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물 사업 66년 만에 중단하는 삼성… ‘선경직물’ 모태로 재계 2위 도약한 SK

[비즈니스 포커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지난 3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양복 원단을 만드는 직물 사업을 66년 만에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말을 끝으로 경북 구미 공장의 문이 닫힐 것으로 보인다. 구미 공장은 현재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원단을 생산하는 곳이다.

상황에 따라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결정이 눈길을 끈 것은 직물 사업이 삼성의 모태 사업이기 때문이다.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은 1956년 ‘섬유 국산화’를 선언하며 대구에 제일모직을 세웠다. 당시 제일모직이 생산한 국산 원단 ‘골덴텍스’로 만들어진 양복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재계 1위 기업 삼성이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빈폴 지고 톰브라운 뜨고…삼성물산의 숙제

당시 마카오 등에서 수입한 원단으로 만들어진 양복은 직장인들의 3개월 월급과 맞먹었다. 이병철 창업자는 이러한 현실을 바꿔 보겠다며 국산 섬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66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인건비 상승으로 해외 원단과의 가격 경쟁에서 한국이 도리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직물은 베트남과 인도 등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되는 직물의 가격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여기에 오는 11월 삼성SDI와 공장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것도 사업 중단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그룹의 모태 사업이라는 의미가 커 경영진이 사업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2018년 이후 4년간 누적 적자가 80억원에 달하는 등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실적이 악화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 제일모직은 갤럭시·빈폴 등을 론칭하면서 한국 패션 시장의 국산 고급 브랜드의 시대를 열었다. 2015년에는 삼성물산과의 합병으로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후 삼성물산은 상사·리조트·패션 등을 아우르게 됐다.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갤럭시와 빈폴 등 삼성물산 자체 브랜드의 입지는 예전같지 않다. 하지만 메종키츠네·톰브라운·아미 등 2030세대에게 인기가 높은 해외 브랜드들을 유통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들의 활약으로 지난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다만 위축된 자체 브랜드 영향력과 수입 브랜드 유통 사업이 갖는 리스크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고민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의 과거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의 과거 모습.(사진=한국경제신문)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순위에서 SK가 자산 총액 기준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최초로 2위에 올랐다. 상위 5개 기업의 순위가 바뀐 것은 12년만의 일이다. 이는 반도체 매출 증가, 석유 사업 성장 등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등 계열사들의 활약 덕분이다.

쟁쟁한 계열사들의 활약에 다소 가려져 있지만 SK그룹의 모태는 선경직물, 지금의 ‘SK네트웍스’다. 1953년 최종건 회장이 경기도 수원에서 시작한 선경직물이 지금 SK그룹의 근간이다. 그간 SK네트웍스는 종합상사로서 중계 무역과 영업을 주업으로 해 왔다. 워커힐호텔의 운영사도 SK네트웍스다.

최근 SK네트웍스의 행보를 살펴보면 종합 렌털사로서의 ‘변신’이 눈에 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2016년 동양매직(현 SK매직), 2019년 AJ렌터카(현 SK렌터카)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특히 SK매직은 5년 만에 연매출 1조원대로 성장했다.

SK네트웍스는 현재 SK그룹 내에서 3세대 경영이 먼저 시작된 곳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전 대표가 2021년 물러난 후 장남인 최성환 사업총괄이 신규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가 만든 국내 최초의 화장품 '럭키크림'.(사진=ㅏ눅경제신문)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가 만든 국내 최초의 화장품 '럭키크림'.(사진=ㅏ눅경제신문)

모태 상징성 지닌 현대건설·LG화학·롯데제과

자동차·조선·건설·유통 등에서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범현대가의 모태는 1947년 정주영 창업자가 세운 현대토건(지금의 현대건설)이다. 1950년 정주영 창업자는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해 ‘현대건설 주식회사’를 세웠다. 그 후 10년 후인 1960년 현대건설은 한국 건설업 순위 1위에 오르며 대기업을 향한 발판을 갖추게 된다. 건설에서 번 돈은 자동차와 중공업의 자양분이 됐다. 2000년대 초 현대건설이 어려움에 처하자 현대 관계자들은 “새끼를 많이 낳은 어미 소의 체력이 다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성 때문에 현대건설을 누가 인수할 것인가는 2000년대 이후 범현대가 의 가장 큰 이슈였다. 정주영 창업자의 차남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끌던 현대자동차그룹이 2011년 현대건설을 인수하게 되면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철강-건설로 이어지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됐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창사 이후 최초로 도시 정비 사업에서 수주액 5조원을 돌파해 3년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지켰다. 올해 추세는 더 좋아 한국 건설업계 최초로 ‘6조 클럽’ 가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창립 75주년을 맞이한 지난 6월 14일에는 ‘원전 토털 솔루션’ 업체로의 변신을 선언하기도 했다.

재계 순위 4위 LG의 모태는 ‘락희화학공업’, 지금의 ‘LG화학’이다. 1947년 화장품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LG 창업자 구인회 회장은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해 최초의 국산 화장품 ‘럭키크림’을 생산했다. LG생활건강과 계열 분리된 LX하우시스도 LG화학에서 떨어져 나간 회사들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LG화학은 여전히 LG그룹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분사되기 전만 해도 LG그룹 내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컸다. 지난해 전지 사업을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한 후 LG화학은 전지 사업을 대신할 신성장 동력으로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신약을 제시했다. LG화학은 지난 2월 열린 투자자 설명회에서 3대 신사업 매출을 3조원대에서 2030년 30조원으로 10배 키울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의 한국 사업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와 이듬해인 1966년 재일동포 법적 지위 협정이 발표되면서 막을 올린다. 1967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롯데제과주식회사를 세운 신격호 창업자는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멕시코 천연 치클을 사용해 고품질 껌을 선보였다. 이후 1974년과 1977년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이 설립됐다. 한국 최대 식품 기업 롯데가 한국 땅에서 꽃을 피운 순간이다.

지난 5월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와 핵심 계열사인 롯데푸드가 합병 결정을 내림으로써 매출 3조7000억원 규모의 종합 식품 회사가 탄생하게 됐다. 합병의 핵심은 ‘글로벌’과 ‘브랜드 포트폴리오 확대’다. 각 사업 간 시너지 효과로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합병은 오는 7월 1일 완료될 예정인데 완료되면 빙과업계 1위, 종합 식품 회사 2위로 도약하게 된다. 통합 법인의 사업 분야는 빙과·제빵·건강기능식·가정간편식(HMR)·육가공·커피·식자재 등 식품업계 전반을 아우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