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와 생산성 그리고 보안…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사업 포석?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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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A 씨는 첫 근무지로 경기도 한 공장에 근무하게 됐다. 1주일간 긴장하며 근무한 A 씨는 결국 감기 몸살이 났다. 출근 후 갈수록 목이 따끔거리고 열이 올라 인근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 선배가 사업장 내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사내 병원은 이비인후과·가정의학과는 물론 갑상샘 초음파 클리닉이나 피부과 순환 진료 등의 특별 진료도 가능했다. A 씨는 간단하게 사내에서 진료를 받았다.

대기업들이 잇달아 사내 병원을 설립하고 있다. 직원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복지 차원이다. 조직원의 이탈을 막고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업장 내 병원 이용과 건강 검진에 대한 사후 관리, 개인 운동 능력, 영양 상태, 스트레스에 따른 의료 상담 등은 조직원의 만족도를 높여 준다. 또 진료나 상담을 통해 축적한 건강 데이터는 임직원들의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작업 환경과 직무 유형별 맞춤형 근무 현장 조성에 활용할 수 있다.

직원들의 요구도 높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2021년 전국 만 19세 이상의 노동자 2000명(대기업 493명, 중소기업 1507명)을 대상으로 ‘직장 건강 관리에 대한 인식 및 요구도’를 조사했다. 전체 노동자의 79.5%는 직원 건강 관리를 위한 회사 차원의 건강 증진 활동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노동자의 75%는 ‘회사에서의 건강 증진 활동이 직장 생활과 개인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건강한 직원이 수익성 높은 회사를 만든다.” 1980년대 미국 경영 심리학자인 로버트 로젠의 말이다. 로젠은 ‘건강 경영’을 강조했다. 건강 경영이 애사심을 높여 조직의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은 40년 전부터 나온 얘기인 셈이다.
제조 공장 내 부속 의원 설치하는 대기업들
LG디스플레이 경기도 파주 공장 내 마련된 부속 의원. 사진=LG디스플레이 제공
LG디스플레이 경기도 파주 공장 내 마련된 부속 의원. 사진=LG디스플레이 제공
한국의 대기업이 만드는 병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삼성과 현대가 만든 대형 병원과 사업장 내 설치된 부속 의원 형태다. 부속 의원은 위탁 운영과 직접 운영으로 나뉜다.

사내 부속 의원을 운영하는 대표적 회사는 삼성전자다. 수원·구미·광주·기흥·화성·평택·천안 등에 사내 부속 의원이 있다. 삼성병원이 위탁 운영한다. SK하이닉스는 이천·청주 사업장 등에 직접 운영하는 부속 의원을 설치했다. 최근엔 LG에너지솔루션이 충북 오창공장 내 사내 부속 의원을 개설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로 베드 타운과 멀리 떨어진 제조 공장 안에 부속 의원을 두고 본사 내엔 상담센터를 둔다. 예컨대 LG디스플레이는 파주·구미 사업장에 각각 부속 의원이 있다. 경기도 명지병원과 협의 운영 중이다. 가정의학과 의사와 간호사·물리치료사가 있고 심전도‧안압기‧물리 치료 전문 장비 등도 구비돼 있다. 임직원뿐만 아니라 임직원 가족들과 사내 근무 중인 협력 업체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다. 예방 접종을 제외한 대부분 진료비는 무료다. 회사 관계자는 “부속 의원의 이용 고객은 월 평균 4000명이 넘는다”며 “임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인근 병원 방문이 수월한 서울 본사(여의도)와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는 부속 의원 대신 건강관리실만 설치했다.
신사옥 내 992㎡짜리 병원 마련한 네이버
경기도 분당 네이버 신사옥 1784 4층 부속 의원에 근골격계 재활 운동 등을 위한 치료 기구가 마련돼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경기도 분당 네이버 신사옥 1784 4층 부속 의원에 근골격계 재활 운동 등을 위한 치료 기구가 마련돼 있다. 사진=네이버 제공
정보기술(IT)업계는 본사 내 사내 병원을 설치했다.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IT 업종의 특징으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신경계 및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치료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먼저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2013년 신사옥을 구축하면서 임직원을 위한 사내 병원인 메디컬센터를 세웠다. 메디컬센터에는 척추 견인 치료기, 통증 레이저 치료기 등 의료 장비와 물리 치료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다. 진료과는 신경계·내과·피부과·소아과 등이다.

다음은 네이버. 네이버의 사내 병원은 3년 만에 진료과가 5개 이상인 992㎡(300평) 규모의 병원으로 커졌다. 앞서 네이버는 2018년 연세의료원에 사내 부속 의원 ‘네이버 홈닥터’를 위탁했다. 의료진의 급여는 연세의료원이 부담하고 의료원은 기업에서 운영비를 받는 방식이었다. 가정의학과 의사 1명, 간호사 2명, 물리치료사 2명 등이 상주했다. 대부분 대기업 본사에 있는 건강관리실 규모인 셈이다.

