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종로부터 2022년 성수·한남까지…‘돈과 사람’이 오가는 ‘핫플레이스’ 변천사

[스페셜 리포트]
2014년의 경리단길. 대한민국의 수많은 '리단길'의 원조다.(사진=한국경제신문)
2014년의 경리단길. 대한민국의 수많은 '리단길'의 원조다.(사진=한국경제신문)
대학생부터 예술가까지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특색 있는 가게가 하나둘 생겨났다. 입소문(지금은 SNS)을 타고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이 붐비자 상업 시설들이 밀려 들어왔다. 건물주들은 하나둘씩 월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애초 이 거리를 만든 주인공인 작은 가게들은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자취를 감춘다.

서울의 길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거나 거치고 있는 중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서울 거리의 변천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력을 지니자 명동과 종로가 붐볐다. 1990년대 아파트 값이 급등하고 ‘강남 시대’가 열리면서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오렌지족이 출몰했다. 2000년대부터 ‘홍대 전성시대’가 열렸다. 2010년 들어서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성수동과 골목 곳곳으로 이동이 시작됐다.”

위치만 달라졌을 뿐이다. 붐비는 거리에는 그 시대 트렌드의 맨 앞에 선 사람들이 몰렸고 문화와 자본은 이들을 쫓았다. 길의 흥망성쇠는 문화와 젊음 그리고 자본의 함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K-컬처의 산파 역할을 한 서울의 길을 따라가 봤다.
2009년 종로의 모습. 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거리'라는 별명이 있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09년 종로의 모습. 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거리'라는 별명이 있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젊은 거리’의 시작은 통금 해제
외국인들은 서울을 “24시간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서울 곳곳은 잠들 시간조차 없었다. 그 시작은 정확히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거리가 뜨거워진 첫 장면에는 1982년 야간 통행 금지의 해제가 있었다. 밤 12시 통금이 해제되자 서울의 번화가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이 몰려 있는 신촌과 이대앞 그리고 종로가 ‘젊음의 거리’로 부상했다.

종로는 먹을 것과 읽을 것, 배울 것이 공존한 거리였다. 특별한 날에만 가야 할 것 같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곳이 ‘종로’다. 1984년 KFC가 탑골공원 앞인 서울 종로구 종로2가 경영빌딩 1~2층에 1호점을 냈다. 같은 달에는 버거킹이 종로2가에 첫 한국 매장을 열었다. 맥도날드와 파파이스도 1호점으로 종로를 택했다.

1907년 예수교서회가 종로2가에 세운 ‘종로서적’ 앞은 1980년대 젊은이들의 만남의 광장이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종로에 자리 잡으며 한국의 대형 서점 전성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2016년 다시 부활한 종로서적은 주인도, 공간 구성도 크게 바뀌었지만 중·장년층에게는 예전의 향수를, MZ세대(밀레니널+Z세대)에게는 새로운 기억을 선물하고 있다.

젊음의 거리란 명칭이 무색하게 지금의 종로는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올해 1월 KFC의 한국 1호점인 종로점이 38년 만에 폐점했다. 과거 서울의 핫플레이스였던 종로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유행의 최첨단에 있던 이대앞의 몰락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한때 미용실만 100개가 넘었고 한 집 건너 하나씩 옷가게와 화장품 숍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스타벅스가 첫 점포를 낼 정도로 트렌드에 민감한 동네였지만 시대의 변화 앞에 저물어 갔다. 2000년대 들어 문화의 중심이 홍대쪽으로 이동하고 온라인 쇼핑과 의류 전문점(SPA) 브랜드 전성시대가 오자 이대입구는 저녁에 불을 끄는 점포가 늘어 갔다.
2013년의 홍대앞. 홍대앞은 망원, 상수, 합정 등으로 확장됐다. (사진=한국경제신문)
2013년의 홍대앞. 홍대앞은 망원, 상수, 합정 등으로 확장됐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인디의 고향 홍대앞
서울 핫플레이스의 변천사를 이야기할 때 ‘홍대앞’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18년,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시립대학교와 공동으로 ‘홍대앞 : 서울의 문화 발전소’를 발간했다. 자료에 따르면 홍대앞이 젊은이들의 메카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이 시절 홍대앞은 한국 록의 시작을 연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서식지였다. 록 음악 전용 감상실 ‘드럭’에서는 크라잉넛 등 언더 밴드들의 공연이 펼쳐졌고 1992년 개점한 ‘스카’는 록카페형 댄스클럽의 시초가 됐다.

