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그대로인데 가격만 줄인상

원스토어 수수료도 인상한 네이버
한국에서 가격 올리고 해외 투자는 늘리고

[비즈니스 포커스]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도, 오팔(OPAL)세대도 요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면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는데 이젠 웹툰·동영상·음악·도서·게임 아이템 등 디지털 재화도 올라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스트리밍 음원‧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이용권을 구매해야 한다. 웹툰을 보다 보면 유료분을 보기 위해 추가 결제를 하기도 하고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디지털 재화의 이용에 불을 댕겼다. 한국 국민 3명 중 1명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유료로 가입해 보고 있다.

이런 디지털 재화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 일부 요금제 상품의 구독료를 최대 약 17% 인상했다. 올해 들어선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판매하는 서비스 이용권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 등은 콘텐츠 가격을 20%씩 인상했다. 토종 OTT인 웨이브와 티빙도 상품별로 약 15%씩 올렸다. 뮤직 플랫폼 멜론도 이용권 가격을 6월 29일부터 10% 인상한다. 디지털 인플레이션(디지털 재화+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추가 결제를 하지 않고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 이용 대신 다른 방법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먹고 자고 입는’ 의식주를 제외하고 ‘읽고 보고 듣는’ 문화 소비 형태가 변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전국 만 13세 이상 남녀 6834명을 방문 면접한 ‘2021 방송 매체 이용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90%를 웃돌고 일상생활 필수 매체로 인식하는 비율은 70%가 넘었다. 스마트폰을 제외한 TV·신문·라디오 등 필수 매체 인식은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인플레이션이란 현상이 왜 벌어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들여다봤다.
커지는 ‘디지털 인플레이션’ 공포…웹툰‧음악‧영화 다 올랐다
넷플릭스와 구글이 가격 올린 이유
디지털 재화의 가격 인상은 왜 발생했을까. 짚고 갈 점은 실물 인플레이션 현상과 디지털 인플레이션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실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다. 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봉쇄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작동에 제동이 걸렸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라는 경제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또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돈을 뿌렸다. 사람들은 값싼 이자로 돈을 끌어다 주식·부동산·코인 등에 투자했다. 지원금도 알차게 썼다. 상품의 가격은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지며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반면 디지털 재화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가 작용하기엔 성격이 다르다. 실물 재화처럼 닳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한 번 만들면 무한 복제도 가능하다. 콘텐츠 공급자와 컴퓨터만 있으면 유통이 가능해 실물 재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통 과정도 단순하다. 물론 임금과 임대료 상승 등 실물적인 요인에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디지털 인플레이션 현상은 기업의 수익 추구에 따라 일어나는 모습이다.

우선 넷플릭스. 앞서 말했듯이 넷플릭스는 지난해 스탠다드(현 1만3500원)와 프리미엄(1만7000원) 이용권 가격을 각각 12.5%, 17.2% 올렸다. 지난 5년간 한국 시장에서는 가격을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다는 점과 투자를 통해 차별화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지속적인 투자를 위해 구독료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OTT 시장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구독료에 의존한 수익 모델의 한계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각국에서 구독료를 조정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미국에서, 올해 2월엔 일본에서 일부 구독료를 약 12%씩 올렸다.

콘텐츠 투자 금액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투자은행 모간스탠리 등에 따르면 올해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비용은 2021년보다 25% 증가한 170억 달러, 경쟁 업체 디즈니 플러스의 콘텐츠 투자 비용은 전년 대비 35~40% 늘어난 330억 달러로 추정된다.

다음은 구글. 최근 가격 인상은 구글의 인앱 결제(In-app payment) 정책이 불을 지폈다. 인앱 결제는 앱을 유통하는 앱마켓(구글 플레이 스토어, 앱스토어 등) 사업자(구글·애플 등)가 마련한 결제 시스템이다. 외부의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앱 안에서 결제가 진행돼 인앱 결제라고 불린다.

구글은 올해 4월부터 한국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있는 모든 앱 개발사들을 대상으로 앱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추가로 결제할 때 반드시 인앱 결제 방식을 사용하도록 결제 정책을 수정했다. 쉽게 말해 ‘우리(구글)를 통해 앱을 유통하고 싶으면 우리가 만든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고 수수료를 내라’는 말이다.