2021년 여름부터는 네이버가 직접 핸들을 잡았다. 본사 내 부속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하며 진료과를 늘렸다. 가정의학과를 비롯해 이비인후과·재활의학과·비뇨의학과‧건강 검진 상담 및 내분비내과 등이다. 올해 5월엔 경기도 분당 신사옥 ‘1784’ 4층으로 사내 병원을 이전했다. 병원 규모가 3배 정도 커졌고 첨단 장비를 구축했다. 신사옥 인근에 병원 인프라가 조성돼 있지만 직원들이 더 가깝고 첨단 장비가 구축된 곳에서 진료와 건강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진료비를 지원하지는 않는다.

최근엔 카카오도 사내 병원을 개원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카카오 헬스케어 법인을 신규 설립하고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대표로 영입하는가 하면 추가로 의사 채용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전 생애 주기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와 관련해 의사 채용을 진행 중”이라며 사내 병원 설립 가능성을 일축했다. 사내 복지용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법인이라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카카오 외에도 직원들의 복지와 업무 효율성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사내에 의원급 병원을 신설하는 기업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외에선 아마존과 애플이 외부에 운영을 맡겼던 사내 병원을 2018년부터 직접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 복지와 직원 수천 명의 진료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일각에선 향후 의료 사업 진출·확대에 대비하는 선제적인 투자라고 분석한다. 애플은 2017년부터 애플워치에 내장된 센서를 통해 사용자 심박수를 측정, 본인과 주치의에게 알리는 원격 의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은 의료 정보 시스템과 의료 기기 분야 관련 비밀 개발 조직을 운영 중이다. 최근엔 아마존 케어를 선보이며 헬스케어 시장으로 범위를 넓혔다. 아마존 케어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를 활용해 가상 진료와 무료 원격 의료 상담, 방문 진료를 연계한 하이브리드 헬스케어 서비스다.
재벌 총수의 건강은 곧 정보
서울아산병원 전경(왼쪽)과 삼성서울병원 전경. 사진=각 사 제공
서울아산병원 전경(왼쪽)과 삼성서울병원 전경. 사진=각 사 제공
LG가 병원 사업에 진출할 것이란 루머는 때만 되면 나온다. 삼성·현대·한진 등이 병원을 갖고 있지만 LG는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병원은 사회에 기여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으로도 장기적으로 보면 ‘남는 장사’라는 시각이 많다. 병원 설립으로 이미지를 높이는 홍보 효과가 있고 병원과 연계한 신약 개발이나 의료 기기 산업에 진출하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 총수 일가와 최고경영자(CEO)들의 건강 관리를 해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들의 건강 상태는 기업에서는 보안에 관련된 사항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몇 년 전만 해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망 루머가 주기적으로 증권가에 돌며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관련 주식이 들썩였다. 고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후 2020년 10월 별세하기까지 병원 내 철통 보안이 지켜졌다. 다시 말해 고 이 회장의 건강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루머가 생긴 것이다.

한편, 1980~1990년대엔 재벌 기업들의 병원 진출이 활발했다. 현대와 삼성은 서울아산병원(1989년)과 삼성서울병원(1994년)을 설립했다. 한진도 1996년 인하대병원을 세웠다. 결국 결렬됐지만 LG는 연세의료원과 합작 개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돋보기
네이버 사내 병원에 쏠린 관심
경기도 분당 네이버 신사옥 1784 4층에 마련된 부속 의원. 사진=네이버 제공
경기도 분당 네이버 신사옥 1784 4층에 마련된 부속 의원. 사진=네이버 제공
네이버는 왜 사내 병원을 구축해 직접 운영하는 것일까. 업계 일각에선 사내 부속 의원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총괄 책임자는 나군호 네이버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이다. 나 소장은 2020년 말 세브란스병원 교수직을 그만두고 네이버에 합류했다. 그는 한국 로봇 수술의 권위자다. 2005년 미국 인튜이티브 수술 로봇인 다빈치를 한국 최초로 도입했고 2016년 한국 반도체 장비 업체 미래컴퍼니와 수술 로봇 레보아이를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네이버는 나 소장의 역할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이미 그는 네이버 스마트 의료 사업 연구·개발(R&D)을 이끌어 갈 주역으로 꼽힌다.

또 네이버는 지난해부터 사내 조직인 클로바와 네이버 헬스케어 연구소를 중심으로 문진·예진, 근골격 질환 코칭 등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을 신사옥에 설치된 사내 부속 의원에 활용했다. 의료 데이터를 모으고 자체 개발한 헬스케어 솔루션을 적용한 지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사내 병원은) 임직원 복지를 위한 사업”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