2000년대 들어 홍대의 유흥 문화는 록카페에서 ‘클럽’으로 진화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클럽 문화가 외국인들을 위한 관광 상품으로 선정됐다. 이듬해부터 시작된 ‘클럽데이’는 홍대앞거리의 밤을 지워 버렸다. 양현석 전 YG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미국에서 클럽 문화를 접한 후 1990년대 후반 홍대앞에 클럽 ‘NB’를 열었다. 클럽 NB는 2000년대 중반 하루 매출이 수천만원에 이를 정도로 전성기를 달렸다.
서울의 거리에서 미래를 만나다
홍대앞은 한국에서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진 곳이다. 2000년대부터 2010년까지 ‘걷고 싶은 거리’ 사업을 계기로 홍대앞을 지키던 독특한 카페와 대규모 클럽들은 상업적 자본과 만나게 됐다. 지하철 6호선과 경의 중앙선,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유동 인구가 늘어나자 홍대앞을 수식하던 ‘인디 감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돈이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상업화 과정에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주민들이 터전을 잃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한국의 사회적 문제가 된다.

하지만 홍대앞이 갖고 있던 다양한 문화의 혼합과 거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다른 동네로 확산된다. 문화의 팽창이 상권의 팽창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홍대앞’이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입구부터 홍익대 정문까지 가는 길이었다면 2020년대 ‘홍대앞’은 합정·연남·망원·상수 등으로 넓어졌다. ‘홍대앞의 확장’이다. 확장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밀려난 예술가와 임차인들이 근처로 옮겨 가면서 시작됐다. 특히 연남동에는 두 가지 요소가 더해져 홍대앞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나는 한국에 급속히 늘어난 외국인들의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이대앞 상권의 소비자들이다.

홍대앞에서 처음으로 목격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 이후 서울 곳곳에서 목격된다. 용산 경리단길은 수많은 ‘ㅇ리단길’의 원조다. 지금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이 바뀐 ‘육군중앙경리단’이 길 초입에 들어서 경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군재정관리단에서부터 그랜드하얏트 호텔로 쭉 이어지는 길과 주변 골목길을 아우른다.

경리단길은 6호선 녹사평역과도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고 곳곳에 계단과 경사진 길이 많아 통행이 쉬운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들어 ‘힙(hip)’의 근거지가 된 것은 특유의 분위기 덕분이다. 외국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이태원동에 자리해 있어 ‘한국 안의 외국’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띤다.

기존 해밀톤 호텔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태원의 중심이 경리단길로 넘어온 또다른 이유는 취향의 고급화다. 이태원 본래 중심지 문화는 미군이 만들었다. 이국적이지만 고급스럽지 않았다. 또 미군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며 이를 불편해 하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곳을 찾았다. 그곳이 경리단길이기도 하다.

경리단길은 수제 맥주의 성지이기도 하다. 2010년 크래프트웍스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 피자와 수제 맥주를 함께 즐기는 ‘피맥’의 원조라고 알려진 맥파이와 더부스 등 다양한 수제 맥줏집들이 경리단길에 들어섰다.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경리단길을 찾던 이태원 외국인들이 수제 맥주를 찾았다는 ‘설’도 있고 수제 맥주를 접한 유학파들이 이 지역 작은 가게에 둥지를 틀면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독특한 가게들이 줄을 잇던 경리단길도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을 맞닥뜨리게 된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태원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3년 2분기 3.3%였던 용산구 이태원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8년 4분기 21.6%로 급증했다.

2002년부터 경리단길과 이태원 등지에서 13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이태원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던 방송인 홍석천 씨도 이 지역의 임대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의 거리에서 미래를 만나다
강북에 경리단길이 있다면 강남엔 가로수길이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가로수길은 1990년대만 해도 압구정 로데오의 명성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3호선 신사역 초입에 들어선 압구정로 12길부터 도산대로 13길에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입점하면서 ‘한국의 소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인 스트리트에는 패션·뷰티 브랜드 점포들이 들어섰고 해외에서 직수입한 소품과 빈티지 제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도 자리 잡았다. K-패션과 K-뷰티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관광객부터 한국의 트렌드세터들로 넘쳐났다. 소위 말하는 ‘물 좋은 거리’였다.

