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쉴더스·원스토어·태림페이퍼 등 5월에만 4개사 상장 철회…옥석 가리기 본격화

[비즈니스 포커스]
1분기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12조7000억원의 공모 금액을 모집했다. 이는 1분기 공모 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분기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12조7000억원의 공모 금액을 모집했다. 이는 1분기 공모 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오늘 공모주 ㄱㄱ. 치킨 값 벌자.’
지난해 최지혜(33) 씨 고등학교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 주제는 ‘공모주’였다. 예·적금으로 재테크를 하던 최 씨는 친구가 공모주로 큰돈을 벌었다는 소식에 그날 주식 시장에 발을 들였다. 친구들의 일상 주제는 그달의 공모주 일정으로 자연스레 흘렀다.

#. ‘공모주 퍼펙트 투자 전략’, ‘박 회계사처럼 공모주 투자하기’….
지난 2년 서점가엔 공모주 투자 관련 책이 쏟아졌다. 경제·경영 베스트셀러는 공모주 관련 서적이 휩쓸었고 너도나도 공모주 투자에 열을 올렸다. 그야말로 공모주 광풍이었다.

2022년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최 씨의 친구들 채팅방에서 주식은 ‘금기어’가 됐다. 최 씨는 “대화창 상단에 ‘잊고 사는 사람 왜 흔들어요’를 공지로 해놓았다”며 “공모주는커녕 주식 이야기만 하면 분위기가 침울해져 일절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점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대형 서점의 온라인 코너에선 ‘이달의 도서’나 ‘추천 도서’에 공모주 관련 책을 찾아볼 수 없다.

‘잊고 사는 사람 왜 흔들어…’

따스한 5월이지만 공모주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는 증권사도,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도 한숨만 쉬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IPO 할 때 시장 상황이 흥행의 변수로 작용하다 보니 최근 기업금융(IB) 부문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 풀릴지 알 수 없는 시장의 불안정한 상황에 IPO 대어들은 줄줄이 상장을 취소하거나 연기를 택했다. 이달에만 5월 6일 SK쉴더스를 시작으로 원스토어·태림페이퍼가 상장을 철회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해 공모주의 활황에 흥행을 기대했던 IPO업계는 갑작스러운 혹한기 대비에 분주하기만 하다.
서점에 ‘공모주’ 책이 사라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1분기 IPO 기업 수는 23개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1% 감소했다. 다만 공모 금액은 13조2000억원으로 372.5% 늘었다. IPO 기업 수는 감소했지만 공모 금액이 지난해보다 급증한 이유는 1분기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이 12조7000억원의 공모 금액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1분기 공모 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1분기 수요 예측 평균 경쟁률은 876 대 1로 지난해 평균 경쟁률인 1154 대 1을 밑돌며 기관투자가들의 심리 위축을 반영했다. IPO 종목들의 공모가 대비 시가 상승률 평균도 2021년의 54 .4%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43.9%를 기록하며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년간 타올랐던 IPO 시장 과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주식 시장의 불안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 역사상 최초로 3000선을 돌파했던 코스피는 올해 들어 12% 이상 빠지며 2500선까지 밀렸다. 지난해 7월 3305선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코스피는 1년도 채 안 된 5월 18일 2596.58까지 내려왔다.

주가가 급락하면 청약 경쟁률이 높게 나온다고 하더라도 실제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발행사는 IPO를 통해 목표로 했던 자금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시황이 곧 흥행과 연결된다.

작년 이후 상장한 기업들 중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IPO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공모주들이 이례적인 수익률을 올렸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상장한 지 6개월이 지난 35개 기업들의 6개월 평균 수익률은 4.0%에 그쳤다. 이들 중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이 17개로 절반에 달한다.

IPO를 준비 중인 기업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지난 2년간 주식 시장의 상승세를 염두에 두고 IPO를 결정했지만 실제 상장 시기에는 약세장에 접어들면서 계획을 전면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등 수정에 나선 것이다.

대표적인 기업이 SK쉴더스다. SK쉴더스는 5월 6일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회사 측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 예측을 실시했지만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 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했다”고 IPO 철회 사유를 밝혔다. 이 회사는 5월 3~4일 수요 예측을 진행했지만 경쟁률이 100 대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1분기 수요 예측 평균 경쟁률이 876 대 1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부진이다.

