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보조금 등에 업고 ‘저가 공세’ 나선 중국…반도체·전기차도 대비해야

[비즈니스 포커스]
중국 헤이중장성 하얼빈의 자동차 엔진 제조 업체에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헤이중장성 하얼빈의 자동차 엔진 제조 업체에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5년 중국은 첨단 산업에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중국 제조 2025’를 공표했다. 2025년까지 첨단 의료 기기, 바이오 의약 기술, 로봇, 통신 장비, 전기차, 반도체 등 10개 하이테크 제조업 분야에서 대표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에는 대규모의 보조금을,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는 핵심 기술을 이전하라는 압박을 가해 왔다.

중국이 정한 ‘디데이’도 이제 3년 남았다. 그동안 막대한 지원금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각 산업군에서 차차 점유율을 높여 왔다. 그 효력이 이제야 발생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저가 공세를 이기지 못해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사업을 철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각 산업군을 긴장시키고 있다.

잠식당한 LCD 시장, 다음은 OLED?

지난 6월 6일 삼성디스플레이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라인 충남 아산캠퍼스 L8-2라인에 마지막 원장(마더 글래스)을 투입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6월 LCD 사업을 완전히 접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한 달 전의 일이다. 디스플레이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생산 공장인 충남 아산 8-2라인 가동을 6월 말까지만 하고 7월부터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LCD 사업은 메모리 반도체와 함께 지금의 삼성을 있게 한 대표적인 부품 사업이다. 199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총괄 산하에 ‘LCD사업부’를 설립한 것이 LCD 사업의 시작이었다. 이후 삼성은 디스플레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12년 삼성전자 LCD사업부를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했다.

사업 확대를 추진했지만 결국 10년 만에 사업 철수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 데는 LCD업계에 드리운 중국의 ‘저가 공세’가 자리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견인한 것은 대형 LCD였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는 이길 수 없었다. 특히 중화권 업체들의 높은 가동률은 LCD 패널 가격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중국은 2010년대 초반부터 BOE를 비롯한 자국의 패널 업체들에 각종 보조금과 세제 감면 혜택을 줬다. 자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패널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들이 공격적으로 증설을 벌이면서 LCD 시장의 수익성이 차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수익성이 낮아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삼성은 2010년 중반부터 LCD 사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6년 말부터 아산 7-1라인을 중소형 발광다이오드(OLED)로, 2019년 10월부터 8라인 일부를 QD-OLED로 전환하는 투자를 단행했다. 2020년 8월에는 CSOT에 중국 쑤저우 공장을 매각했다.

시장 조사 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LCD 패널 점유율(매출 기준)은 중국 BOE가 28.4%로 1위였고 LG디스플레이가 15.3%로 2위, 대만 AUO가 12.2%로 3위였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2018년 11.7%에서 3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낮아지면서 지난해 1.4%에 그쳤다.

LC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이 쉽지 않자 한국 기업들은 그 대안으로 OLED 산업을 확장해 왔다. 문제는 OLED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OLED 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점유율 격차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2019년만 해도 세계 중소형 OLED 시장점유율에서 한국은 90.3%, 중국은 9.7%로 한국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전망치는 한국 72.1%, 중국 24.7%로 예상되면서 차차 격차가 좁혀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업이 주는 교훈

LCD에 앞서 올해 초 중국의 저가 공세로 사업을 정리한 곳이 하나 더 있다. 지난 2월 LG전자는 6월 30일자로 태양광 패널 사업을 종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사업과 미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9년 태양광 패널 사업을 시작한 LG전자는 N타입·양면형 등 고효율 프리미엄 모듈 위주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1%대다.

그 사이 태양광 패널에서도 중국산 저가 제품 판매가 확대되면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졌고 폴리실리콘을 비롯한 원자재 비용이 상승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LG전자는 중국 업체들과 차별화된 라인업을 구축해 대응하려고 했지만 향후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의 점유율은 높지 않았지만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한국 기업의 철수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글로벌 태양광 공급망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업스트림 부문 중 잉곳·웨이퍼 시장의 중국 점유율은 95%를 웃돈다”며 “한국 기업들의 태양광 산업 진출은 미드스트림 부문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업이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하지만 최근 사업 철수를 선언한 산업군들에 직간접적으로 중국의 ‘저가 공세’가 원인이 됐다는 점은 향후 우리 산업계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보여준다.

이에 따라 각종 제조업에서는 중국의 점유율 성장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다. 특히 중국이 국가적으로 ‘키울 것’이라고 선언한 산업군은 더욱 그렇다.

지난해 한국산 배터리 전기차와 리튬 이온 배터리의 수출 점유율에서 한국의 비율이 낮아졌다. 이는 중국 기업의 점유율 성장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배터리 전기차(BEV) 수출 시장점유율은 13.7%로 증가해 한국과 미국을 제치고 단숨에 5위에서 3위로 도약했다. 상하이자동차와 BYD 등 중국 기업의 세계 최대 수입 시장인 대유럽연합(EU) 수출이 전년 대비 513.9%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중국은 풍부한 배터리 원자재 매장량과 중국 정부의 자국 배터리 기업에 대한 정책 자금 지원을 통해 세계 1위 배터리 전기차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리튬 이온 배터리 수출 점유율 역시 2020년 대비 한국은 2.0%포인트 줄었지만 중국은 2.9%포인트 증가했다.

반도체는 ‘중국 제조 2025’의 핵심이다.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15년을 시작으로 10년간 1조 위안(약 170조원)을 쏟아붓는 이른바 ‘반도체 굴기’를 지속하고 있다. 다만 목표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시장 조사 업체 IC인사이츠는 2025년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전 세계 시장의 19.4%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과거 중국의 저가 수주가 빈번했던 조선업계를 살펴보면 한국 산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중국 조선업계의 공격적인 저가 수주로 인해 한국 조선업은 굳건했던 1등 자리를 잠시 내놓아야 했다. 한국 조선업계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고수익 선종을 건조하는 기술력을 키웠다.

고수익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대형 컨테이너선 수주를 한국 선사가 휩쓸면서 다시 점유율에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영국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1625만CGT로, 그중 한국이 734만CGT(148척·45%), 중국이 716만CGT(247척·44%)로 집계됐다. 누계 수주가 중국을 앞지른 것은 2018년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