가로수길은 압구정 로데오의 대체 역할도 했다. 로데오가 저문 후에도 강남에 대한 열기와 관심은 남아 있었다. 40대 이상의 ‘아재’들은 논현역과 테헤란로에서 자신의 욕망을 발산했다. 10대와 20대 초반은 강남역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고급스러운 것을 찾는 2030세대와 강남의 신흥 부자들, 연예인 지망생, 새로운 패션을 찾는 ‘패피’들에게 레드카펫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가로수길이 해줬다. 물론 가로수길 맞은편 현대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관심과 아파트 가격 상승이 가로수길로 중심이 이동한 경제적 계기를 제공해 줬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가로수길이 레드카펫의 역할을 지속하는 데 타격을 주는 일이 발생했다. 2010년대 들어 서울의 길에 변화를 준 사건을 두 가지 꼽자면 첫째는 2017년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둘째는 코로나19 사태의 팬데믹(세계적 유행)이다. 사드 보복으로 명동 상권이 무너졌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핫한 거리들이 휘청거렸다. 가로수길도 타격을 받았다. 텅 비어 버린 명동 거리를 떠나 가로수길에 자리 잡은 뷰티 매장들은 또다시 코로나19 사태라는 난적을 만나 많은 가게가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대체재가 없다는 게 가로수길의 장점이다. 2022년 가로수길은 다시 뜨고 있다. 그 길을 다시 채운 것은 강남권 소비자들이다. 여유 있는 소비자들이 몰려들자 객단가가 다시 상승했다. 김용우 CBRE코리아 A&T 리테일 임차대행팀 상무는 “이솝·메종키츠네 등 가격이 비싼 ‘신명품 브랜드’의 매출이 상승하면서 이들이 새로 열 매장의 근거지로 가로수길에 노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브랜드 ‘아르켓’이 가로수길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임차료가 높아 언뜻 보기엔 ‘공실’이 많아 보이지만 이것이 곧 가로수길의 몰락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성수동은 최근 MZ세대가 자주 오가는 '힙플레이스'다. 사진은 블루보틀 1호점 개점식의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성수동은 최근 MZ세대가 자주 오가는 '힙플레이스'다. 사진은 블루보틀 1호점 개점식의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거리에 나타난 MZ세대
“MZ세대는 음식을 음미하기보다 공간 자체를 소비한다. 이슈를 만들어 내는 이들을 따라 대기업, 외국계 회사들, 패션·리테일 업종이 ‘뜨는 거리’에 입성한다.” 김용우 상무는 최근 급부상한 힙 플레이스들이 모두 이러한 과정들을 거친다고 말한다. 이처럼 최근 서울의 거리를 뜨고 지게 하는 것은 MZ세대의 몫이다. MZ세대가 몰린 거리는 핫플레이스, 아니 ‘힙플레이스’가 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포스팅할 수 있는 ‘특색있는’ 풍경을 지닌 거리는 뜰 수밖에 없다. 서정렬 교수는 “아파트라는 표준화된 공간에서 성장한 MZ세대는 특색 있는 상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차갑게만 여겨졌던 철제 프레임과 반쯤 무너진 벽돌 벽은 ‘힙’하다는 표현 아래 수천 개의 ‘좋아요’를 받는 장소가 된다.

인쇄소와 철공소로 즐비한 을지로 인쇄소 골목 사이, 서울 도심에서 비교적 임차료가 싼 곳을 찾던 젊은 창업가들의 눈에 ‘을지로’가 들어왔다. 동시에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을지로는 작업실을 마련하려는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흡수했다. 3인의 디자이너가 작업실 겸 문을 연 카페 ‘호텔수선화’부터 사장 10명이 모인 와인바 ‘십분의 일’ 은 힙지로를 연 1세대이다.