SK쉴더스의 뒤를 이어 5월에만 상장 철회가 줄줄이 이어졌다. 태림페이퍼(11일), 원스토어(11일), 온코크로스(13일) 등 IPO 예정 기업들이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 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 ‘최근 주식시장 급락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하여’다. 특히 원스토어는 상장 이틀 전 최고경영자가 나서 “상장 철회는 없다”고 단언했지만 기대치보다 낮은 수요 예측 경쟁률과 참여 기관의 희망 공모 가격에 상장 계획을 접어야만 했다.

당초 전문가들은 1분기보다 2분기에 공모주 ‘투심’이 살아날 것이라고 봤다. 계절적으로 IPO 투자 성과가 좋은 시기라는 점과 1분기 큰 폭의 주식 시장 하락으로 2분기 이후 반등이 예상된다는 점에서다. 기대는 빗나갔다. 대어들의 IPO 소식이 철회됐고 투심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투자자는 물론 주간사 회사와 발행사 모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점에 ‘공모주’ 책이 사라졌다
IPO 병목 해소, 공모가 제자리 잡기

공모가를 놓고도 투자자, 주간사 회사, 발행사 모두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혹자는 지난 2년 새 과도하게 부풀려진 공모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발행 기업들은 IPO 광풍일 때 당시의 기업 주가를 기준으로 하거나 고평가된 가격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증권사의 한 IPO 관계자는 “공모가를 높이려는 발행사와 공모가를 낮추려는 주간사 회사의 주장이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들은 기관투자가들이 공모가를 결정하는 수요 예측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증시가 바닥인 상황에서 기업의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는 이 같은 한파가 하반기에도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SSG닷컴·쏘카·현대오일뱅크·컬리(마켓컬리)·CJ올리브영·교보생명·카카오모빌리티 등 대형 우량 종목들의 상장이 대기하고 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장 계획 기업들이) 작년만큼 높은 밸류에이션에 상장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컬리는 올해 초 상장 예비 심사 청구를 계획했지만 대표 지분율 등과 관련 거래소와 협의가 길어지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이 회사는 3월 28일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 예비 심사 신청서를 제출하며 IPO의 첫 단계를 밟았지만 아직 상장 시점을 잡지 못하고 있다.

SSG닷컴은 IPO 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강희석 SSG닷컴 대표와 임원들은 지난 4월 27일 직원들과 분기마다 진행하는 ‘오픈톡’ 세미나를 통해 상장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장을 주관하는 임원은 이 자리에서 “IPO는 기업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 게 중요한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상장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묘수가 없다. 증권사 IPO 한 관계자는 “공모주 투자는 시장 상황에 좌우된다”며 “하반기 증시가 좋아져도 IPO 시장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의 옥석 가리기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IPO 과열이 증시에 부담을 줬다고?”올해 공모주의 불황은 예견된 것일까. 작년 공모주 청약 시장 과열과 대형 성장 기업들의 기업공개(IPO)로 인해 주식 시장 전반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초대형주들의 공급 증가가 유가증권시장 전반에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상장 대형주들에 수급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4월 빅 IPO가 주식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보고서를 내며 “대형 성장 기업들의 IPO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촉발된 유동성 장세의 끝을 앞당기게 될 것”이라며 “기존 상장 주식들의 수급에 부담이 될 수 있어 주가지수 상승 없는 시가 총액 증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에 따르면 IPO의 증가는 주식 시장 전반에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IPO의 활황은 주식 시장의 과도한 낙관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시장에 주식 공급을 늘려 수급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IPO로 상장 기업 수가 증가하면 해당 섹터의 시총 비율이 갑자기 높아지고 주가의 등락과 무관하게 관련 테마의 시장 비율을 높이게 된다.

박승영 애널리스트는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대형주의 상장에 따른 공급 부담이 있었다”며 “하반기에는 주식 시장 공급 물량 부담이 줄면서 기업들은 IPO를 서두를 필요가 없게 됐고 IPO 병목이 조금씩 해소되면서 공모 시장도 바닥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