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영업익 두 자릿수 증가…기술력 앞세워 필립모리스 제치고 한국 시장 1위

[비즈니스 포커스]
KT&G가 선보인 '릴 하이브리드 1.0'은 디바이스에 액상 카트리 지를 결합해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해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사진=KT&G 제공
KT&G가 선보인 '릴 하이브리드 1.0'은 디바이스에 액상 카트리 지를 결합해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해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사진=KT&G 제공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올해 KT&G의 실적을 바라보는 전망은 밝지 않았다. 흡연 인구 감소가 주된 이유였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 중·후반대를 맴돌던 성인 흡연율은 2015년을 기점으로 20% 초반으로 내려앉았다. 2020년에는 처음으로 20% 아래(19.8%)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도 19.1%를 기록해 계속 하락하고 있다.

담배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KT&G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해 KT&G의 영업이익은 19.8%나 감소했고 2022년에도 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KT&G가 받아든 성적표는 의외였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담배업계의 ‘신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이하 전자담배) 부문에서 선전한 것이 ‘깜짝 실적’을 거둔 배경이다.

KT&G는 한국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지배하던 이 시장에서 빠르게 외연을 확대해 나간 끝에 점유율 45.1%(전자담배 스틱 기준)를 기록하며 올해(2월 기준) 1위를 차지했다. 시장 최강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후발 주자에서 업계 선두로 ‘우뚝’KT&G의 올해 1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2% 늘어난 8448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도 10% 증가해 2726억원을 달성했다. KT&G에 따르면 호실적의 뒤에는 전자담배 시장의 빠른 팽창과 이를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릴(lil)’의 약진이 자리한다.

한국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독주했던 이 시장에서 외연을 확대하며 전자담배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자담배는 담뱃잎이 포함된 전용 스틱을 기기에 꽂아 가열해 흡연할 수 있도록 만든 차세대 담배다. 실제로 흡연 인구가 점차 감소하며 연초 담배 시장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지만 이 시장만큼은 예외다. 덩치가 매년 급증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시장 조사 기관 등에 따르면 2017년 3600억원 정도였던 전자담배 시장은 지난해 1조 8000원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5년 사이 무려 6배나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이다. 전체 담배 시장 규모(약 18조원)의 10%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시장 관계자는 일반 연초보다 냄새가 적은 데다 폐를 까맣게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타르’가 함유되지 않았다는 강점이 부각되며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갈아타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런 전자담배 시장에서 KT&G는 빠르게 영향력을 키워 나가며 당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실적을 거두고 있다. 유러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KT&G의 전자담배 시장점유율은 45%를 기록하며 경쟁사인 필립모리스(43%)를 앞질렀다.

전자담배의 시장 규모(1조8000억원)를 감안하면 약 8000억원의 매출을 KT&G가 이 시장에서 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KT&G가 전자담배 시장에서 지금처럼 성장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전자담배 시장의 포문을 연 것을 필립모리스다. 2017년 아이코스를 출시하며 단숨에 한국에서 전자담배 열풍을 일으켰다.

KT&G도 부랴부랴 같은 해 말 전자담배 기기 ‘릴 1.0’과 전용 스틱 ‘핏(Fiit)’을 내놓았지만 필립모리스의 시장 선점 효과는 무서웠다. 양측의 본격적인 진검 승부가 펼쳐졌다고 볼 수 있는 2018년 전자담배 점유율을 살펴보자. 필립모리스의 점유율은 73%로 KT&G의 점유율(약 20%)을 세 배 정도 웃돌았다. 이대로 업계 순위가 굳혀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반전이 일어났다. KT&G는 뛰어난 기술력을 앞세운 제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빠르게 필립모리스를 따라잡았다. 실제로 KT&G는 지난 5년 동안 매년 진보된 성능의 신제품을 출시해 왔다. 반면 필립모리스는 2019년 아이코스 3를 출시한 이후 현재까지 새로운 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다.해외 시장 기대감도 솔솔KT&G의 속도감 있는 성장 배경엔 전자담배 산업의 핵심인 ‘특허 개발’이라는 키워드가 숨어 있다. 전자담배 또한 전자 제품이기 때문에 자체 특허 기술이 제품력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KT&G는 연구·개발(R&D)에만 연간 2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며 다양한 특허를 취득했다.

KT&G의 특허 경쟁력은 올해 3월 유럽특허청이 발표한 ‘2021년 대한민국 기업 유럽 특허지수’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지수에 따르면 유럽에 특허를 출원한 한국 기업 중 삼성과 LG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KT&G는 총 233건의 특허를 출원해 삼성과 LG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삼성과 LG가 대표적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점을 감안한다면 KT&G의 3위 등극은 의외다. KT&G의 전자담배 관련 기술이 어느 정도 뛰어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뛰어난 기술력을 앞세워 KT&G는 매년 성능을 개선한 전자담배 기기를 출시, 소비자들을 공략해 나갔다. 그간의 행보에서도 잘 나타난다. KT&G는 2018년 후발 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혁신 기술을 담은 전자담배를 선보이며 승부수를 띄웠다.

기존 전자담배 디바이스에 액상 카트리지를 결합해 사용하는 ‘릴 하이브리드 1.0’을 출시한 것. 액상 카트리지를 디바이스에 결합한 후 전용 스틱을 삽입해 작동하면 연무량이 향상되고 특유의 찐 맛이 감소한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제품이다.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 제품에 힘입어 KT&G는 2019년 전자담배 시장점유율을 10% 정도 끌어올리며 필립모리스와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2월 전자담배 최초로 모든 버튼을 없애고 스틱만 삽입해도 자동으로 예열되는 ‘스마트 온·오프’ 기능을 탑재한 ‘릴 하이브리드 2.0’을 출시했다.

스마트 온·오프는 사용자의 흡입 패턴을 디바이스가 인식해 전용 스틱 삽입 시 자동 가열이 시작된다. 반대로 스틱이 분리되면 자동으로 중단되는 기능으로 사용자의 편리성을 대폭 향상시킨 특허 기술이다.

특히 기존 한 겹으로 둘렀던 발열선을 M자 형태로 한 번 더 둘러 스틱 전체를 균일하게 가열하는 ‘M자 패턴 히터 구조’ 특허는 다른 전자담배 제품에서는 볼 수 없는 KT&G만의 차별화된 독자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그 결과 지난해 점유율은 필립모리스를 거의 따라잡고 올해 들어 필립모리스를 추월하고 업계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KT&G의 이유 있는 ‘깜짝 실적’…전자담배 혁신 앞세워 위기 돌파
KT&G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개발한 기술들이 인정받아 시장 1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망도 밝아 보인다. 그 무엇보다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 확대가 기대된다. 한국 시장에서 KT&G와 직접 맞붙으며 기술력을 눈여겨본 필립모리스가 KT&G 측에 해외 시장을 함께 공략하자고 제안한 것.

이에 따라 현재 KT&G는 릴 제품을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에 공급하고 PMI는 이를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KT&G의 릴은 이 계약을 통해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릴은 2020년 일본 등 3개국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동유럽‧남유럽·중남미 등 다양한 권역으로 시장을 넓혔다. 현재까지 수출 대상국만 25개국에 이른다.

한국 시장에서도 기술력을 앞세운 다양한 제품들을 계속 출시해 나가며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KT&G 관계자는 “2017년부터 5년간 전자담배 분야에 집중적인 R&D 역량을 투입해 총 3000여 건의 특허 출원을 등록한 상황”이라며 “이를 활용해 보다 뛰어난 기술력을 입힌 전자담배 기기들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선두 자리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