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사관학교❶ NH · 신한금투 대표 모두 대우맨…IB·리서치센터 등 곳곳에서 업계 주름잡아

[비즈니스 포커스]
기업은 사라져도 인재는 남는다 ‘대우증권 DNA’
한국 금융 투자업계에 당당한 꼬리표가 있다.

이곳 출신 인사들은 현직에서도 해당 꼬리표를 자랑스레 앞에 배치한다. 여기 출신이란 말 한마디가 곧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이력이자 그를 대표하는 약력이 되기 때문이다. 최대 주주 변경, 사명 변경 등으로 기업은 역사 속에 자취를 감췄지만 그 DNA는 한국 금융 투자업계에 남아 있다. 당당한 이름표, “저는 대우증권 출신입니다.” 1등 증권사의 ‘맨파워’‘대우맨’은 대우그룹 출신 인사를 부르는 별칭이다. 대우에서 일하다 그룹이 해체된 후 여러 곳에서 요직을 차지한 기업인들을 일컫는 말로, 증권가에서는 대우증권 공채 출신 인사를 통틀어 ‘여의도 대우맨’으로 부른다.

대우증권은 1970년 증시 태동기에 설립된 증권업계의 ‘맏형’이다. 모태인 동양증권이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대우 가족의 일원이 됐다. 1983년 10월 당시 삼보증권을 합병하며 ‘대우증권’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1등 증권사’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대우증권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증권 사관학교’란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당대를 주름잡은 걸출한 인재들이 대우증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미래에셋대우 사장을 지낸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김기범 전 현대증권 사장, 손복조 전 토러스투자증권 대표, 황건호 전 (초대) 금융투자협회장 등 업계를 좌지우지했던 원로들이 ‘대우맨’이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증권에 합병된 이후 2021년 미래에셋대우에서 대우란 간판을 완전히 떼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의도 대우맨들은 여전히 증권 금융업계 곳곳에 포진해 대우의 DNA를 뿌리내리고 있다.

올해 3연임에 성공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대우증권에서 증권업의 첫 발을 뗐다. 이후 2005년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IB사업부 담담 임원을 13년간 역임했다. 당시 인수금융(IB) 리그테이블 선두를 놓치지 않았고 IB와 인수·합병(M&A) 사업을 개척하는 등 증권업계의 IB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대표적 인물로 통한다.

이영창 신한금융투자 사장 역시 ‘대우맨’이다. 1988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이후 25년 동안 대우증권에서 근무하며 서울 도곡동지점장과 트레이딩사업부 딜링룸부장, IB사업부 자기자본투자(PI)본부장, 경영지원본부장(CFO), 홀세일사업부장, 자산관리(WM)사업부문 대표 등을 역임했다. 그는 대우증권이 KDB산업은행 산하에 있던 2014년 사장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신한금융투자는 또 한 명의 대우맨을 영입했다. 신한금융지주는 3월 17일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를 열고 김상태 전 미래에셋증권 투자은행 총괄 사장을 신한금융투자 GIB(글로벌·투자은행) 총괄 각자대표 사장으로 신규 추천했다. 김 사장은 ‘IB 명가’였던 대우증권 출신의 정통 증권맨으로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한 후 통합 미래에셋증권 IB 총괄 사장을 지냈다.

자경위는 그룹의 자본 시장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IB 분야 경쟁력 제고가 필수적이라는 인식하에 성과와 역량이 검증된 최상위급 전문가 영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영창 사장과 김상태 사장 모두 ‘대우맨’이란 점에서 성과와 역량이 검증된 ‘대우맨’에 대한 신뢰가 엿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올투자증권의 자회사인 다올저축은행(구 유진저축은행)에도 대우 DNA가 있다. 황준호 다올저축은행 대표는 대우증권 부사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미래에셋그룹의 사내이사에 선임되며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강성범 미래에셋증권 IB 2총괄 부사장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다. 강 부사장은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병하기 전 대우증권에서 기업투자금융본부장을 역임하며 투자 금융 부문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이 밖에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부회장과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또한 대우맨을 대표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증권사의 꽃 ‘리서치센터’의 수장 역시 대우증권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금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여전히 금융 투자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세대 애널리스트였던 조익재 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최근 회사를 떠나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에서 투자운용2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 위원은 1993년 대우경제연구소를 시작으로 메리츠증권 리서치팀장을 거쳐 2004년부터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무명의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명가로 이끈 애널리스트의 전설 조용준 전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역시 2년 전 안다아시아벤처스를 설립하고 투자업계에 뛰어 들었다. 조 대표는 1994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조 대표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을 거쳐 자동차·조선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활약하다가 신영증권과 하나금융투자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으로 지내는 동안 존재감 없던 리서치센터를 톱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밖에 임진균·이종승·양기인 센터장 등 당대 최고의 리서치센터장들이 대우맨 출신이었다. 현재는 최석원 전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지식서비스 부문장으로 옮기면서 현직에는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박영훈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유승창 KB증권 리서치센터장,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이 남았다.
기업은 사라져도 인재는 남는다 ‘대우증권 DNA’
도전 정신에 도제식 교육 효과금융 투자업계에서 대우맨의 활약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과거 대우증권이 리서치 전문 인력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대우증권은 1984년 한국의 첫 민간 경제 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를 100% 출자해 설립했다. 이 연구소에서 철저한 교육 시스템 아래 인력을 양성했다. 이렇게 교육 받은 인력들은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 배치돼 투자자에게 국내외 경제 동향과 상장 기업 정보를 알리는 등 증권사의 중추 역할을 했다.

당시 대우증권의 리서치센터는 선배가 후배를 일대일로 교육하는 전형적인 도제식 방식으로 팀워크를 통한 능력 배양에 힘을 쏟았다.

대우 출신인 조용준 안다아시아벤처스 대표는 “대우증권의 도제식 교육이 많은 금융 대형사에 전파될 만큼 우수했다”며 “매크로, 기업 분석 등 어떤 분야에서건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로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룹을 대표하는 슬로건인 도전 정신도 걸출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몫했다. 대우증권 출신인 한 금융 투자업계 인사는 “회사는 사라졌지만 열정 하나로 자본 시장을 누볐던 그 시절이 제 인생의 영광스러운 기록”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