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쉽고 비용 절감 장점
오프라인 근무보다 높은 법적 리스크 우려도

[비즈니스 포커스]
우는 라이언 캐릭터. 사진=카카오프렌즈 제공
우는 라이언 캐릭터. 사진=카카오프렌즈 제공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기업 문화와 높은 연봉,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로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카카오의 직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카카오가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를 새로운 업무 공간으로 선언하면서 과도한 사생활 침해 이슈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7월부터 가상 사무실로 출근하는 ‘메타버스 근무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는데 새 근무제 발표와 동시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카카오 직원들의 비판 글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새 근무제 가이드라인인 ‘그라운드 룰’에 대해 일부 직원이 회사의 과도한 간섭과 감시라고 반발하면서 카카오의 메타버스 근무제는 하루 만에 재검토에 들어갔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 사진=카카오 제공
남궁훈 카카오 대표. 사진=카카오 제공
카카오, 과도한 감시 논란에 직원 반발

당초 카카오는 근무 장소에 상관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동료와 항상 연결돼 온라인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메타버스 근무의 장점으로 내세웠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지난 2년간 원격 근무를 경험해 본 결과 업무를 하는 데 물리적 공간보다 ‘연결’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결론 내렸다”면서 “연결을 중심으로 한 메타버스 근무제가 크루(임직원)들의 효율적인 업무를 돕고 카카오 공동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들의 의견은 달랐다. 근무 시간 내내 음성 연결을 위해 스피커를 항상 켜 두거나 골전도 이어폰을 착용한 채 일해야 하고 오후 1~5시는 반드시 일하도록 하는 집중 근무 시간을 도입해 업무 자율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함께 “카카오가 그동안 잘 유지돼 온 유연 근로제를 사실상 폐기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직원은 “2년 동안 재택근무를 하며 신뢰가 쌓였음에도 사실상 회사가 음성으로 직원들을 감시하겠다는 것”이라며 “희대의 판옵티콘 근무제”라고 비판했다.

남궁 대표는 결국 새 근무제 발표 하루 만인 5월 31일 사내 게시판에 집중 근무 시간을 재검토하고 음성 소통 여부를 테스트한 뒤 조직별로 투표해 결정하겠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 사진=네이버 제공
최수연 네이버 대표. 사진=네이버 제공
네이버는 4700여 명 사전 설문 조사
앞서 네이버도 7월부터 원격 근무를 포함한 새로운 근무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사무실 출근과 원격 근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근무 제도 ‘커넥티드 워크(Connected Work)’다.

커넥티드 워크는 직원이 1주일에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타입 ‘O’와 원하는 장소에서 원격 근무할 수 있는 타입 ‘R’ 중 고를 수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언제, 어디에서 일하는가를 따지기보다 더 본질적인 ‘일의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신뢰 기반의 자율적인 문화와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왔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커넥티드 워크가 잡음이 없었던 데는 직원 4700여 명을 대상으로 근무 형태 관련 사전 설문 조사를 진행하는 등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설문 결과 직원의 55%는 타입 R을, 45%는 타입 O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는 직원들에게 선택권을 줬고 어떤 근무 형태를 선택하더라도 언제든 사무실에 올 수 있도록 공용 좌석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개인 정보·영업 비밀 보호 체계 급선무
가상의 공간에서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콘서트를 관람하는 등 주로 게임이나 콘텐츠를 즐기는 공간으로 여겨졌던 메타버스는 최근 일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격 근무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중심으로 메타버스가 새로운 업무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각에서는 메타버스 근무제가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메타버스는 기존의 사이버 공간과 달리 가상 세계에서 현실과 동일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사이버 공간과는 전혀 다른 법적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카카오와 직방을 필두로 사무실을 메타버스로 옮기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데 메타버스 근무는 가상의 캐릭터가 존재하는 ‘게임’이 아닌 만큼 현실 세계의 직장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법적 이슈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법조계에 따르면 메타버스 근무제에서도 형법·근로기준법 등이 원칙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메타버스 사무실에서 명예 훼손 사건이 발생하면 현행법이 적용된다.

2021년 5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메타버스 얼라이언스’가 출범하는 등 정부가 메타버스 플랫폼 생태계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 있고 관련 정책과 제도를 정비 중이지만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회입법조사처의 ‘메타버스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메타버스의 여러 가지 가능성이 안전하게 시도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예측 가능한 안전장치 안에서 신산업·신서비스가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때 촘촘한 사전 규제부터 만들어 신산업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했던 과거의 정책적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사무실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로그로 남길 수 있고 대화도 텍스트로 변환해 저장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와 기업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노사 간 합리적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메타버스 사무실은 ‘디지털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가 될 확률이 높다.

송도영 법무법인 비트 대표변호사는 메타버스 근무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고려해야 할 부분으로 개인 정보 보호, 영업 비밀 보호, 근무 방식에 대한 노사 간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메타버스 근무에서는 직원들의 개인 정보를 어디까지 수집할지, 수집 항목과 기간 등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정식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영업 비밀 보호에 관한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 사무실에서는 회사가 직원을 관리·감독하기가 용이하지만 영업 비밀 유출 리스크는 현실 세계보다 훨씬 높다. 수탁사들을 통해 핵심 정보가 유출되거나 보조 전원 장치, 해킹 등으로도 영업 비밀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메타버스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회사의 비용 절감과 인재 채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다만 개인 정보 보호 체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시행하면 직원들이 개인 정보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오프라인 근무보다 훨씬 많은 리스크에 휩쓸려 기업 성장이 오히려 저해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