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이후 8년 만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 인정
2년 전 한화투자증권 사건은 부당 해고 판결

[법알못 판례 읽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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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관 제조사인 넥스틸이 7년 전 단행한 정리 해고가 정당했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14년 쌍용자동차 이후 8년 만에 정리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결이다.

법조계에선 넥스틸이 지속적으로 영업 적자를 내지 않았음에도 정리 해고 요건 중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인정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이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했던 법원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뒤집힌 판결…대법원 “부당 해고 아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022년 6월 9일 넥스틸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 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회사 측이 패소했던 원심이 뒤집혔다.

이번 소송은 넥스틸이 2015년 회사 인원을 대거 감축하는 구조 조정을 하면서 비롯됐다. 이 회사는 당시 경영 환경이 나빠지자 회계법인에 경영 진단을 의뢰해 “노동자 183명을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넥스틸은 컨설팅 결과를 받아들여 150명(임원 7명 포함) 규모의 구조 조정 계획을 공고했다. 이에 따라 137명이 희망퇴직했다.

넥스틸은 그 이후 노동자 3명을 추가 정리 해고 대상자로 선정했다.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결정에 반발해 중노위에 구제 신청을 했다. 중노위는 노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넥스틸의 정리 해고를 부당 해고로 판단했다. 그러자 넥스틸이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넥스틸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선 패소했다. 넥스틸이 정리 해고 결정 당시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넥스틸은 2012년 157억원, 2013년 178억원, 2014년 502억원, 2015년 12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심 재판부는 “회사 단체 협약에서 경영상 해고로 정한 ‘지속적인 적자 누적’은 없었다”며 “정리 해고를 위한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무실 등의 부동산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데다 대주주에게 현금 배당을 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도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정리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에 따른 대상자 선정 △해고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노조 등과 성실하게 협의 등 4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법원은 이 중에서 특히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엄격하게 해석해 왔다.

정리 해고, 경영난 돌파 카드 될까

2심과 달리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넓게 해석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강관업계 전반이 경영 위기에 몰려 동종 업계 대표 업체도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한 점 △매출액·영업이익 등이 2014년에 비해 급감했고 향후 업황 회복이 예상되지 않은 점 △자기자본 대비 차입금 비율이 2014년 87%에서 2015년 224%로 급격히 상승한 점 △노동자들도 노동위 심문 회의에서 정리 해고의 필요성을 수긍한 점 △반드시 지속적인 적자 누적 등이 있어야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넥스틸의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선 특히 적자를 내지 않았는데 정리 해고를 단행한 기업이 승소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에선 오랫동안 ‘정리 해고는 부당 해고’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넥스틸을 대리한 이광선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대법원은 그동안 사실상 부도 위기가 아닌 이상 정리 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런 가운데 이번 판결은 기업 현실을 적극 감안해 경영상 위기 여부를 판단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 해고 대상자가 소수(3명)인데도 정리 해고의 적법성을 인정했다는 것도 대법원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재판부는 해고 인원과 관련해 “남은 정리 해고 인원이 적다고 해서 경영상 위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과는 확실히 다른 판단이란 평가다. 2심 재판부는 “이미 137명의 노동자를 감축했는데 또 인원을 추가 감축해야 할 만큼 경영상 위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경영 환경 악화로 고전 중인 기업들이 인력 감축을 통해 숨을 돌릴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법원은 앞서 2020년 한화투자증권의 정리 해고를 부당 해고라고 보고 회사 측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이후 2년 만에 회사가 정리 해고 관련 소송에서 이긴 판례가 나온 것이다.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서 도산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기에 먼저 대처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리 해고도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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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정리 해고 적법성 인정받은 쌍용차

넥스틸 이전에 법정에서 정리 해고의 적법성을 인정받은 기업을 찾으려면 8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부도 위기에 내몰렸던 쌍용차가 그 주인공이다.

대법원 3부는 2014년 11월 쌍용차에서 일하다가 2009년 정리 해고된 생산직 직원 153명이 “정리 해고를 취소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정리 해고를 할 만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쌍용차는 2008년 차량 판매 부진과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 등으로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2009년 직원 974명을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조합이 평택공장 등을 점거해 장기간 파업을 벌였다. 노사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채 그해 165명이 최종 해고됐다. 그 후 노동자들이 노조 무효 소송을 내면서 오랜 소송전이 시작됐다.

대법원은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쌍용차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다. 쌍용차가 △1999~2005년 기업 구조 개선 작업(워크아웃) 기간에 연구·개발 투자를 하지 않은 점 △2005년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뒤에도 투자가 적어 신차 개발이 미비했던 점 △쌍용차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고 소비자 선호도가 떨어졌던 점 △2008년 하반기 SUV 연료인 경유 가격이 급등하고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닥치면서 금융회사의 지원이 끊겼던 점 등을 줄줄이 거론했다.

재판부는 “쌍용차가 처한 경영 위기는 상당 기간 신규 설비와 기술 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계속적·구조적인 것”이라며 “단기간에 쉽게 개선될 수 있는 부분적·일시적 위기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을 내리면서 기업의 ‘경영상 판단’에 대한 재량권도 넓게 인정해 주목받았다. 재판부는 쌍용차가 974명을 정리 해고하기로 결정한 데 관해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은 2년 뒤 열린 파기환송심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는 2016년 5월 쌍용차 해고 무효 소송전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6년간의 분쟁 끝에 회사 측의 승소로 소송이 마무리됐다.

환송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정리 해고 당시 쌍용차는 금융권 신규 자금을 대출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쌍용차가 정리 해고에 앞서 부분 휴업과 임금 동결, 순환 휴직, 사내 협력 업체 인원 축소, 희망퇴직 등의 조치를 한 만큼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