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키즈’ 이해진·김범수, 퇴사 후 네이버·카카오 창업 IT 신화 창조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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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은 인재 욕심이 유별났다. 평생을 일류 인재에 집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7년 펴낸 자서전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도 “미국이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다 점령하고 엄청난 돈을 버는 원동력도 따지고 보면 그 나라가 세계 각국의 두뇌들이 모인 용광로이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의 천재가 한곳에 모여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두뇌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은 유난스러울 정도로 인재를 강조해 왔다. 이 전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사장단을 소집해 질 경영 중심 전략인 ‘신경영’을 선포한 뒤로 삼성의 인재상과 인재 전략은 대변혁을 맞게 된다.

1995년 입사 자격 요건에서 학력을 제외하는 능력주의 인사를 도입했다. 미래 산업을 이끌 창의 인재를 찾아 컴퓨터 인재를 대거 채용했고 2013년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동시에 갖춘 통섭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삼성 컨버전스 SW 아카데미(SCSA)’를 도입했다.

삼성은 이때부터 직접 인문계 인재를 선발해 6개월간 자체 기술 교육을 실시한 뒤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서울대 86학번·삼성SDS 입사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 서울대 86학번·삼성SDS 입사 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사진=한국경제신문
벤처 1세대 꿈 키운 ‘통합 전산실’

삼성의 인재 경영은 산업계 곳곳에 포진해 활약하는 삼성SDS 출신 기업인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985년 삼성그룹의 정보기술(IT) 서비스를 담당하는 회사로 설립된 삼성SDS는 한국 IT 산업을 대표하는 걸출한 기업인을 배출해 ‘IT 인재 사관학교’, ‘벤처 사관학교’로 손꼽힌다.

삼성SDS는 삼성그룹의 ‘통합 전산실’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컴퓨터 천재들이 모이는 집합소였다. 빅테크의 양대 산맥인 네이버·카카오를 이끄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네이버 글로벌 투자 책임자·GIO)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도 삼성SDS를 거쳤다.

‘숙명의 라이벌’인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와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는 삼성SDS 입사 동기로 한때 한솥밥을 먹던 동지였다. 이 창업자는 1986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 카이스트 대학원 전산학 석사를 거쳐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그는 1997년 삼성SDS가 도입한 사내 벤처 제도를 통해 1호 사내 벤처인 네이버를 탄생시켰다. 이 창업자를 비롯한 네이버 창업 8인방(권혁일·김보경·강석호·오승환·최재영·김정호·김희숙)이 모두 삼성SDS 출신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서울대 86학번·삼성SDS 입사 동기인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사진=카카오 제공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서울대 86학번·삼성SDS 입사 동기인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사진=카카오 제공
김범수 창업자는 1986년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해 서울대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데이타시스템(삼성SDS의 전신)에 입사했다. 그는 삼성SDS에서 만난 남궁훈 카카오 대표와 함께 1998년 한양대 앞에서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인 ‘미션 넘버원’을 부업으로 운영했다. 한게임 창업 자금을 마련하는 게 목표였다.

김 창업자는 1998년 말 ‘한게임’을 창업한 후 2000년 이 창업자의 네이버와 합병해 NHN 공동 대표를 맡았다. 2007년 NHN을 떠나 미국에 머무르던 그는 당시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보면서 모바일 시대로의 변화를 직감하고 2010년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김 창업자와 한게임을 공동 창업했던 남궁훈 대표는 2007년 김 창업자가 맡았던 NHN 미국법인 대표를 이어 맡아 글로벌 시장에서 경험을 쌓게 된다.

삼성SDS 출신 중에는 특히 네이버·카카오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이 많다. 강석호 네이버 이사, 최인혁 전 네이버 부사장, 정연훈 NHN페이코 대표, 문태식 카카오VX 대표, 류영준 전 카카오페이 대표가 있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이해진·김범수 창업자의 삼성SDS 선배로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두텁다. 김 대표는 김 창업자가 지난해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설립한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의 신임 이사장에 지난 5월 부임했다.

IT업계뿐만 아니라 은행·금융,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기업들에서도 삼성SDS 출신을 선호한다. 이상래 NH농협은행 부행장, 김민수 신한은행 AICC센터장, 김종호 CJ프레시웨이 디지털혁신담당(경영리더), 이규진 교원그룹 미래콘텐츠연구실장·AI혁신센터장(상무), 신황규 NPX 테라아크 CTO·CPO 등이 활약 중이다. 2000년에는 ‘SDS포유 CEO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삼성SDS 출신 IT 벤처 기업인들이 활발히 교류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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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키워서 남 준’ IT 사관학교

삼성SDS는 특히 닷컴 열풍을 주도한 걸출한 IT 벤처 1세대들이 창업의 꿈을 키운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삼성의 유별난 인재 철학과 달리 인재 활용도 면에서는 평가가 다소 갈린다. 당대 최고의 컴퓨터 천재들 중 삼성SDS를 떠난 사례도 적지 않다. 인재를 키우는 사관학교에만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창기 넥슨에 합류해 ‘바람의 나라’,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든 정상원 진큐어 대표도 삼성SDS를 떠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지만 부모의 권유로 서울대에 들어가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전산실에서 게임을 하며 게임 개발자를 꿈꿨던 그는 대학원 석사 1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좋아하는 컴퓨터공학과 편입을 준비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제동으로 컴퓨터공학과 편입을 하지 못한 채 1994년 삼성SDS에 입사하게 됐다.

그는 삼성SDS라면 원하는 컴퓨터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삼성SDS는 병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겼다. 분자생물학 전공에 따른 업무 배정이었다. 결국 정 대표는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삼성SDS를 퇴사하고 입사 동기인 이장원 대표가 창업한 블루버드에 합류했다가 넥슨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그는 넥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서울 송파구 삼성SDS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송파구 삼성SDS 본사 전경. 사진=한국경제신문
2016년에는 ‘천재 해커’ 이정훈 씨가 삼성SDS를 떠나 구글로 이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3년생으로 인하대 13학번이었던 이 씨는 스물세 살 때인 2015년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애플의 인터넷 접속 프로그램 보안망을 모두 뚫어 세계 최고 해커가 됐다.

그는 인하대를 휴학하고 고졸 학력으로 삼성SDS에 입사했다. 당시 더 많은 연봉을 제시한 구글을 두고 삼성SDS 입사를 선택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1년 만에 돌연 구글로 이직하면서 삼성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삼성은 자사 전자 제품의 보안상 취약점을 이 씨가 찾아내 막기를 원했지만 이 씨는 더 넓은 분야의 해킹과 보안에 관심이 많았다. 이 씨는 구글 이직 사유와 관련해 “보안 전문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삼성보다 구글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씨의 구글 이직을 두고 업계에선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삼성의 기업 문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