구글은 지금까지 게임 등 일부 앱에만 인앱 결제 방식을 적용해 수수료를 받았다. 이를 웹툰·음원‧동영상 등 디지털 재화로 확대한 것. 네이버웹툰·카카오페이지·멜론·웨이브·티빙 등 디지털 콘텐츠 앱 업체들은 앞으로 디지털 재화 거래에 대해 15∼30%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여기에 구글은 6월부터 앱 내에서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결제 링크(아웃링크)를 제공하는 앱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다만 쿠팡·배달의민족·카카오T 등 ‘실물 상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경우 구글의 이번 정책 수정과 관련이 없다.

구글은 인앱 결제 정책이 돈벌이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결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외부 결제를 이용하면 해킹 등의 위험이 있고 구글이 모니터링할 수 없어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반면 구글이 수익을 위해 인앱 결제 정책을 강행한다는 의견도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유통되는 iOS 앱에 오직 인앱 결제만 허용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센서타워의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지난해 벌어들인 인앱 결제 수수료 매출만 최대 276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애플 앱스토어 매출이 920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30% 정도를 인앱 결제 수수료로 벌어들인 셈이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500억 달러)의 매출이 애플과 2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구글이 인앱 결제 정책을 확대하는 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구글의 정책 시행으로 앱 개발사(게임 제외)가 구글에 내는 수수료는 연간 최대 8331억원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올해 한국에서만 4100억원 정도의 추가 수익을 얻는다.

네이버·카카오도 사용료 인상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콘텐츠 앱 개발사들은 구글 안드로이드 앱에서 결제하는 이용권을 인상했다. 구글에 내는 수수료가 올라 콘텐츠 가격을 불가피하게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한 곳은 한국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선 구글 인앱 결제 수수료가 이미 반영됐단 설명이다.

또 이들은 모바일 ‘웹’이나 ‘컴퓨터’로 결제하면 가격이 그대로이고 공지 사항에 안내를 충실히 했다고 강조한다. 가격 인상에 대한 대응법을 제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콘텐츠 이용자는 이용권 가격이 앱과 웹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공지 사항 페이지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구글 정책 변화를 되레 소비자 가격 인상 기회로 삼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네이버와 카카오는 구글에 수수료를 내고 있지만 동시에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웹툰 시장의 구글 수수료는 15~20% 정도 부과된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이번에 가격을 20% 인상했다. 소비자가 모든 수수료를 다 떠안은 셈이다. 구글 수수료가 15%라면 일정 부분 이익도 남는다.

네이버웹툰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뿐만 아니라 원스토어 등 안드로이드 환경 모두에 적용하며 수수료 인상 범위를 확대했다. 원스토어는 구글 정책 변경과 무관하지만 가격을 올린 것이다. 지난 4월 구글 인앱 결제 시 약 15% 가격을 인상을 반영한 웨이브가 원스토어를 통한 이용권 결제에선 가격을 인상하지 않은 것과 비교된다.

여기에 최근 원스토어가 미디어 콘텐츠 앱에 부과했던 기본 수수료를 기존 20%에서 10%로 내리면서 네이버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비용은 낮아지고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소비자 부담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웹툰 측은 “원스토어의 수수료 인하 발표 전에 가격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며 “원스토어 가격 조정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수수료를 인상한 데는 해외 비즈니스 확장 등 외부 요인도 작용했다. 네이버웹툰은 “앱마켓 수수료뿐만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 확대 및 고도화, 지식재산권(IP) 비즈니스 투자 및 비용 등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구글 결제 정책 변경이 주된 이유지만 글로벌 사업 확대, 창작자 수익 증대 등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것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는 웹툰 시장의 주 무대를 해외로 옮기며 치열하게 접전 중이다.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인 일본에선 네이버웹툰이 먼저 자리 잡은 반면 유럽 만화 시장의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 받는 프랑스에는 카카오가 한 발 더 빨리 진입했다.

한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OTT 서비스 3개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5개 등 총 8개 모바일 콘텐츠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추가 부담 금액은 올해 23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