 서울(이하 웨스틴 조선)은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인 투숙객의 비율이 90%에 육박했다. 비즈니스나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웨스틴 조선은 2020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발생과 동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외국인 관광객 수요는 사실상 ‘0’이 됐고 호텔은 텅 비기 일쑤였다.

하지만 서서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처음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과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며 “그 결과 해외 관광객들의 빈자리를 내국인들이 대신 채워 줬고 객실 예약률을 점차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웨스틴 조선에 따르면 가정의 달인 5월 호텔의 객실 예약률은 80%(5월 5일부터 8일까지)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시내의 주요 특급 호텔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올해 들어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기 위한 손님들로 연일 북적이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은 5월 기준으로 객실 예약률이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압구정에 있는 안다즈 호텔 관계자도 “4월부터 5월까지 매 주말마다 만실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합리적 가격으로 문턱 낮춘 특급 호텔호텔들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다양한 전략을 앞세워 호캉스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된 비결로 마케팅 전략의 선회가 꼽힌다.

이전까지 특급 호텔들은 콧대가 높기로 유명했다. 손님을 받지 못할지언정 가격을 낮추는 일은 없었다. 객실 단가를 낮추면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에 금이 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특급 호텔들의 주요 타깃이 비즈니스나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어서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모션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늘길이 막히면서 이 같은 호텔들의 전략이 빠르게 변화했다. 해외 관광객이 끊기다 보니 자연히 내수 고객으로 타깃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러 특급 호텔들이 ‘야놀자’나 ‘여기어때’ 같은 토종 온라인 여행사(OTA) 애플리케이션에 합리적인 가격에 패키지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하며 ‘내국인 마케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이유다. 그리고 이런 행보는 비싼 가격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았던 특급 호텔의 문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요 호텔들은 해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려 왔다”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이런 추세가 변했다. 해외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호텔들 또한 생존을 위해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보다 낮은 가격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객실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이것이 호캉스 열풍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에는 ‘키캉스(키즈+호캉스)’, ‘패캉스(패밀리+호캉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가족 단위의 고객들이 호텔에 몰린다. 또 젊은층 사이에서는 생일 파티나 브라이덜 샤워 등을 위해 호텔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됐다. 호텔의 주요 고객이 과거 여행객·비즈니스맨에서 가족·친구·연인·동료 등으로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기간 중 일부 호텔은 호텔을 이용한 재택근무 패키지를 선보여 직장인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가족 수요를 잡기 위해 대대적인 변신을 감행한 곳도 있다. 롯데호텔이 주인공이다. 롯데호텔은 5월 1일부터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호텔 월드 저층부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다시 오픈했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통해 롯데호텔 월드는 ‘가족 친화형 호텔’로 새롭게 태어났다. 가족 단위 고객의 수요를 끌어안기 위해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 룸을 기존 30실에서 52실로 대폭 확대한 점이 눈에 띈다.
일상이 된 ‘호캉스’…키캉스·패캉스 까지
기존 상층부에 선보인 브레드이발소 룸(22실)에 이어 로티로리 룸(10실), 카카오프렌즈 룸(20실) 등을 새롭게 추가했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어린이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새로운 숙박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이같이 객실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신라호텔도 4~6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위트 리틀 키즈’ 패키지를 선보였다. 아이들이 셰프 복장과 모자를 착용하고 ‘키즈 베이킹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는 상품이다. 직접 케이크 또는 쿠키를 데커레이션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신라호텔의 파티셰가 만든 케이크 시트와 쿠키도 맛볼 수 있게 제공해 가족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색적인 아이디어로 고객 사로잡기에 나선 호텔도 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프로야구 시즌을 맞아 LG트윈스와 함께 ‘무적LG 야구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호캉스와 잠실야구장 LG트윈스 홈 경기 직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패키지다.

주니어 스위트 객실에 숙박하는 이들에게는 LG트윈스 선수 친필 사인볼을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혜택도 마련했다.

객실의 목적을 ‘일상’에 맞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나선 호텔들도 있어 눈길을 끈다. 주로 오피스 상권에 자리하며 ‘가성비’를 앞세워 왔던 비즈니스 호텔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대표적 비즈니스 호텔인 이비스 앰배서더는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서울 곳곳에 있는 점포들에서 ‘한 달 살기’ 상품을 판매 중이다.

이 호텔 관계자는 “단기 또는 장기 투숙을 원하는 내국인의 수요층을 타기팅해 상품을 내놓았는데 한국 호텔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이를 통해 호텔 객실 영업 지표인 레파(Rev-Par : 객실당 평균 수익)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50% 정도 높아졌다”고 밝혔다.
비즈니스 호텔인 이비스 앰배서더는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한 달 살기와 같은 상품을 판매해 효과를 거뒀다.  사진=이비스 앰배서더 제공
비즈니스 호텔인 이비스 앰배서더는 공실률을 낮추기 위해 한 달 살기와 같은 상품을 판매해 효과를 거뒀다. 사진=이비스 앰배서더 제공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들의 인식이 전환되면서 향후에도 호캉스 열풍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호텔 관계자는 “‘플렉스(FLEX)’와 ‘욜로(YOLO)’ 등 소비 트렌드가 겹치면서 호텔이 더 이상 특별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이제 호텔은 다양한 소비층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화된 프리미엄’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아직까지 코로나19 사태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견해도 나온다.

한진수 교수는 “아무리 호캉스가 열풍이라고 하더라도 한정된 내수만으로는 호텔들이 성장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여행이 정상화돼야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도 다시 늘어나고 호텔들의 실적도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