을지로 가게들의 특징은 간판이 없는 가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장소를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이상, 이곳에 가게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곳들이 다수다. 하지만 MZ세대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SNS를 통해 ‘을지로 힙플레이스’들이 널리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업계가 ‘뜨는 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팝업스토어’다. 지난해 명품 브랜드 디올이 성수동에 팝업 스토어를 연 것은 업계의 큰 화제였다. 전통적으로 한남동을 근거지로 삼았던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브랜드 ‘비이커’의 신규 매장 자리를 성수동으로 낙점했다. 김용우 상무는 “백화점과 면세점, 청담동 명품 거리에만 포진하던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MZ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른 지역을 둘러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해외·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성수동을 MZ세대의 근거지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은 공장으로 가득찬 곳이었지만 소호의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난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모여들면서 ‘예술과 창업의 도시’로 변모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성수동의 별칭이 ‘한국의 브루클린’이다. 1970년대만 해도 철공소와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공장들은 변화의 손길을 거쳐 이제는 가장 힙한 카페와 편집숍이 됐다. 최근 성수동에는 정보기술(IT)·패션 플랫폼 등 주요 스타트업과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까지 이전하면서 오피스 타운도 형성됐다.
2019년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이 한국 진출 1호점으로 택한 곳도 성수동이다. 블루보틀은 성수동을 택한 이유에 대해 “성수동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이색적 지역으로, 지역과 공감하려는 블루보틀의 철학과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후 MZ세대의 SNS 피드는 블루보틀의 ‘파란 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성수동이 새로운 길이 된 복잡한 요인들도 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강남이고 간선도로를 타기도 용이하고 강을 끼고 있다. ‘강남과 다를 게 뭐 있느냐’는 인식 과정에서 ‘강남의 확장’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입지 자체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자 공장과 철공소 등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도 뛰기 시작했다. 또 강남의 배후에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면 성수의 배후에는 건대 더샾스타시티가 있었다. 연예인들의 주거지로 각광 받으며 성수동과 시너지를 일으키기 충분했다는 평가다.

최근 서울의 힙플레이스에서 포착되는 새로운 현상은 자연과 문화의 어우러짐이다. 한강 둔치에서 가까운 한남동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조각 투자,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으로 미술 투자에 익숙한 MZ세대는 먹고 마시는 것에서 벗어나 문화적 소양을 채우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2004년 삼성 리움 미술관 개관을 시작으로 뮤지컬 극장 블루스퀘어,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등이 자리 잡은 한남동은 이들의 ‘니즈’에 딱 들어맞는 동네다.

한남동은 한남더힐·나인원한남 등 한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강북의 신흥 부촌으로 변모했다. 이태원 제일기획 본사에서부터 한강진역으로 이어지는 ‘꼼데가르송길’을 걷다 보면 명품 브랜드 매장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명품 브랜드 구찌가 지난해 문을 연 ‘구찌 가옥’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구찌 가옥은 강북 지역에서 문을 연 최초의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다. 한국 전통 주택을 의미하는 ‘가옥’에서 공식 명칭을 착안했다.
홍대앞에 다가온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경의선 책거리 등으로 '홍대앞'은 넓어졌다. 사진은 경의선 책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홍대앞에 다가온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경의선 책거리 등으로 '홍대앞'은 넓어졌다. 사진은 경의선 책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의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하나의 길은 또 다른 길을 낳는다 2010년대 들어 새롭게 떠오른 거리들도 젠트리피케이션을 코앞에 맞닥뜨리고 있다. 2015년 도시 재생 사업을 마친 종로구 익선동은 늘어선 한옥들로 예스러운 감성을 느낄 수 있어 2030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1월 익선동 한옥거리 일대의 월별 일평균 총 유동 인구는 무려 8만여 명에 이른다.

익선동의 높아진 월세를 피해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공방과 늘어선 한옥 카페로 SNS에서 새로 화제가 된 곳이 ‘서순라길’이다. 서순라길은 익선동과 돈화문로를 사이에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다. 레트로와 한옥 감성을 기대하고 익선동을 방문했다가 인파를 피해 서순라길로 발길을 옮기는 Z세대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익선동이 서순라길로 이어진 것처럼 과거 가로수길에서 세로수길이 파생됐고 이태원거리는 경리단길과 해방촌을 낳았다. 원주민들과 예술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골목을 찾아 파고들고 젊은 세대는 새 거리를 발굴한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늘 ‘다음 거리’를 생각한다. 옛 한국전력 부지로 향후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설 삼성동 코엑스 부근,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북촌, 성수동에서 확장된 성동구 송정동이 주목 받고 있다. 물론 이 견해는 맞을 수도, 혹은 틀릴 수도 있다. 과거부터 힙한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서울의 젊은이들이지 언론과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종로로 시선을 옮겨 본다. 지난해 문화·엔터테인먼트 전문 온라인 매체 ‘타임아웃’이 선정한 ‘2021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29곳’에 종로3가가 3위에 올랐다. 탑골공원에 모여 바둑을 두는 어르신들, 송해길에서 엿을 파는 노점, 금은방, 이북 음식점, 숨겨진 카페와 맥줏집 등을 매력적인 요소로 꼽았다. 타임아웃은 종로3가를 ‘유서 깊은 도시이면서 별나고 소박한 곳이자 서울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라고 평했다. 북적임이 잦아들어도 서울의 모든 거리는 나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